‘인기 3박자’ 보수층 엔진달고 붐붐~
▲ 마이크 허커비 공화당 대선 예비후보가 선거 집회 자리에서 뛰어난 베이스 기타 솜씨를 선보이고있다. AP/연합뉴스 | ||
지난 3일 공화당의 아이오와 코커스(당원대회)에서는 대이변이 일어났다. 줄곧 아이오와 주에서 선두를 달리면서 승세를 굳히고 있던 미트 롬니를 제치고 뜻밖에도 마이크 허커비(52)가 승리를 거두었기 때문이다. 비록 그후 뉴햄프셔 주에서 열렸던 첫 예비선거에서는 3위에 그쳤지만 후보들은 여전히 ‘허커비 돌풍’을 의식하면서 막판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
보수적인 기독교 단체들로부터 절대적인 지지를 얻고 있는 허커비는 “정통 기독교도는 오로지 나밖에 없다”면서 자신의 종교적인 입지를 강조하고 있다. 물론 미시간, 네바다, 사우스 캐롤리나 등 앞으로 줄줄이 이어지는 예비선거에 이어 분수령이 될 2월 5일 ‘슈퍼 화요일’까지 계속해서 ‘허커비 돌풍’이 이어질지는 아직 미지수다. 선거 자금 동원력도 그렇거니와 조직력도 다른 후보에 비해 뒤처지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내 하위권을 맴돌다가 불과 두어 달 만에 상위권으로 치고 올라온 그의 저력을 생각하면 언제 어디서 또 이변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불과 서너 달 전만 하더라도 미국 유권자들 가운데 ‘허커비’라는 이름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가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같은 전 아칸소 주지사 출신이라는 사실은커녕 심지어 공화당 예비 후보라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 가을 무렵 허커비의 대반전은 시작됐다. 보수적인 기독교도들 사이에서 점차 지지를 얻기 시작했던 그는 12월에는 마침내 선두주자인 루돌프 줄리아니를 따라 잡는 기염을 토했다. 7월에는 불과 1% 정도였던 지지율이 11월에는 5%, 그리고 12월에는 21%까지 급상승했다.
이런 분위기를 몰아서 이달 초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압도적 승리를 거두었던 허커비는 “모두 하나님이 도와준 덕분이다”라고 승리의 소감을 표현했다.
이처럼 허커비의 선거 유세에서 꼭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어는 바로 ‘하나님’이다. 그의 승리 원동력이 다름 아닌 기독교 지지자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침례교 목사 출신인 허커비는 정통 기독교도임을 자처한다. 줄리아니가 가톨릭교, 또 롬니가 모르몬교라는 점을 감안하면 공화당의 핵심 지지층인 기독교 복음주의자들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한 요건인 것이다. 지난 2004년 부시 대통령의 재선을 도왔던 것도 다름 아닌 기독교 복음주의자들이었다.
이런 점을 의식해서 허커비는 유세 때마다 성경 구절을 인용하길 좋아한다. 자신의 지지율이 급상승한 요인에 대해서도 그는 성경에 나오는 예수의 기적을 비유했다. “물고기 두 마리와 빵 다섯 덩어리로 5000명을 먹이신 것과 같은 힘이었다”라는 것이다.
▲ 왼쪽부터 공화당 대통령 선거 예비후보로 나서고 있는 마이크 허커비, 프레드 톰슨, 루돌프 줄리아니. | ||
소방관이자 기계공이었던 아버지와 가스공장 근로자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허커비는 “조상 대대로 우리 집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은 나뿐이다”고 자랑스럽게 말하고 다닌다. 다시 말해서 억만장자인 롬니 후보나 줄리아니 후보에 비해서 자신이 진정한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이라는 것이다.
그는 14세부터 지역 어린이 라디오방송국에서 DJ로 활동하는 등 걸죽한 입심을 과시해왔다. 당시의 경험에 대해 허커비는 “라디오를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는 법을 배웠다”고 말했다.
호프 고교 총학생회장을 지냈던 그는 고교 시절 베이스 기타에 심취해서 밴드 활동을 하기도 했다. 그때 시작한 베이스 기타 연주는 아직까지도 그의 주된 취미 생활 가운데 하나다. 현재 ‘캐피탈 오펜스’라는 이름의 밴드에서 베이스 기타를 연주하고 있는 그는 크고 작은 공화당 행사나 모임에 참석해 연주 실력을 뽐내고 있다.
침례대학에서 신학을 전공한 후 12년 동안 목사로 활동했던 그는 고교 시절 만난 첫사랑이었던 재닛 매케인과 결혼했다. 33년 동안 결혼 생활을 유지해 오고 있으며, 별다른 스캔들 없이 줄곧 안정되고 깨끗한 사생활을 보여주고 있다.
아칸소 주지사 시절 136㎏의 뚱보였다가 50㎏을 감량한 ‘의지의 사나이’란 점도 허커비에게는 플러스로 작용하고 있다. 2003년 당시 당뇨병 진단을 받았던 그는 주치의로부터 “이대로라면 앞으로 10년밖에 살지 못한다”라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을 들었다.
그 후 피나는 운동과 식이요법 끝에 지금과 같은 건장한 체격을 유지하게 됐다. 그때부터 ‘마라톤 마니아’가 된 그는 지금까지도 틈만 나면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면서 건강을 다지고 있다.
▲ 50㎏ 감량 성공 후 마라톤 마니아가 된 허커비 후보 . | ||
일례로 그는 아칸소 주지사 시절 관저가 대대적인 보수 공사에 들어가자 잠시 이동 주택에서 생활해야 했다. 이 주택은 관저보다 훨씬 좁은 200㎡(약 60평) 넓이의 컨테이너 주택이었다. 당시 컨테이너 생활이 어떠냐는 질문에 그는 “주지사 관저보다 세 배는 더 넓다”라고 너스레를 떨었으며, 턱이 길고 독특하게 생긴 제이 레노의 인기 토크쇼에 출연해서는 “당신 턱이 들어가고도 남을 만큼 넓다”라는 조크를 해서 스튜디오를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반면 그의 가장 큰 단점은 ‘외교 문외한’이라는 데 있다. 파키스탄 부토 총리 암살 및 이라크 전쟁과 관련해 이미 여러 차례 실언을 해서 조롱거리가 됐으며, 앞으로 이 부분을 보완하지 않는 한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선거 자금력과 조직력도 부족한 데다 민주당 후보들과의 가상 대결에서도 연전 연패하면서 입지가 좁아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낙천주의자인 허커비는 “경쟁은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외치면서 예의 긍정적인 태도를 잃지 않고 있다. 또한 같은 고향 출신인 빌 클린턴과 닮은꼴이라고 불리는 것을 빗대어서 “클린턴 역시 대선 출마 직전까지도 나처럼 무명이었다. 아직 희망은 있다”라고 말하면서 선전을 다짐하고 있다.
과연 그가 ‘공화당의 빌 클린턴’이라는 이름값을 톡톡히 해낼지 앞으로의 뜨거운 대선 레이스가 기대된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