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 공포감 자극해 총선서 12.6% 득표…독일 언론에선 ‘반난민 신나치’ 규정
지난 9월 24일 치러진 독일 총선의 결과는 전세계에 충격을 던져주기에 충분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극우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12.6%의 득표율로 연방의회에 진입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로써 AfD는 의석수 709석 가운데 94석을 차지하면서 원내 제3당으로 급부상했으며, 이는 창당 5년 만에 이룬 쾌거이기도 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4연임하는 데 성공하긴 했지만, 이번 총선의 실질적 승자는 AfD라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반난민, 친나치 성향을 보이고 있는 신생 정당인 AfD의 승리를 염려스런 눈길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많다. 행여 독일에서 나치의 망령이 부활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 때문이다. 이에 반해 나치의 부활은 기우에 불과하며, 다만 기성 정당에 대한 불만과 불신이 이번 총선 결과로 나타났을 뿐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과연 AfD의 총선 승리는 독일인들에게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누가, 왜 AfD의 손을 들어주었을까.
독일 총선일인 9월 24일 투표소 밖에서 극우정당 AfD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AP/연합뉴스
이번 총선 결과는 여러 면에서 과거의 총선 결과와는 사뭇 달랐다. 지금까지는 중도우파인 기민당-기사당 연합과 중도좌파인 사민당이 60% 이상의 득표율을 기록하면서 독일의 양당 체제를 굳건히 지켜왔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두 주요 정당의 득표율이 50%를 겨우 넘는 53.5%에 그치면서 양당 체제의 약화를 예고했기 때문이다.
가령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기민당은 1949년 이래 최저치인 33%의 득표율을 기록했고, 제1야당인 사민당 역시 20.5%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면서 체면을 구겼다. 이는 각각 지난 총선에 비해 8.5%포인트, 5.2%포인트씩 하락한 것이었다. 반면 나치당 이후 극우 정당으로서는 68년 만에 연방의회 진출에 성공한 AfD의 득표율은 지난 2013년 총선에 비해 무려 7.9%포인트 상승했다.
사실 AfD의 돌풍 조짐은 지난해부터 서서히 나타났었다. 주의회 선거에서 잇따라 충격적인 승리를 거두면서 총선에서의 승리를 예고했었던 것이다. 가령 작센안할트주와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주에서는 20% 이상의 득표율을 기록하면서 선전했고, 베를린 주의회 선거에서도 17%의 득표율을 거두면서 괄목한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현재 AfD는 16개 주의회 가운데 13개 주의회에 진입한 상태다.
2016년 당시 AfD의 지지율은 특히 구베를린과 구동독 지역에서 두드러지게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실시된 설문조사에서 AfD에 표를 던진 유권자들 가운데 72%는 “가장 큰 걱정은 난민 문제”라고 응답했으며, 절반가량은 “국가의 안전 문제”가 걱정돼서 AfD를 지지했다고 밝혔다.
이에 독일 언론들과 정치 전문가들은 AfD의 정치적 성향을 반난민, 친나치라고 규정짓고 있다. 또는 애국심을 자극하는 포퓰리스트라고 말하기도 한다. 독일 국민들의 난민정책에 대한 공포를 자극해서 득세하는 극우과격 집단이라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AfD의 의회 진출은 정말 독일 민주주의에 위협이 될까? 정말 AfD의 승리는 나치당의 부활을 의미하는 걸까? AfD 지지자들은 파시스트일까? 이에 대해서는 독일 정치인들과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엄연히 파시스트라는 주장과 보수적 가치관을 지닌 정당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주장이 맞서고 있는 것이다.
가령 극우정당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우리 독일인들에게는 1,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독일 군인들을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AfD의 알렉산더 가울란트 공동총리후보자의 발언을 예로 들면서 이런 사상을 가진 당원들을 출당 조치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야말로 극우적 성향의 정당임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독일은 이제 나치의 과오에 대한 속죄를 그만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비외른 회케를 제명하지 않고 있는 점도 마찬가지라고 지적한다.
