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북방정책’ 내세운 문재인 정부 ‘북한 리스크’ 해결 선행 과제
2011년 8월 29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러시아 동부 시베리아 도시 울란우데에서 러시아의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당시 대통령과 악수하는 모습.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신 북방정책’에 대해 국내 안팎에선 여전히 물음표를 던지고 있다. 역시 그동안 발목을 잡아온 ‘북한 리스크’ 탓이다. 특히 사업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철도 부설과 가스관 연결은 북한의 협조 없이는 절대 불가능한 사업이다. 문재인 정부 나름대로 러시아를 지렛대 삼아 남-북-러 북방사업의 시동을 걸고자 하지만 북한의 잇따른 탄도미사일 도발과 6차 핵실험 등으로 환경은 여의치 않다.
이런 상황에서 꼭 살펴볼 부분이 있다. 김정은 시대 들어 대화를 이어온 북-러는 과연 북방 개발 및 협력, 특히 가스관 및 철도부설 문제를 두고 어떤 논의를 이어왔느냐다. 북한 안팎에서 수집한 자료를 토대로 이를 조명할 필요가 있다.
조명할 북-러 간 접촉은 크게 세 장면이다. 필자는 그 시점을 2011년 8월 북-러 정상회담부터 잡았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2010년 9월 노동당 당대표자회의를 통해 처음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자로서 공식 등장했다. 사실상 김정은 시대의 시작은 이때부터라 할 수 있다.
러시아와의 정상회담을 앞둔 김정일은 아들의 공식 등장 이후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건강 상태를 의식했다. 그는 3대 후계체제의 안착을 위해 동분서주해야만 했다. 실제로 2011년 8월 김정일은 죽기 전 마지막 러시아 순방에 나섰다. 김정일은 병든 몸을 이끌고 시베리아 횡단노선을 통해 모스크바로 향했다. 그곳에서 그는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당시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국제사회에선 이 정상회담을 주목했다. 무엇보다 북한이 이를 기점으로 북핵 및 미사일 도발을 멈추고 6자회담으로 복귀하는 게 아니냐는 희망 섞인 기대감이 충만했다. 물론 결론적으로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이 자리에서 러시아 측은 북한에 6자회담의 조건 없는 복귀와 함께 푸틴의 신 동방정책에 따른 시베리아 및 극동 러시아 개발에 협조해 줄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역시 핵심은 가스관과 철도 부설 문제였고, 북한 3호 부두의 러시아 극동함대 이용 여부도 포함됐다. 러시아는 북한에 2000년대 초반부터 이 문제를 제기해 왔지만, 번번이 김정일의 외면으로 더 이상 진행되지 못했다.
하지만 2011년 8월 진행된 양국의 정상회담에서 이 문제는 최소한 과거에 비해선 한 걸음 나아갔다. 김정일은 그동안 외면해 왔던 이 문제에 어느 정도 타협의 여지를 남겼다는 후문이다. 다만 그것을 위해 러시아에 요구한 대가가 너무 무거웠다.
북한 내부관계자에 따르면 김정일은 러시아 측에 후계자 김정은의 인정, 식량 대폭지원, 그리고 핵심 조건으로 군사적 협조를 요청했다. 앞선 두 가지 조건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러시아 입장에서 대북 군사적 협조는 여간 부담스러운 대목이 아닐 수 없었다. 구체적으로 북한은 이 자리에서 3중수소 연속 공급 기술 관련 협조, 재래식 무기 도입 협조, 신형 잠수함(핵추진 포함) 도입 협조 등을 러시아 측에 요구했다. 더 이상은 진전이 어려웠다.
북한 내부관계자에 따르면 양측 사이에서 요구하는 조건도 무거웠지만, 김정일과 김정은의 견해도 약간 엇갈렸다는 후문이다. 김정일은 러시아의 전략적인 대북지원에 대해 약간 소극적인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김정은은 어차피 북한의 군사력 시스템이 구 소련에 의존해왔기 때문에 러시아의 요구에 순응적으로 대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김정은은 권좌를 물려받기 전부터 러시아의 가스관 설치 및 철도 부설과 동시에 나진부두의 군사적 이용을 일부 허용해주면서 필요한 러시아의 대북금융지원을 이끌어내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후문이다.
물론 북방지역 개발에 있어서 양국의 합의는 완벽히 이뤄지지 않았지만, 개발 의제가 본격적으로 오갔다는 것 자체가 소득이었다. 또한 이 회담 이후 러시아는 북한을 배려해 자국 기능공 자리를 북한 인력으로 대체해주기도 했다. 나름의 배려도 있었던 셈이다.
