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혁 제외한 한승주·김영현·강효종 모두 상무 입대 앞둬…미래의 활약 기대
#FA 유출에 보상선수 선택은 필수
KBO리그는 2020시즌 이후부터 'FA 등급제'를 도입해 원소속구단에 대한 보상에 차등을 두기 시작했다. 이전까지는 이적한 FA의 나이와 경력, 재자격 여부, 몸값 등에 관계 없이 직전 시즌 연봉의 200%에 해당하는 보상금과 팀 내 20인 보호선수 외 1명의 선수 계약을 원소속구단에 양도하는 게 원칙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FA 등급에 따라 보상 규모와 범위가 달라진다. 신규 FA들은 구단 내 연봉 순위와 리그 전체 연봉 순위에 따라 A~C 등급으로 나뉘고, FA 자격을 다시 얻은 선수는 무조건 B등급 이하로 분류된다. 올해의 최정(SSG 랜더스) 같은 '최대어급' FA도 세 번째 FA 자격을 행사해 자동으로 C등급이 됐다.
A등급 보상선수 기준은 기존과 같은데, B등급 선수가 이적했을 때는 영입 구단이 묶을 수 있는 보호선수 수가 25명으로 늘어나고 보상금 규모는 직전 시즌 연봉의 100%로 줄어든다. C등급 선수는 원소속구단에 보상선수를 내주지 않아도 그해 연봉의 150%에 해당하는 보상금만 지급하면 이적할 수 있다. 물론 A등급과 B등급 FA를 영입해도 선수 없이 '돈'으로만 보상할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한다. 원소속구단의 선택에 따라 A등급 선수는 그해 연봉의 300%, B등급 선수는 그해 연봉의 200%에 해당하는 보상금만으로 대체 가능하다.
그러나 보상금만 선택하는 팀은 거의 없다시피하다. 주요 선수를 다른 팀으로 보낸 팀은 대부분 보상선수 지명을 통해 전력 누수를 최소화하려고 한다. 모두 20인 혹은 25인 보호선수 외 전력이라 크게 성공한 사례는 많지 않지만, 가끔은 선물 같은 활약으로 의외의 대박을 터트린 선수들도 있어서다. 이번 스토브리그에 내부 FA를 다른 팀으로 보낸 세 구단도 모두 보상선수를 선택했다. KT는 심우준의 보상선수로 투수 한승주, 엄상백의 보상선수로 외야수 장진혁을 각각 데려왔다. 두산 베어스는 허경민의 보상선수로 투수 김영현을 선택했고, KIA 타이거즈는 장현식의 보상선수로 투수 강효종을 뽑았다.
#주전 외야수를 보상선수로 보낸 한화
네 명의 보상선수 중 가장 주목 받은 선수는 단연 한화에서 KT로 이적하게 된 우투좌타 외야수 장진혁이다. 그는 시즌 종료 후 한화의 신규 유니폼 모델까지 했는데, 정작 그 유니폼을 한 번도 입어보지 못하고 KT로 떠나게 됐다. 심지어 11월 18일 오전까지 한화 소속으로 일본 미야자키 마무리 캠프에 참가하다가 그날 오후 보상선수 지명을 받고 소속팀이 바뀌는 웃지 못할 해프닝까지 겪었다. 훈련 도중 소식을 전해 들은 장진혁은 정든 한화 선수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휴식일을 함께 보낸 뒤 동료들보다 4일 먼저 한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장진혁은 "이미 소문을 듣고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는데 막상 이적이 확정되니 여러 감정이 올라왔다. 김경문 감독님과 손혁 단장님이 따뜻하게 위로해주시고 덕담도 해주셨다"며 "코치님들께서 '오히려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씀해 주시더라. 나 역시 그런 마음으로 새 팀에서 열심히 하려고 한다"고 했다.
2016년 신인 2차드래프트 4라운드 지명을 받고 한화에 입단한 장진혁은 2020년 군대에 다녀온 뒤 절치부심했다. 특히 올 시즌은 그에게 터닝 포인트였다. 개막은 2군에서 맞았지만, 김경문 감독 부임 이후인 6월부터 반전을 일으켰다. 주전 중견수로 자리 잡으면서 99경기에 출전해 타율 0.263, 홈런 9개, 도루 14개, 44타점, 56득점, OPS(출루율+장타율) 0.747을 기록했다. 출전 경기 수만 2019년(113경기)에 못 미쳤을 뿐, 타율·홈런·타점·득점·OPS 모두 데뷔 후 최다 기록이다. 특히 8월에는 23경기에서 타율 0.354, 홈런 5개, 19타점, OPS 1.033으로 맹타를 휘둘러 한화에 가을야구 희망을 안기기도 했다. 김경문 감독은 "묵묵하고 차분하게 자기 할 일을 열심히 하는 모습이 마음에 든다"며 "서른이 넘었으니 이제 야구에 눈을 뜨고 잘할 때가 됐다. 장점인 다리를 잘 살리고, 필요할 때 타점도 올려준다"며 칭찬했다.
한화는 외야수, 특히 발 빠른 중견수 자원이 부족한 팀이라 팬들은 장진혁이 보호선수로 묶일 것으로 봤다. 그러나 최근 수년 동안 하위권에 머문 덕(?)에 대형 유망주를 여럿 확보한 한화는 25인 보호선수를 추리는 데 애를 먹었다. 결국 31세 외야수 장진혁을 명단에 넣지 못했고, 1군 백업 외야수를 절실히 필요로 했던 KT가 곧바로 그를 데려갔다. 올해 팀 도루 최하위(61개)에 머문 KT 입장에선 장진혁의 빠른 발도 가점 요인이었다. 무엇보다 이강철 KT 감독이 평소 장진혁을 마음에 들어했다. 이 감독은 지난 8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장진혁을 트레이드로라도 데려오고 싶어서 '한화가 안 쓸 거면 우리에게 달라'고 한 적도 있는데 잘 안 됐다"며 "예전부터 눈여겨 봤다. 체격도 좋고, 발도 빠르고, 스윙도 좋다. 하이라이트로 한화 경기를 보면 장진혁이 늘 뭔가 치고 있더라"라고 못내 아쉬워했을 정도다.