반면, AfD가 파시스트도, 극우정당도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AfD의 정체성은 복잡미묘하기 때문에 단순히 하나로 규정지을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다만 분명한 것은 메르켈의 기민당이 등한시했던 우파의 가치를 대변하는 보수 정당이라고 주장한다.
드레스덴 정치학회 소속 교수이자 AfD에 대해 수년간 연구해온 베르너 파첼트 교수는 “AfD는 기민당의 오른쪽에 위치한 정당“이라고 말하면서 “과거 투표를 거부했던 사람들, 중도좌파인 사민당 지지자들, 극좌파인 디링케 지지자들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AfD가 그렇게 과격한 극우 정당은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기득권 정치인들에 대해 신물이 난 사람들이 지지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파첼트 교수는 또한 “AfD의 지도부나 주요 당원들 가운데 상당수는 심지어 기민당 출신들이 많다”고도 말했다. 실제 당을 공동 창당한 가울란트 공동총리후보도 기민당 출신이었으며, 창당 당시 메르켈의 기민당이 보수 뿌리에서 너무 벗어났다고 생각했던 기민당 당원들도 상당수 AfD로 옮겨갔었다. AfD가 총선 직후 당내 갈등으로 사분오열하고 있는 것도 아마 이런 까닭에서일 것이다.
지난 2013년 그리스에 대한 유럽연합의 긴급 구제에 반대하면서 창당된 AfD는 2015년 메르켈 총리의 난민 수용 정책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이면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메르켈 총리의 적극적인 난민 정책이 오히려 이들에게는 절호의 기회였던 셈이다. 독일인들의 ‘반난민 정서’를 자극하면서 점차 기반을 다져나갔던 AfD는 다문화 국가에 대한 회의론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보수적 성향의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이와 관련, 런던경제대학의 줄리언 가파스는 “분명한 것은 난민 문제가 AfD에게 새로운 존재 이유를 주었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AfD가 이민자들로 인해 독일의 문화가 바뀔 것이라는 두려움을 홍보하면서 막강한 힘을 얻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13%의 독일 국민들이 AfD에게 표를 던진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세계화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경제 불안과 가치관은 그 다음 문제라는 것이다. 이는 유럽 전체에 걸쳐 극우당이 승승장구하고 있는 것과도 맥락을 같이 한다.
지난 2016년 8월, ‘베르텔스만 재단’은 유럽의 28개국 1만 1000명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실시한 결과를 발표하면서 “일부 유럽인들을 주류 정당에서 포퓰리스트 정당으로 돌아서게 만든 중요한 요인은 무엇보다도 세계화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가치관은 그 다음 문제였다”라고 밝혔다. 또한 “학력이 낮을수록, 소득이 낮을수록, 나이가 많은 노인일수록 세계화에 대한 압박을 느끼는 경향이 있다”고도 말했다.
‘베르텔스만 재단’의 보고서에 따르면, 특히 독일의 AfD 지지자들에서 이런 두려움은 더욱 뚜렷이 나타났다. 전체 유럽인들 가운데서도 가장 세계화를 두려워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독일의 주류 정당 지지자들보다도 두 배 이상으로 두려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정이 이러니 메르켈 총리의 난민 수용 정책에 대한 반발심과 경계심을 갖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을지 모른다.
한편 영국의 <가디언>은 이번 총선 결과에 대한 온라인 인터뷰를 통해 독일인들이 생각하는 AfD의 승리 이유와 독일 정치의 미래를 살펴봤다. 이에 따르면 독일인들 대다수는 AfD가 총선에서 승리한 이유로 난민 문제를 비롯해 기성 정당의 불통, 메르켈의 독단, 동서로 갈라진 괴리감, 동독인들이 느끼는 소외감, 진정한 우익 정당의 부재 등을 꼽았다.
