뻥쟁이냐 아니냐 ‘베이징’에 달렸다
▲ 그래픽=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
누구나 한번쯤 이런 상상을 해봤을 것이다. 아니면 반대로 10년 혹은 20년 후의 자신의 모습을 보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말 그대로 ‘시간여행’ 즉 ‘타임머신’을 말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꿈꾸지만 여전히 그 실현 가능성에 대한 논쟁이 한창인 시간여행. 여기 자신이 실제로 시간여행을 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이미 수년 전부터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존 티토’라는 인물이다.
지난 2000년 11월 2일 갑자기 한 인터넷 게시판에 나타나서 “나는 2036년 먼 미래에서 왔다”고 주장한 그는 그 후 2001년 3월 24일 마지막 글을 남긴 후 다시 미래로 사라졌다. 적어도 그의 주장에 따르면 그렇다는 이야기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이미 그는 미래로 떠나고 없는 상태. 미래에서 왔다는 그는 게시판을 통해 몇몇 예언을 해서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그의 추종자들에 따르면 이미 몇 가지 예언은 들어 맞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한다. 과연 그는 사기꾼일까, 아니면 정말 미래에서 온 예언자일까.
“나는 2036년 미래에서 온 미국 출신의 군인이다. 현재 플로리다 탬파에 위치한 군기지에서 복무 중이고, 정부의 타임머신 프로젝트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
존 티토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처음에는 자신을 ‘Timetravel_0’라고 소개한 그는 얼마 후 자신의 본명이 ‘존 티토’라고 공개했다. 지금은 없어진 ‘아트 벨’ 사이트와 ‘시간여행 연구소’ 사이트의 게시판에 4개월 동안 글을 남겼으며, 사람들의 질문에 답하는 형태로 네티즌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그렇다면 그는 왜 시간여행을 한 걸까. 이에 대해 그는 자신의 임무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임무는 1975년으로 돌아가서 IBM 5100 컴퓨터를 가지고 다시 미래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IBM 5100에 내장되어 있는 다양한 컴퓨터 코드가 미래에 일어날 ‘유닉스 버그’를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2038년에 ‘밀레니엄 버그’와 비슷한 ‘유닉스 버그’가 발생하는데 이를 막으려면 IBM 5100의 특정한 내장함수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임무를 마치고 미래로 돌아가다가 잠시 2000년에 들렀다고 말한 그는 “2015년 미국 내전 때 잃어버린 가족들의 사진을 갖고 가기 위해서 잠깐 들렀다. 가족들을 보고 싶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그가 떠난 후에는 IBM 엔지니어인 봅 덥케가 그의 주장을 입증하는 발언을 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덥케는 당시까지만 해도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고 있었던 내용을 티토가 말한 것에 대해서 “모두 사실이다. IBM 5100에는 실제로 그런 코드가 있다”면서 놀라워했다. 하지만 티토를 사기꾼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무슨 소리냐. 이것은 기계공학이나 컴퓨터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인터넷을 뒤지면 1999년에 발표된 관련 자료를 찾을 수 있다”고 반박했다.
티토가 타고 왔다는 타임머신도 놀랍긴 마찬가지다. 그는 게시판에 직접 타임머신의 사진까지 올렸으며, 심지어 작동방법과 매뉴얼까지 공개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자동차에 부착하는 형태의 이 타임머신은 2034년 ‘제너럴 일렉트릭’사가 제작한 것으로 2036년에는 타임머신이란 게 매우 흔한 세상이 된다고 말했다. 속도는 시간당 약 10년씩이며, 떼었다 붙였다 할 수 있기 때문에 원한다면 다른 자동차에도 옮겨 부착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주장에는 수상한 점도 없지 않다. 우선 사진이 왜 이렇게 희미하냐는 질문에 그는 “나는 전문 사진가가 아니다.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찍어서 그렇다”라는 애매모호한 대답을 했다. 더욱 수상한 것은 그가 레이저 빔으로 쏜 빛이 타임머신 자동차 근처에서 굴절하는 사진이다. 그는 자신의 타임머신이 블랙홀 원리, 즉 ‘중력 기울기 안정법’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타임머신 근처에서는 빛이 굴절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상한 것은 뒷배경에 있는 창틀이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타임머신 근처에 있는 창틀도 굽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것이다. 말하자면 조작된 사진이라는 것이다.
