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천사 아빠’ 눈물의 호소부터 성적 집착 ‘사이코패스’까지
지난 13일 서울 중랑경찰서는 여중생 사건의 피의자 이 씨에게 아동·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상 강제추행 살인과 형법상 추행유인, 사체유기 혐의를 적용해 검찰에 기소의견 송치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 씨는 자신의 성적 욕구 해소를 위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 씨는 지난 9월 30일 낮 12시 20분께 딸 이 아무개 양(14)에게 피해자 A 양(14)을 서울 중랑구 망우동 자택으로 데려오게 했다. 자택에서 이 씨는 A 양에게 수면제 성분이 든 음료수를 마시게 해 잠들게 한 뒤 추행했다. 다음날인 10월 1일 오후 12시 30분께 A 양이 깨어나 저항하자 이 씨는 A 양을 넥타이와 수건 등으로 목 졸라 살해하고 시신을 강원도 영월군 야산에 유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여중생 살인 및 사체유기 사건 피의자인 이영학 씨가 13일 오전 서울 중랑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기 전 취재진 앞에서 심경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 ‘딸 위해 눈물로 호소’ 천사 ‘어금니 아빠’
이 씨가 세간에 알려지기 시작한 건 12년 전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부터다. 지난 2005년 이 씨는 자신과 똑같은 병을 갖고 태어난 딸을 살리려 애쓰는 모습을 한 방송에서 공개했다. 당시 방송에서 이 씨는 자신이 앓고 있는 희귀 난치병 ‘거대 백악종’으로 턱뼈와 잇몸을 제거했고 어금니가 한 개만 남은 상태라고 밝혔다. 아울러 딸에게도 유전된 사실도 함께 화제가 됐다. 이 씨가 이른바 ‘어금니 아빠’로 불리게 된 사연은 이러했다.
이후 이 씨는 홈페이지 운영과 자신의 삶을 책으로 펴내는 등 방법으로 후원금을 모금해 왔다. 지난 2007년 이 씨가 발간한 책 <어금니 아빠의 행복>은 가진 것도 없고 자신과 같은 병을 앓는 딸을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어금니 아빠’의 희망 이야기라고 소개돼 있다. 이후에도 2009년엔 미국 시애틀과 로스 앤젤레스 한인 타운 등에서 딸이 좋아하는 만화 주인공 가면을 쓰고 전단을 뿌리며 모금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가장 최근인 올해 2월에도 이 씨는 방송에 출연해 ‘유전성 거대 백악종’을 앓고 있는 딸의 투병생활을 소개했다.
# ‘지적·정신장애·기초생활수급자’ 이면에 드러난 ‘호화 생활’
아울러 경찰조사 결과 이 씨가 과거 지적·정신장애 2급 판정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 씨는 지난 2015년 11월 지적·정신장애 2급으로 보건복지부에서 장애인 복지카드를 발부 받았다. 복지부에 따르면 이 씨는 지적장애 3급·정신장애 3급으로 중복장애 합산 기준에 따라 지적·정신장애 2급이 됐다. 보건복지부는 이 씨와 같은 장애 등급을 받은 장애인을 지능지수가 35~60 미만으로, 일상생활의 ‘단순한 행동’을 훈련시킬 수 있는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다.
또 이 씨는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정돼 복지 혜택까지 누린 것으로 드러났다. 이 씨는 지난 10여 년간 기초생활수급자로 분류돼 매달 170만 원가량의 복지 혜택을 받은 사실도 확인됐다. 서울 중랑구에 따르면 그는 2005년부터 올해 9월까지 생계급여 100만 원과 장애수당, 주거수당까지 포함해 매달 170만 원가량을 받았다.
이 씨는 고급 승용차 여러 대를 운전했는데 2000cc 미만의 외제차 한 대만 자신의 이름으로 등록했다. 이 차는 시가 4000만 원 넘는 외제차였지만 배기량이 1999cc여서 재산 기준에서 빠졌다. 중랑구에 따르면 지체장애인과 중증장애인의 2000cc 미만의 차량은 재산 산정 기준에서 제외된다. 이 씨가 제도의 허점을 의도적으로 노리고 복지 혜택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하지만 ‘지적정신장애’, ‘기초생활수급자’로 밝혀진 바와 달리 정작 이 씨의 실제 생활은 호화스러웠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났다. 일부 매체에 따르면 이 씨는 자신 명의의 차로 한 대가 등록돼 있지만 외제차를 포함한 고급 차량을 3대 이상 이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백만 원짜리 강아지를 사고 판 정황이 포착됐으며, 그와 숨진 부인이 온몸에 한 문신 비용도 수천만 원에 달할 것으로 전해졌다.