바이에른주의 한 시민은 “그렇게 오랫 동안 대연정이 집권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하면서 “일부 독일인들은 독일과 같은 부국이 그리스나 난민들에게 쓸 돈은 있으면서 학교와 도로 건설에 쓸 돈은 왜 없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특히 구동독 지역의 주민들은 여전히 구서독의 주류 정당들이 자신들을 소홀히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서부와 동부 사이의 갭은 크다”라고 말했다. 구동독 사람들은 자신들의 목소리가 의회로 전달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이런 까닭에 AfD가 자신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다른 시민은 “기민당-기사당 연합은 노동자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잊었다”고 비난하면서 “많은 유권자들은 독일과 같은 부국에서 빈곤층 이하로 살고 있는 사람들이 해가 갈수록 늘고 있다는 점에 실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AfD 지지자들 가운데는 주류에서 밀려났다는 소외감을 느끼고 있거나 혹은 곧 밀려날지 모른다는 불안에 떨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한편 AfD 지지자들의 공통된 특징들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우선 여성보다는 남성이 많다. 가령 이번 총선에서도 남성 유권자 가운데 16%가, 여성 유권자 가운데 9%가 AfD에 표를 던진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구동독 출신 유권자들, 블루칼라 노동자들, 30~59세의 중장년층 사이에서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런 점에서 많은 정치전문가들은 AfD 지지자들과 도널드 트럼프의 지지자들을 곧잘 비교하곤 한다. 사실 트럼프가 당선됐을 때 독일에서 유일하게 반색했던 정당도 바로 AfD였다. 당시 베아트리스 폰 슈토르히 AfD 당대표는 페이스북을 통해 “트럼프의 승리는 서방세계 국민들이 뚜렷한 정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는 신호다”라고 촌평했다.
AfD와 트럼프가 내세우고 있는 정책 방향은 여러 면에서 상당히 비슷한 점이 있다. 가령 남부 국경선 강화, 무슬림에게 불리한 법안 상정, 환경보호 관련 법안 폐기 등이 그렇다. 독일 공영방송 <ARD>의 정치 TV쇼 프로그램인 <마이쉬베르거>에서 미국의 작가인 에릭 헨슨은 “AfD를 지지한 유권자들은 트럼프를 뽑은 유권자들과 동일한 사람들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또한 미 대선 후 ‘에디슨 리서치’가 수집한 출구 조사 데이터에 따르면, 트럼프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경제 문제보다는 ‘이민자 문제’ ‘테러리즘’이 더욱 중요한 관심사였다. 트럼프 지지자들의 42%만이 경제 문제를 중요시 여긴다고 응답했으며, 이를 증명하듯 오히려 연소득 5만 달러(약 5700만 원) 이하 유권자들 사이에서의 득표율이 5만 달러 이상의 유권자들 사이에서의 득표율보다 저조했다. 학력 수준도 트럼프를 지지하는 데 있어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다. 오히려 백인 대졸자들 사이에서의 득표율은 49%였으며, 이는 힐러리 클린턴의 45%를 앞서는 것이었다.
이와 관련, 런던 버크벡대학의 에릭 카우프만 교수는 “소득과 물질적인 환경은 우파 포퓰리즘을 이해하는 데 있어 특히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면서 “다양성과 다름은 질서와 안정을 추구하는 우파 권위주의자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오늘날 많은 서방 국가의 투표 성향을 결정짓고 있는 요소다”라고 말했다.
