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화? 중국 진출은 OK…경기 못뛰는 상황이 문제”
이들은 올해 리그 시작 전부터 정상급 스타선수들을 수집하며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이하 ACL) 진출을 목표로 내걸었다. 이를 통해 그저 변방의 팀에서 이슈를 만들어내는 구단으로 떠올랐다. 33경기의 결실도 나쁘지 않았다. 구단 창단 이래 최초로 상위스플릿에 진출했다. 이 과정에서 간판 이근호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강원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국가대표에도 약 2년 반 만에 재승선했다. 이에 <일요신문>에서는 이근호를 만나 강원에서의 생활, 위기에 빠진 국가대표팀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 들어봤다.
강원 FC 공격수 이근호는 상위 스플릿에 만족하지 않고 여전히 ACL 목표를 밝히며 올 시즌 이후까지 내다보는 모습을 보였다.
상위권 팀간의 치열한 혈투인 스플릿 리그를 하루 앞두고 있는 13일, 이근호는 원정경기를 치르러 제주로 떠난 동료들과 달리 강원 클럽하우스가 있는 강릉에 있었다. 경고누적 징계로 경기에 나설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근호의 이번 시즌 첫번째 결장이다. 베트남에서 치러진 올스타전, 2번의 국가대표 소집 등 바쁜 일정을 보내는 속에서도 이근호는 이번 시즌 33경기에 ‘개근’했다. 그는 “시즌 초에 부상 없이 뛰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는데 그간 전경기에 출전해서 만족한다”며 웃었다. 그러면서도 “찬스가 많아 더 많은 공격 포인트를 올릴 수 있었는데 아쉽다”는 말을 덧붙였다.
2부리그(K리그 챌린지)에서 어렵게 승격한 강원은 시즌이 시작되기 전인 겨울부터 가장 주목을 받는 팀이었다. 그 시작은 스타 이근호의 영입이었다. 그간 강원은 제한적인 자금으로 운영되고 있었고 이근호와 같은 스타 선수는 구단 입장에서 ‘그림의 떡’이었다.
하지만 이근호를 시작으로 정조국, 오범석, 황진성, 김승용 등 스타 선수들의 강원행이 이어졌다. 이근호는 “그때는 나도 몰랐다. 이후로 한두 명 정도 영입이 예정된 것으로 알고 있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당시 큰 기대는 하지 못했고 단지 나이도 있고 초등학교 때부터 절친한 친구인 주장 백종환과 함께 재밌게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이적을 결정했다”며 “이제와서 하는 이야기지만 종환이는 살짝 주의를 주기도 했다. 강등 경쟁을 할 수도 있는 팀의 사정을 이야기해줬다. 하지만 좋은 선수들이 많이 들어오며 그럴 일은 없게 됐다”며 웃었다.
올 시즌 K리그는 5경기 마무리만을 앞두고 있다. 이근호는 지난 33경기 정규리그를 돌아보는 소감으로 “팬분들과 언론의 주목을 많이 받았다. 그런 부담감이 있었기에 더 책임감을 갖고 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아근호는 지난 시간을 ‘절반의 성공’이라고 평가했다. 목표로 했던 ACL 진출권에는 못미쳤지만 상위 스플릿에 진출하며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그는 “100퍼센트 만족은 아니지만 실패는 아니다. 투자를 한 만큼 어느 정도 성과는 나왔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남은 5경기 목표로 “여전히 ACL”이라고 분명히 강조했다. 이어 그는 “쉽지는 않겠지만 부딪쳐 볼 것이다. 5경기 전체보다는 선수들과 한 경기, 한 경기를 보고 가는 중이다”라며 “남은 기간이 어떻게 보면 내년을 준비하는 기간이 될 수도 있다. 지금 상위스플릿에 있는 여섯 팀이 분명이 내년에도 상위권을 차지할 팀이다. 이번에 이 팀들을 상대로 성적을 내지 못하면 분위기가 내년에도 그대로 이어질 수 있다. 그렇기에 남은 기간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올 시즌만이 아닌 그 이후까지도 내다보고 있는 그였다.