‘어금니 아빠’ 이 씨가 11일 오전 현장검증을 위해 서울 중랑구 사건현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임준선 기자
# 범행에선 지적장애 무색케 한 치밀한 ‘살인범’
그러나 지적정신장애 등급을 받은 이 씨의 본모습은 이번 살인 사건에서 경약을 자아내기 충분했다. 특히 이 씨는 범죄 전후 과정에서 치밀한 모습을 보였다. 이영학 씨는 지난 9월 30일 딸을 시켜 A 양을 중랑구 망우동 집으로 유인했다. 경찰은 그가 초등학교 때 집에 놀러왔던 A 양을 알고 있었고 성적 욕구를 해소할 범행대상으로 선정한 뒤 딸과 함께 A 양을 집으로 유인할 계획을 세웠다고 설명했다. 당시 이 씨 집 냉장고에는 전날 미리 준비해 둔 수면제가 담긴 음료수병이 들어있었다. 이 음료수를 마시고 잠 든 A 씨를 성추행했고 다음날인 10월 1일 딸이 외출한 사이 오후 12시 30분쯤 잠에서 깬 A 양을 살해했다.
이 씨의 치밀함은 범행 도주과정에서도 드러났다. 이 씨는 A 양을 살해한 1일 오후 5시 18분쯤 딸과 함께 검은색 여행 가방을 차량에 싣고 블랙박스를 뗀 채 강원도 영월군 야산에 시신을 유기했다. 이 씨는 다음날인 2일 오후 7시쯤 강원 정선군 한 모텔에 입실해 얼마간 머문 뒤 이른 새벽 서울로 돌아왔다. 이 과정에서 이 씨는 경찰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숙소에 자신의 휴대전화를 두고 나오는 등 치밀함을 보였다. 아울러 A 양 유기 후엔 시신을 담았던 여행용 가방에 마네킹을 대신 넣고 다닌 것으로 알려졌다.
이 씨는 A 양을 살해한 후 알리바이를 세우기도 했다. 이 씨는 A 양의 시신을 유기한 다음날인 지난 2일 딸과 함께 촬영한 동영상에서 “자살을 마음먹고 영양제통 안에 약을 넣어놨는데 A 양이 모르고 먹었다”고 말했다. 자살하기 위해 준비해놓은 수면제를 A 양이 실수로 먹어 사망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 성적 집착 ‘사이코패스’
경찰에 따르면 이 씨는 딸에게 “엄마 역할을 대신할 착한 친구를 데려오라”며 A 양을 미리 특정해 범행대상으로 삼았다. 경찰 프로파일러(범죄심리분석관) 면담 분석 결과 이 씨에게 사이코패스 성향이 공식 확인됐다. 이 씨 심리 면담을 맡은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대 이주현 경사는 13일 “이영학은 보통 사람들보다 성적 각성 수준이 높은데 처음 만난 성인 여자들은 그것을 만족시켜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라며 “통제가 쉬운 여자 청소년을 범행대상으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에 도달했던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외부 전문가들은 이 씨에게 도착적 성향이 있을 수 있다는 견해도 내놓았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어린 시절 아무래도 장애 탓에 또래 여자애들에게도 자신감 있게 접근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이로 인해 음란물에 집착한다든지 성도착을 가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권일용 동국대 경찰사법대학원 교수는 “아동 성범죄자들에게서는 나이가 어리고 취약한 대상을 상대로 자존감을 회복하고자 하는 왜곡된 심리적 특성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미성년을 향한 이 씨의 집착은 그의 소셜 미디어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그의 트위터 계정에는 성적 변태성향을 보이는 문구와 욕설이 적지 않았다. 그는 ‘양아오빠’란 이름을 사용하며 “함께할 동생 구함. 나이 14부터 20 아래까지. 개인 룸, 샤워실 제공”이라는 글을 올려 나이 어린 여자 청소년을 ‘유인’했다. 또 “가정 학교문제 상담 환영 기본급 3~6개월 기본 60~80 이후 작업 시 수당지급”이라는 ‘조건만남’ 취지의 문구도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김상훈 기자 ksanghoon@ilyo.co.kr
딸은 왜 범행에 가담했나? 아버지에 대한 종속 성향 강해 이영학 씨의 딸 이 아무개 양. 연합뉴스 경찰에 따르면 이 양은 이 씨가 A 양에게 수면제가 담긴 음료를 먹이려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고 문제의 음료를 직접 건네기까지 했다. 아울러 친구와 A 양 부모에 거짓말을 하며 이 씨의 범행을 적극 도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경찰은 이영학의 딸이 아버지에 대한 종속 성향이 강하다고 분석을 내놨다. 지난 13일 이영학의 딸을 면담한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대 한상아 경장은 “딸은 제대로 된 가치 판단을 하기 훨씬 전부터 물려받은 유전병에 대해 고민·상담하거나 정보를 획득하는 통로가 오직 아버지뿐이었다”며 “본인이 인식하지 못한 사이에 아버지에게 의존하고 있었고 경제적으로도 아버지가 모금 활동으로 생계를 책임진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절대적으로 옳다고 믿는 아버지가 틀렸다는 걸 인정하기 싫어하는 행동을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 양의 이런 성향 때문에 범행 가담을 거부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견해가 나온다. 배상훈 서울디지털대 경찰학과 교수는 “자신의 행동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아빠가 지시한 대로만 하고 있는데 자신과 아빠를 동일시하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12일 법원은 이 양의 사체 유기 혐의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이날 서울북부지법은 “피의자가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다거나 도망할 염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기각 결정을 내렸다. 이에 경찰 관계자는 “일단 병원에서 머무르며 검찰과 신병처리에 대해 협의한 후 조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