▲ 존 티토를 추종하는 세력들이 만들어 놓은 웹 사이트. 그의 예언대로라면 2008 베이징올림픽은 열리지 않아야 한다. | ||
또한 미래에는 UFO에 대한 비밀이 풀렸냐는 질문에 그는 “여전히 밝혀진 바가 없다. 내 생각에는 UFO나 외계인 역시 나처럼 시간여행자들인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일부 학자들은 그의 주장이 지금까지 연구되어 온 시간여행 이론에 위배되기 때문에 허구라고 말한다. 즉 타임머신은 타임머신이 제작되기 전의 시간은 여행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원리에 따르면 티토는 자신의 타임머신이 2034년에 만들어졌다고 했기 때문에 실제로 그는 2034년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
그리고 더욱 충격적인 주장도 제기됐다. 티토가 주장한 몇몇 내용들이 팻 프랭크의 SF 소설
핵전쟁 후 고아가 많아지자 소설 속의 주인공 가족이 10대 소년을 입양한다는 내용 역시 티토의 주장과 똑같다. 티토는 2015년 세계대전이 끝난 후 고아가 많아졌기 때문에 전세계적으로 입양이 보편화됐다고 말했다. 또 소설에서 오마하에 미국의 새 수도가 건설된다는 내용도 티토가 “내전 후 미국의 수도는 네브래스카주 오마하로 바뀐다”고 주장한 것과 일치한다.
지난 5월 19일 이탈리아의 <보이저>라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 존 티토의 이야기를 심층 취재한 내용은 더욱 놀라웠다. 취재한 바에 따르면 그가 실명이라고 주장한 존 티토나 티토 가족과 관련된 등기 기록은 어디에도 없었다. 존 티토라는 사람이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그를 추종하는 ‘존 티토 재단’은 사무실 하나 없는 유령 재단이었으며, 티토의 존재를 증명할 만한 어떤 비디오 테이프나 기록도 전무했다. 오로지 티토 가족의 변호인이라고 주장하는 래리 하버만이 그의 존재를 굳건히 믿고 있었는데 취재팀은 조사 과정에서 아마도 티토가 하버의 형제일 것이라는 잠정적인 결론을 내렸다.
▲ 존 티토가 인터넷 게시판에 올린 타임머신 내부(왼쪽). 그는 이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에서 과거로 왔다고 주장했다. 오른쪽은 미래에 발생할 유닉스 버그를 막기 위해 그가 가지러 온 IBM 5100 컴퓨터. | ||
그렇다면 그가 말한 예언들도 모두 거짓말일까. 우선 ‘2005년 미국에 내전이 발생한다’는 예언은 이미 틀렸다. 티토는 “2004년 대선 결과에 불만을 품은 미국인들 간에 불화가 발생하고 도시와 시골이 반목하면서 2015년까지 10년 동안 크고 작은 분쟁이 계속된다. 그러다가 결국 러시아가 미국, 중국, 유럽에 원자폭탄을 투하하면서 3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고 예언했다. 또한 그는 “전쟁 후 미국은 다섯 개의 자치 주로 나뉘며, 강력한 지방 분권 체제로 돌입한다”고 말했다.
이밖에 아직 입증되지 않은 예언들로는 “2004년 이후 올림픽 게임은 잠정적으로 중단됐다가 2040년에 다시 시작된다”는 것과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 간에 대량살상무기를 사용한 전쟁이 발발하게 될 것” “한국, 대만, 일본이 중국에 강제 흡수된다” 등이 있다.
이와 반대로 티토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정확히 들어맞았다고 주장하는 예언들도 있다. 게시판을 통해 여러 차례 광우병의 위험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경고해왔던 티토는 “2003년 미국에 광우병 파동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리고 실제 2003년 3월 미국에서 광우병으로 의심되는 사례가 발생했다. 미래로 떠나기 직전까지 유독 광우병의 위험성에 대해서 언급했던 그는 “내가 사는 미래에 광우병으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죽는다”고 경고했다.
이밖에도 그는 “미국이 대량살상무기를 찾겠다는 명분하에 이라크를 침공할 것이지만 결국 원하는 것을 찾지는 못할 것”이라고 예언했으며, “2004년부터 아시아에 대재앙이 시작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 아시아 대륙에서는 근래 들어 크고 작은 자연재해가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2004년 12월 동남아 지진해일을 시작으로 지난 3월 필리핀에서 발생한 7.0 강도의 지진, 미얀마의 사이클론, 중국의 쓰촨성 대지진 등이 그렇다.
티토가 진짜 누구였는지, 정말 미래에서 온 사람이었는지는 아직도 논쟁이 한창이다. 다가올 미래에는 시간여행이라는 게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때문에 그의 존재를 믿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자신들을 우롱했다는 사실에 분노를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진실을 원한다면 그저 미래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적어도 곧 다가올 베이징 올림픽 때까지만이라도 말이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