이런 사정은 독일도 비슷하다. 지난 4월 발표된 쾰른경제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AfD의 지지자들 가운데 약 34%가 전체 인구의 상위 5분의 1에 속했다. 그런가 하면 자신의 경제적 상황에 대해 걱정하고 있는 비율은 10% 미만이었다. 또한 지난 3월, TNS 인프라테스트가 실시한 조사 결과도 비슷했다. AfD 지지자들의 79%가 자신의 경제적 상황에 대해 ‘좋음’ 또는 ‘아주 좋음’이라고 응답했다. 경제적인 문제가 AfD를 지지하는 주된 이유가 아니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민자에 대한 두려움은 저소득층과 고소득층을 막론하고 소득 계층 전반에 걸쳐 두루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반이민 정서와 소득 수준은 별개라는 것이다. 실제 독일에서는 무직자들의 투표율이 저조한 편이기 때문에 AfD의 승리에 그다지 뚜렷한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공포는 불안을 낳고, 불안은 보수를 낳는다’고 한다. 트럼프의 승리나 AfD의 승리는 공포와 불안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분명 맥을 같이 한다. 트럼프 당선 이후 미국 내 분열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처럼 당분간 독일에서도 ‘반나치’ 그리고 ‘반 AfD’를 외치는 시민들의 시위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4연속 연임이라는 역사를 쓴 메르켈 총리가 과연 이런 험난한 정국을 어떻게 헤쳐 나갈지 더욱 주목되는 이유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yo.co.kr
AfD 성공 뒤에 트럼프 도운 ‘해리스 미디어’ 있다 선거 내내 자극적인 발언으로 미국인들의 시선을 집중시켰던 도널드 트럼프처럼 AfD 역시 선거 기간 내내 막말에 가까운 과격한 말들을 쏟아내면서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이는 독일 사회에 잠재해온 불만과 불안을 자극하기 위한 선거 캠페인이었으며, 결과적으로는 성공을 거둔 셈이 됐다. 그런데 AfD의 이런 선거 캠페인 전략의 이면에 트럼프의 숨은 조력자였던 ‘해리스 미디어’가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화제가 되고 있다. 텍사스주에 위치한 온라인 광고 에이전시인 ‘해리스 미디어’는 트럼프의 공화당 경선 당시 온라인 캠페인을 조직했으며, 특히 선동적이고 공격적인 선거 운동을 하기로 유명한 업체다. AfD의 다소 공격적인 선거 캠페인 역시 ‘해리스 미디어’의 작품이었던 것이다. 빈센트 해리스가 설립한 ‘해리스 미디어’는 선동적이 공격적인 선거 운동을 하기로 유명한 업체다. 2008년 빈센트 해리스가 설립한 ‘해리스 미디어’는 그동안 많은 논란이 있었던 몇몇 보수 정당들의 승리를 이끌어낸 바 있다. 가령 영국에서는 반유럽연합을 주장하는 영국독립당(UKIP)의 선거 운동을 도왔으며, 이스라엘에서는 우익연합정당인 리쿠드의 선거 운동을, 그리고 미국에서는 릭 페리 전 텍사스 주지사의 대선 운동이나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의 대선 운동 등 주로 공화당 정치인들의 선거운동을 도왔다. 하지만 가장 큰 성과는 정치 무명이었던 테드 크루즈를 텍사스주 상원의원 선거에서 승리하도록 도운 것이었다. 해리스의 도움으로 온라인 상에서 폭발적인 지지를 얻었던 크루즈는 영향력 있는 블로거들과 친분을 쌓으면서 인지도를 높여갔고, 결국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이 승리는 공화당 정치인들이 해리스의 단골이 되는 계기가 됐었다. 독일에서도 ‘해리스 미디어’의 공격적이고 자극적인 선거 운동은 계속됐다. AfD의 의뢰로 온라인 선거 캠페인을 맡았던 해리스는 주로 반이슬람 정서를 자극하는 캠페인을 벌였다. 무엇보다도 독일 유권자들이 우파 포퓰리스트 정당을 지지한다는 사실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였다. 이에 지지자들로 하여금 페이스북 프로필 사진에 AfD를 상징하는 표시를 나타낼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을 짰으며, 타임라인에는 AfD 정당을 상징하는 파란색의 작은 광고가 노출되도록 했다. 가령 정당 이름은 배제한 채 “12년이면 충분하다”는 글과 함께 메르켈의 심술궂은 얼굴 사진이 보이도록 한 것이다. 이는 사진을 클릭하면 AfD의 홈페이지로 접속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것이었다. 결과적으로는 온라인 상에서의 이런 과격한 선거 운동이 ‘샤이 AfD 지지자들’을 자극하는 데 성공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