“계약기간이 3년이다. 최소한 그 기간은 채우고 싶다. 팀에서 버리지만 않는다면…(웃음).”
이근호는 경기 내외적으로 영향력이 컸다. 7골 7도움으로 팀내 공격포인트 1위다. 팀에서 가장 많은 경기 MVP(4회), 주간 베스트 일레븐(6회)에 선정됐다. 강원에서의 첫 1년이었지만 팀내 부주장도 맡았다. 지난 추석 연휴에는 친구이자 주장인 백종환과 함께 코칭스태프에 건의해 팀전체 회식 자리를 만들기도 했다. 그는 “명절이니까 맛있는 걸로 먹자고 적극적으로 이야기했다. 다들 만족했다”며 웃었다.
외국인 선수를 다독이는 역할도 그의 몫이었다. 그는 시즌 초반 브라질 공격수 디에고가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귀띔했다.
“나도 해외생활을 해봤다. 환경에 적응을 돕는건 동료 선수들이 해줘야 하는 부분이다. 이제는 이야기할 수 있는데, 디에고와 초반에 갈등이 심했다. 선수들이 모두 코칭스태프에 반대 의견을 낼 정도였다. 성격적으로도 어울리지 않았고 경기 내적인 부분에서도 팀으로서 움직이지 않고 독단적인 플레이를 이어갔다.”
그럼에도 선수들은 디에고를 품으려 노력했다. 수시로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이 디에고와 대화하는 시간을 늘렸다.
“대화를 많이 했다. ‘우리는 같은 편이지 적이 아니다. 너가 우리의 룰과 울타리 안으로 들어오라’고 설득했다. 그러면서 디에고도 변했고 지금은 없어선 안될 선수가 됐다. 이런 게 팀의 모습인 것 같다.”
디에고는 12골 2도움으로 강원 팀내 최다 득점자다. 그가 경기 막판 넣은 골로 승점을 얻어낸 경기가 많다.
이근호는 다만 강원 생활 중 아쉬웠던 순간으로 최윤겸 전 감독의 경질을 꼽았다. 강원을 승격시킨 최 감독은 지난 8월 지휘봉을 내려놨다. 이근호는 “팀의 결과가 조금 부족했지만 경질될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선수들 모두 스스로를 탓했다. 좀 더 잘했어야 한다는 후회를 했다. 그땐 베테랑 선수들도 흔들렸다”고 털어놨다.
이어 그는 “하지만 이런 게 프로의 세계고 우리가 무너지면 감독님이 더 마음 아파하실 것이라 생각하며 선수들과 마음을 다졌다. 그래서 바로 다음 경기 승리를 거뒀다. 지금도 감독님께 죄송한 마음”이라고 덧붙였다.
# 위기의 국가대표
이근호는 올 시즌 내내 꾸준한 활약으로 지난 2015 아시안컵 이후 약 2년 반 만에 국가대표팀에도 재발탁됐다. 경질된 슈틸리케 감독의 마지막과 신태용 감독의 시작을 함께했다.
“대표팀이 많은 질타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많이 안타깝다. 밖에서 볼 때도 그랬고 함께할 때도 그랬다. 지금 상황 자체가 이번 두 경기에서 잘했으면 좀 여론이 나아질 수도 있을텐데 잘 안돼서 팬분들이 실망을 많이 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선수들이 더 노력해야 하고 감독님이나 모든 구성 스태프들이 가져야 할 마음이다. 그래도 좋은 성적을 내려면 한 뜻으로 힘을 좀 실어줬으면 좋겠는데 그러지 못한 것 같아 조금 아쉽다.”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낸 그는 신 감독에 대해서는 “복잡한 과정을 거쳤지만 현재 감독이 신태용 감독님이다. 위기 상황에서 소방수로 나섰는데 총알받이처럼 되고 있다. 지켜보면서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2007년 처음 국가대표로 발탁돼 10년이 넘는 기간을 보냈다. 과거와 현재 국가대표팀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인물 중 한 명이다.