2014년 11월 25일 북한 김정은의 특사로 러시아를 방문한 최룡해가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면담하는 모습. 연합뉴스
비록 앞선 회담에서 논의된 의제가 더 나아가지는 못했지만, 북-러 관계가 바람을 탄 것은 확실했다. 2014년 11월 실세 최룡해는 김정은의 특사 자격으로 러시아를 방문했다. 이는 2014년 10월경 정치국 비상대책회의에서 심도 깊은 토의를 통해 준비된 과정의 결과였다. 국제사회 안팎에서는 최룡해 특사의 러시아 방문은 곧 김정은의 추후 방러 및 양국 정상회담 준비를 위한 과정이라고 분석했다.
이때 국제 상황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당시 박근혜 정부와 중국 시진핑 정부의 관계는 매우 밀접한 반면 북-중 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또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해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로부터 적잖은 견제를 받고 있었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특사 자격으로 러시아를 방문한 최룡해가 굳이 연해주의 미클루셰브스키 지사와 회담을 진행했다는 것이다. 이는 일본 <교도통신>을 비롯한 여러 외신을 통해 보도됐다. 2014년 11월 23일 비공개로 진행된 이 회담은 여러모로 조명할 부분이 있다.
필자는 북한 내부관계자를 통해 이 회담의 내용과 성격에 대해 확인해 볼 수 있었다. 이때 러시아 측은 앞선 연해주 지사를 비롯해 부지사와 핵심지역인 블라디보스토크 부시장을 연석시켰다고 한다. 북한에선 최룡해를 비롯해 김계관, 노광철, 이영철, 이광근, 임천일 등 방러 대표단이 대부분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양국 참석자들은 극동 러시아 개발에 대한 상호 이해관계를 분명하게 교환했다고 하며 분위기는 썩 좋았다는 후문이다. 일단 러시아 측에서는 극동지역의 물류인프라 기반 확보, 시베리아 지역 개발에 있어서 북한의 적극적인 참여와 협조를 주문했다.
이에 북한 측 역시 극동지역 개발에 있어서 북-러 공동개발의 필요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뜻으로 화답했다. 양국은 정상회담 이후 3년 만에 극동지역 개발에 대한 협조 이해에 있어서 상당히 접근한 것으로 판단된다.
2015년 3월 리수용 당시 외무상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 연합뉴스
마지막으로 조명할 부분은 2015년 3월 13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북한 리수용 당시 외무상(현 당 국제담당 부위원장)과 러시아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과의 양자 외교장관 회담이다. 두 사람은 2014년~2015년 사이 몇 차례 회담을 가진 이력이 있다.
이때 라브로프 외무장관은 북한 리수용 외무상 측에 “한국과 일본이 러시아의 에너지 수출사업에 특별한 관심이 있으며, 특히 한국이 액화가스 공급 사업에 지대한 관심이 있다”라며 가스관 사업을 논의 주제로 올렸다. 그는 이어 “추후 김정은의 방러가 이뤄지면 북한이 이 가스관 통과와 관련해 적절한 경제적 안보적 협의를 진행했으면 한다”고 전달했다고 한다.
러시아가 국제사회의 강력한 대북제재 속에서도 극동지역 개발에 대한 의지를 강하게 피력한 셈이다. 높은 가능성이 제기됐던 김정은의 방러는 결국 엎어졌지만, 과거와 달리 북-러 간 극동지역 개발에 대한 상호 이해는 매우 높아진 것이 분명해 보인다.
물론 러시아 역시 북한에 줘야 하는 반대급부 역시 염두에 두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단순한 지역 관광개발이 될지, 아니면 애초 북한이 요구했던 군사적 협조가 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부분이다. ‘신 북방정책’ 기치를 세운 문재인 정부 역시 유심히 지켜볼 대목이다.
북-러 간 극동지역 개발을 주도한 인사들도 살펴볼 부분이다. 당시 러시아를 직접 방문하고 주요한 문제를 해결한 당사자인 리수용 당시 외무상은 현재 북한의 대러 정책뿐만 아니라 각종 대외정책의 방향을 결정하는 당 국제담당 부위원장으로 승격됐다. 최룡해 당 비서 역시 이러한 주요 결정들을 추진할 수 있는 집행자이자 최고 지도부에 건의를 할 수 있는 주요 위치에 있다.
이윤걸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 대표(겸 세종연구소 객원 연구위원)
정리=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