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수 부재’ 상황에서 삼성전자를 사실상 이끌던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겠다고 전격 선언했다. 사진=임준선 기자
13일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은 반도체사업을 총괄하는 부품부문 사업책임자에서 자진 사퇴한다고 밝혔다.
이와 동시에 삼성전자 이사회 이사, 의장직도 임기가 끝나는 오는 2018년 3월까지 수행하고 연임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또한 겸직하고 있는 삼성디스플레이 대표이사직도 사임할 예정이다.
권오현 부회장은 “나의 사퇴는 이미 오래전부터 고민해 왔던 것이고,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판단했다”며 “급격하게 변하고 있는 IT 산업의 속성을 생각해 볼 때 지금이 바로 후배 경영진이 나서 비상한 각오로 경영을 쇄신해 새 출발할 때라고 믿는다”고 용퇴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권오현 부회장 “지금 회사는 엄중한 상황에 처해 있다”며 “다행히 최고의 실적을 내고는 있지만 이는 과거에 이뤄진 결단과 투자의 결실일 뿐 미래의 흐름을 읽어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는 일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또한 권오현 부회장은 “내 사퇴가 이런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고 한 차원 더 높은 도전과 혁신의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고 전했다.
1952년생으로 어느덧 환갑을 넘긴 권오현 부회장은 샐러리맨에서 최고경영자 자리까지 오른 ‘샐러리맨의 신화’로 불리고 있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권오현 부회장은 샐러리맨으로 처음 일을 시작한 것은 아니다. 반도체 연구원으로서 오히려 학자 쪽에 가까웠다. 서울대와 카이스트에서 각각 전자공학 학사와 석사학위를 취득한 권 부회장은 지난 1977년 한국전자통신연구소 연구원으로 사회생활에 첫 발을 내딛었다.
권오현 부회장이 삼성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1985년 미국의 삼성반도체연구소 연구원으로 자리를 옮기면서다. 그해 그는 미 스탠퍼드대 대학원에서 전기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기도 했다.
권오현 부회장은 삼성에 입사하자마자 두각을 나타냈다. 1987년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문에서 4메가 D램을 개발해 삼성그룹 기술대상을 수상한 것. 이 공로로 권 부회장은 이듬해인 1988년 4메가 D램 개발팀장(부장)으로 승진한다. 권 부회장은 이에 그치지 않고 지난 1992년 64메가 D램까지 세계 최초로 개발해내면서 다시 한 번 삼성그룹 기술대상을 차지했다.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월등한 실력을 보인 권오현 부회장은 1997년 상무이사 직급으로 비메모리사업 분야인 삼성전자 시스템LSI로 자리를 옮긴다. 권 부회장은 2002년 디스플레이 구동칩(DDI)으로 세계 시장 1위를 차지하더니, 2005년부터는 CMOS 이미지센서(CIS), 내비게이션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스마트카드IC 등 5대 비메모리 성장 동력 제품군을 선정, 5개 중 4개 품목에서 세계 1위를 달성하며 사업 확장에 박차를 가했다.
이후 권오현 부회장은 2008년 삼성전자 반도체총괄 사장에 취임한 후 DS사업총괄 사장, 부회장을 거쳐 2012년 6월 삼성전자 DS부문장 겸 대표이사 부회장까지 올랐다.
권오현 부회장은 30년 넘게 삼성전자에 몸담으면서 최근에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총수 부재’ 상황에서 삼성전자를 사실상 이끌어 왔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 받아 권오현 부회장은 올해 상반기 140억 원에 가까운 보수를 받아 전문경영인 가운데 가장 많은 액수를 받은 ‘연봉킹’의 자리를 유지했다.
한편 권오현 부회장은 조만간 이재용 부회장을 포함한 이사진에게 사퇴 결심을 전하고 후임자도 추천할 계획이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