이근호는 현 대표팀을 향한 지적에 “과거와 분위기가 달라진 것은 사실이다. 과거에는 확실히 무거운 분위기가 있었다. 위계라는 게 있지 않나. 그때는 그랬다. 지금은 상당히 자유분방해졌다. 그게 무조건 옳은 것은 아니다.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그는 “개인적으론 어느 정도 나름의 질서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외국의 자유로운 문화도 좋지만 아무리 시대가 변하더라도 우리나라 선수들, 우리나라 사람들의 장점은 지키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 편“이라며 ”참 어려운 부분이다. 그 적정선을 찾는 게 어렵다. 대표팀만 그런 게 아니다. 프로팀도 많이 변하고 있다. 신인 때는 선배들에게 불성실한 태도 등을 지적받으며 정말 눈물이 쏙 빠질 정도로 호되게 혼나기도 했다. 그때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지금은 너무 편안해진 감이 들 때도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 축구계는 대표팀의 ‘중국화’도 한 가지 화두다. 일부 팬들은 선수들이 높은 몸값을 제시하는 중국 리그에 진출해 기량이 퇴보됐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그는 이와는 조금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중국에 가는 거 자체는 나쁘지 않다. 큰 돈을 받으면 그만큼 책임감도 들고 열심히 하게 된다. 다만 경기를 못뛰는 상황은 문제다. 리그를 뛰지 못하니 감각이 떨어지고 그런 부분이 국가대표 경기에서도 드러나게 된다. 사실 큰 금액을 포기하고 팀을 옮긴다는 게 쉬운 것은 아니다. 연봉이 10억에서 많게는 그 이상 차이가 난다. 그래도 경기 뛰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한편으론 K리그에 많은 투자가 이뤄졌다면 이런 현상이 덜했을 거란 아쉬움도 있다.”
중국에 진출한 선수들은 기량을 인정받아 높은 연봉을 받고 있다. 하지만 중국 리그는 여전히 불안정하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 급격히 규정을 손보며 한국 선수들이 피해를 받았다. 외국인 출전 한도를 줄여 일부 선수가 경기에 나서기 힘든 상황이다. 그도 높은 연봉 계약과 함께 해외진출을 한 경험이 있다. 2014년 군 전역과 동시에 카타르 리그로 진출했다. 그의 군인 월급과 카타르에서의 높은 연봉이 비교되며 화제를 낳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팀 사정상 경기에 나서기 어렵게 되자 발빠르게 K리그 임대를 선택하기도 했다.
이근호는 월드컵 본선을 앞두고 있는 대표팀이 나아갈 길에 대한 질문에 “내가 뭐라고 그런 답을 하냐”고 손사래를 치면서도 “다만 바라는 부분은 팀으로 하나가 돼서 상대에 맞설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월드컵이라는 큰 무대에서 일대일로 상대를 제압할 수 있다면 개인마다 자기 플레이를 하면 된다. 하지만 대한민국이 브라질, 독일 같은 축구 강국은 아니지 않나. 팀이 우선이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2007년 처음 국가대표로 발탁돼 아시안컵 무대를 누비던 이근호는 10년이 흘러 이제 30대 베테랑이 됐다. 그 기간 많은 일들을 겪었다. 국가대표 공격수 자리가 늘 그렇듯 때로는 ‘역적’으로 손가락질을 받았고 때로는 ‘국민 영웅’ 대접을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대표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조심스러워했다.
“이제야 좀 ‘안티’가 없어졌는데…. 저 또 안티 생기면 안된다(웃음). 지금 대표팀은 선수들이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 저도 뽑아 주신다면 그동안처럼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드리도록 하겠다.”
강릉=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