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세트 일일이 추적 ‘5만원 법칙’ 유효 확인…앗, 이건 6만원 넘는 허브티? 구입가는 5만원
추석을 앞둔 20일 국회 의원회관에 선물 택배가 도착하고 있다.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9월 19일 오전 11시경 기자가 도착한 국회 의원회관 1층 택배보관소는 썰렁한 모습이었다. 약 100개의 택배들이 놓여 있었지만 손수레 부대들을 찾아볼 수 없었다. 사법정책연구원 연구총서 등 의원과 보좌진이 주문한 책은 약 20개였다. 포스터, 명함 등 보좌진들이 개인적으로 주문한 물건이 약 30개, 추석 선물 약 50개를 차지했다.
기자는 택배 앞 표면에 상품명이 보이는 물품을 중심으로 선물 가격을 역추적했다. 먼저 추석 선물 중에 부피가 가장 컸던 X고을 맛김(명품2호)을 선택했다. 전북 김제에 있는 금산사 주지 전 아무개 씨가 유은혜 민주당 의원과 윤상현 자유한국당 의원에게 보낸 선물이다. X고을 맛김 홈페이지에서 확인한 명품2호 가격은 2만 4000원. 김영란법 위반이 아니다.
한태식 동국대 총장이 김석기 한국당 의원에게 보낸 선물은 XX 오색 수연소면(방아2호). 오색 수연소면 홈페이지 확인한 방아2호 가격은 3만 원이었다. 농업회사 법인 X연애가 신동근 노웅래 남인순 전재수 민주당 의원과 김한표 박찬우 이명수 윤영석 박순자 한국당 의원, 임이자 자유한국당 의원에게 보낸 선물은 X제한차 3종선물세트였다. X제한차 3종선물세트 가격은 3만 7000원. 5만 원을 넘지 않았다. 김영란법은 철저하게 지켜지고 있었다.
장경남 한국원양어업협회 회장이 조경태 한국당 의원에게 보낸 선물은 X조안심4호. X조안심4호는 참치, 카놀라유 등이 포함된 선물세트다. 가격은 4만 9800원. 모 언론사 간부가 전해철 민주당 의원에게 보낸 선물은 X관장(서현세트)으로 가격은 4만 2200원. 두 개의 선물 역시 ‘5만원 원칙’을 위반하지 않았다.
김영란법의 영향으로 국회 의원회관 택배보관소의 풍경이 확 달라졌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육안으로 가격을 확인할 수 없는 선물들도 많았다. 강영규 경우회중앙회장은 김두관 민주당 의원에게 건어물 세트를 보냈다. 이 아무개 씨는 김선동 한국당 의원에게 장아찌를 선물했다. 김영규 한국축산물처리협회장은 이종배 한국당 의원에게 X아름 세트를 보냈다. K 기업은 주승용 국민의당 원내대표에게 복분자를 선물했다.
검증을 하는 동안 국회 보좌진들이 이따금씩 택배를 찾으러 왔다. 하지만 손수레를 끌고 오는 비서들은 없었다. 익명을 요구한 국회 인턴비서는 “정부 기관들이 추석 때 고급 선물을 많이 보내줬지만 김영란법이 시행된 이후로 뚝 끊겼다. 상품 종류도 달라졌다. 1만~2만 원대 비누, 샴푸를 선물로 받았다. 명절 때마다 손수레로 선물을 옮기는 일은 사라질 것”이라고 전했다.
기자와 만난 민주당 보좌관도 “김영란법 때문에 상당히 위축됐다. 지난 설날부터 선물이 줄었다. 추석 때면 기관장들은 의원 방으로 선물을 보낸다. 김영란법 시행 이후 5만 원 넘는 선물을 받아본 일이 없다. 의원이 알짜 상임위에 있는데도 선물이 1만~2만 원 수준이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물론 택배보관소에서는 5만 원이 넘는 선물도 있었다. 최근 주러대사로 임명된 우윤근 국회 사무총장은 윤후덕 민주당 의원에게 보낸 선물인 X화마을 특11호 가격은 5만 7000원. 국민권익위 관계자는 “두 사람은 같은 공공기관 안의 소속 직원 관계로 볼 수 있다. 금액 무제한 관계이기 때문에 선물 가격대가 5만 원이 넘어도 문제가 없다”고 답변했다. 정찬우 한국거래소 전 이사장이 국회 정무위원들에게 보낸 선물도 있었다. 한국거래소는 정무위원회의 피감기관으로 두 기관은 직무관련성이 있다. 정 전 이사장은 사퇴 직전 X바론 버라이어티 허브티 우드세트 24를 제윤경 김혜영 민주당 의원, 김선동 정태옥 한국당 의원, 지상욱 바른정당 의원에게 선물했다. X바론 버라이어티 허브티 우드세트 24의 정가는 6만 8000원. 하지만 한국거래소가 허브티 세트를 구매한 가격은 5만 원이다. 김선동 김혜영 정태옥 의원은 선물을 받은 즉시 반품했다.
기자가 의원회관 1층의 선물을 조사한 결과 김영란법 위반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국민권익위 관계자는 “직무관련자한테는 원칙적으로 금품 제공을 하면 안 된다. 하지만 부정청탁 금지법 3항 2호는 원할한 직무수행을 위한 사교 목적의 5만 원 이하 선물을 예외로 두고 있다. 정가와 구매가가 다른 경우엔 구매가를 기준으로 가액을 산정한다”고 설명했다.
의원회관 1층에 있는 선물을 조사한 결과, 김영란법 위반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다. 민주당 다른 보좌관은 “선물이 확실히 줄었다.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서로 부담이 된다. 좀 괜찮은 상임위는 추석 때마다 직원들에게 두 손 가득 선물을 주었는데 이번에는 챙겨주지 못할 것 같다. 옛날엔 값비싼 선물은 의원집으로 보내고 나머지는 보좌진이 나눠 가졌지만 이제는 세상이 바뀌었다”고 귀띔했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