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여러 해 살다보니까 작은 자기 일에 빠져서 사람들과 사귀기를 중단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어. 내가 본 한 일본인은 휴가 때 만화만 몇 백 권 빌려서 아무데도 가지 않고 방에 틀어박혀 그것만 보는 거야. 기계조립에 빠진 사람도 있고 종류별로 그런 매니아가 많아. 사람을 만나지 않고 혼자 살아가는 족속이지.”
혼자 살아가는 족속이라는 말이 귀에 들어왔다. 평생을 내가 그랬던 것 같다. 초등학교시절은 아이들과 어울리지 않고 어둠침침한 만화방에서만 살았다. 한 만화방만 다닌 게 아니라 여러 동네 만화방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집에서 혼자 있을 때면 수수깡을 사다가 연필 깍는 칼로 수수깡을 자르고 붙여 비행기나 헬리곱터의 모형을 만드는 게 취미였다. 내성적인 성격이라 남과 어울리지를 못하고 내 안의 세계에서만 살았었다. 중고등학교 시절은 도시락을 싸들고 남산도서관을 다니면서 소설을 빌려 읽곤 했다. 대학시절도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것 같다. 책을 싸들고 암자의 뒷방이나 얼어붙은 강가의 방가로를 빌려 그곳에서 혼자 살았다.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게 불편했다. 집으로 돌아와서 아들과 저녁을 먹으면서 일본의 매니아들 얘기를 전했다. “아버지 우리나라도 사람들 하고 만나지를 않고 방에 틀어박혀서 자기 일만 하는 젊은 사람들이 많아. 하루 종일 게임만 하는 친구도 있고 야구나 축구경기만 보는 친구도 있어. 그렇게 하다가 대박이 터지면 천재소리를 듣고 그런 게 없으면 ‘찐따’가 되는 거지.”
“너는 어떠니?”
삼십대 중반의 아들에게 물었다.
“나는 방안에 들어박혀 찐따 노릇을 하는 게 싫어 세상에 나가 한 사람 한 사람과 그물코 같이 관계를 맺어 인적네트워크를 형성하면서 살고 싶어. 그게 사는 것 같아.”
평소 아버지인 나의 모습에 반발해서 그렇게 말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아들 녀석도 어렸을 때 노는 걸 보면 혼자 방에서 장난감자동차들을 하루 종일 분해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며칠 전 손녀를 데리고 아이들의 놀이방으로 데리고 간 적이 있다. 특이한 곳이었다. 작업대 위의 통에는 네모난 칸 마다 색색의 플라스틱 알갱이들이 들어있었다.
아이들이 핀셋으로 그 알갱이들을 집어 놀이방 주인한테 받은 본 위에 있는 작은 구멍에 맞추어 넣는 작업이었다. 보석세공을 하는 사람들의 섬세한 작업과 유사했다. 그게 완성이 되면 비행기도 되고 꽃이 되기도 했다. 손녀는 미동도 하지 않고 작업에 몰입하고 있었다.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인간이 있다. 박수와 환호 그리고 인기 속에서 삶의 보람을 느끼기도 한다. 사람들을 만나고 관리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다. 정치인이나 경제인 그리고 인간을 낚는 베드로가 된 종교인들이다.
혼자 내면의 세계에서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도 있다. 전주의 문학관에서 소설 ‘혼불’을 쓴 여성작가가 쓴 원고지가 천정까지 닿을 듯 쌓여있는 걸 본 적이 있다. 그 녀는 결혼도 세속의 즐거움도 포기하고 평생 자기의 방에서 원고지의 그물코를 또박또박 메우다가 죽었다고 하고 있다. 그녀는 이름이 났지만 평생 글을 쓰다가 이름 없이 사라진 사람들도 많다. 일생을 글을 쓰고 몇 사람 앞에서 작은 문학 강연을 하다가 저 세상으로 간 분의 수필집을 본 적이 있다. 베스트셀러가 된 음란한 여성탤런트의 상업적인 수필과 비교가 되지 않는 좋은 책이었다.
다만 세상에서 상업적인 성공을 이루지 못했을 뿐이다. 자본주의는 장사꾼의 잣대로 재는 세상이다. 돈을 벌어야 대박이 터졌다고 표현한다. 세상적인 성공을 이루지 못하더라고 더 소중한 것들이 많지 않을까. 평생을 기도하는 경건한 수도사의 삶은 세상적인 대박과는 무관한 것이다. 혼자 사는 족속이란 말을 듣고 한번 생각해 보았다. 그걸 자폐증 같은 부정적인 관념보다 자기 일을 홀로 하는 생산적인 관념으로 바꾸어보면 어떨까.
대개는 자기세계에 빠져있는 경우가 많다. 어떤 일을 바보도 사흘은 할 수 있다. 보통사람도 석 달은 할 수 있다. 그러나 골방에서 같은 일을 삼십년 이상 전념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작은 일에 충성하면서 그렇게 혼자 살아가는 족속은 괜찮은 사람들이 아닐까.
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