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집은 모두 미국 시민권자인데요, 북한의 핵 위험이 더 심해지면 미국인들은 모두 철수한다는데 그런 상황이 오면 비행기 표를 제대로 살 수 있을까요?”
나는 그녀가 같은 한국인인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자신은 미국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비행기표 걱정은 할 것 없을 것 같은데요. 미국에서 비행기들을 보내 미군 기지나 서울공항에서 미국시민들은 다 데려가지 않겠습니까? 미국시민권자시니까 가족을 데리고 그 때 비행기를 타고 가시면 될 겁니다.”
“그게 될지 모르겠어요. 지금 한국에 미국 시민권을 딴 사람이 만 명이 넘는다고 하는데 그 사람들을 어떻게 다 데리고 가겠어요?”
“북에 억류된 단 한명의 미국인도 미국의 전직대통령이 가서 구출해 비행기로 데리고 가는 나라인데 그게 걱정이겠습니까?”
나는 그 부인을 보면서 슬퍼지고 있었다.
“변호사님은 무서운 김정은이가 핵을 터뜨리면 어디로 피난을 가실 거예요?”
그녀가 물었다.
“저는 미국보다 더 좋은 나라로 갈 겁니다. 거기가 더 안전하고 영원합니다.”
“그게 어디인데요?”
“천국입니다. 미국은 천국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거기 유색인종으로 살면 결국 차별받는 밑바닥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도망 하시는 것이 잘하는 행동인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저는 사업가인 아버지한테서 위기상황이 닥쳐오면 바로 금이나 달러를 가지고 멀리 피난하라는 소리를 어려서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어요.”
그녀가 말했다.
“돈 없는 가난한 집 아들인 아버지는 6.25전쟁 때 군에 가서 6사단 병사가 되어 전투에 참여하고 살아남아 저를 나으셨죠. 아들인 저는 역시 철책선이 있는 그 부대에 장교로 가서 젊은 날을 보냈어요. 위기상황이 다가오면 사람들이 힘을 합쳐 싸우면 꼭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겁을 먹고 도망가는 행위 그 자체가 벌써 패배한 겁니다. 미국으로 가서 죽을 때까지 여기같이 대접받고 편안히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변호사님 얘기를 들으니까 나하고는 전혀 별세계 사람들의 소리를 듣는 것 같아요. 나 원 참. 그리고 전쟁이 나면 북쪽 사람도 무섭지만 여기 이 사회의 밑바닥 사람들이 더 무섭다고 하던데요?”
그녀를 보면 이 사회에서 가진 사람들 상당수의 기본적인 의식을 솔직히 볼 수 있었다. 많은 외화를 미국으로 빼돌리고 먼저 미국으로 간 가족이 있었다. 그 집 부인이 한국 법원에서 남은 한국의 재산을 가지고 소송을 진행 중에 있었다. 우연히 내가 그 사건의 대리를 맡은 변호사였다. 소송이 진행 중이던 어느 날 그녀가 나의 사무실을 찾아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존경하는 재판장님 하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가련한 여인의 모습을 보이던 여자였다.
“나 이제 시민권자가 됐어요. 미국인이란 말이예요. 한국법원이나 법관은 다 썩었어. 나 이제부터 미국법원에서 소송을 할 거예요. 그러니 당장 소송을 그만둬 줘요. 당장 집어 치우라구요.”
“그러면 어떻게 하시려구요?”
내가 되물었다.
“미국 법원에서 판결문을 받아가지고 한국에 오면 한국에서는 그 명령을 그대로 따른다고 미국 변호사한테 들었어요.”
나는 그녀의 턱없이 오만해진 모습을 보면서 토할 것 같았다. 나는 요즈음 한국인에게는 열등한 유전자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혹을 느낀다. 개들을 보면 어떤 학대를 당하고 잡아 먹혀도 인간에게 절대 복종하는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미치기 전에는 원초적인 자유를 가질 수 없는 게 개의 운명이다. 일제시대에는 뼈까지 일본인이 되자고 한 친일파들이 있었다. 그들에게는 일본제국의 시민권이 완장이었다. 해방이 되자 일본으로 도망을 가서 거기서 일생을 마친 사람들도 있었다. 약하고 가난해도 내 나라를 사랑하고 당당하게 세계와 맞설 수는 없을까. 핵무기보다 무서운 병기가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와 자존심이 아닐까. 미국시민권을 따고 미국에 가서 한국의 전쟁을 구경하고 싶은 사람들의 영혼의 프로그램을 바꾸어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