한화와의 작별을 아쉬워하는 장진혁도 KT행을 새로운 기회로 여기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는 "2019년 한용덕 감독님 밑에서 경기를 많이 뛰었던 것과 올 시즌 중반 김경문 감독님이 오시면서 많은 기회가 주어졌던 게 한화에서 가장 좋은 기억이었던 것 같다"며 "팀 전력이 이제 좋아지고 있고 내년엔 새 구장으로 옮기게 돼 나도 기대가 컸는데, 같이 할 수 없게 돼 아쉬움이 남는다. 9년 동안 많이 응원해주신 한화 팬분들께도 새삼 감사드린다"고 했다. 이어 "KT는 (밖에서 봤을 때) 선발이 굉장히 탄탄하고 장타력도 있는 팀으로 느껴졌다. 베테랑 야수 선배님들이 중요할 때 뭔가 결과를 내주는 팀이라는 인상도 받았다"며 "KT에서 내 가치를 알아봐 주시고 선택을 해주신 것이니 감사하다. 가서 또 생존해야 하니, 내가 야구장에서 보여줄 수 있는 능력을 최대한 어필하고 팀이 이기는 데 많이 기여하고 싶다"고 각오를 다졌다.
#보상선수 3인이 한 팀에서 뛴다?
장진혁을 제외한 다른 세 명의 보상선수에게는 뜻밖의 공통점이 있다. 한화에서 KT로 가는 한승주, KT에서 두산으로 옮기는 김영현, LG에서 KIA로 가게 된 강효종은 12월 2일 나란히 입대해 국군체육부대(상무) 야구단에서 뛰게 된다. 셋 다 원소속구단을 떠나자마자 상무에서 같은 팀 동료가 돼 같은 마운드에 선 뒤 전역 후 다시 서로 다른 유니폼을 입고 새 출발을 하게 됐다.
최근 FA 보상선수의 새로운 트렌드 중 하나는 '군입대 예정자' 지명이다. 보호선수 밖에서 즉시전력감을 찾지 못한 팀들이 군입대를 앞둔 20대 초반의 젊은 선수들을 뽑아 전역 후의 미래에 기대를 거는 것이다. 특히 B등급 FA를 다른 팀으로 보냈을 경우엔 더욱 그렇다. 20명까지 보호할 수 있는 A등급 FA의 경우 곧바로 1군에서 뛸 만한 선수를 데려올 가능성이 생긴다. 그러나 25명까지 묶을 수 있는 B등급 FA의 보호선수 후보는 대부분 1군과 2군의 경계선에 서 있는 선수들이다. 즉시전력으로 분류하기 애매하고 성공 확률도 떨어진다. FA 등급제 시행 이후 지난해까지 B등급 FA의 보상선수 성공 사례가 나오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손아섭의 보상선수 문경찬(NC 다이노스→롯데 자이언츠·2022년), 노진혁의 보상선수 안중열(롯데→NC), 양의지의 보상선수 전루건(두산→NC), 김상수의 보상선수 김태훈(KT→삼성 라이온즈·이상 2023년), 김재윤의 보상선수 문용익(삼성→KT·2024년) 등이 B등급 FA 이동의 여파로 이적했지만, 눈에 띄는 활약은 하지 못했다. 이 가운데 문경찬은 롯데에서 2년만 뛰고 방출됐다.
이번 스토브리그에 팀을 옮긴 FA 네 명도 모두 B등급이다. 이들의 원소속구단들은 보상선수 지명을 앞두고 같은 고민에 빠졌고, 결국 당장 1군에서 기용할 수는 없어도 미래를 도모할 수 있는 '영건'들을 차례로 뽑았다. 2019년 경찰 야구단이 해체된 뒤 프로 선수들 사이에 상무 야구단 입단 테스트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는데, 셋 다 그 바늘구멍을 통과했다는 것만으로도 기대감을 끌어올리는 효과가 있다. 무엇보다 상무에서 군복무를 마친 뒤 기량이 한 단계 성장한 성공 사례들이 적지 않다. 당장 이번 FA 시장에서 한화와 4년 최대 78억 원에 계약한 투수 엄상백이 그랬고, 김민·조병현(이상 SSG)·나승엽(롯데)·서호철(NC)·이유찬(두산) 등도 상무에서 복귀한 뒤 1군 선수로 자리 잡았다.
군입대를 앞두고 FA 보상으로 팀을 옮겼다가 전역 후 '대박'을 터트린 대표 주자도 있다. 2015년 FA 투수 송은범의 보상선수로 한화에서 KIA로 이적한 임기영이다. 그는 상무에서 전역한 뒤 KIA에 합류한 2017년부터 올해까지 8년동안 244경기(선발 125경기)에서 809⅔이닝을 책임지면서 49승 56패 4세이브 20홀드, 평균자책점 4.76, 탈삼진 458개로 맹활약했다. 선발과 중간을 오가며 KIA의 두 차례 우승에도 힘을 보탰다. 정작 FA로 이적한 송은범보다 훨씬 높은 팀 기여도를 뽐내 역대 보상선수 최고 성공 사례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이뿐 아니다. 키움 히어로즈도 내년 시즌 보상선수 성공 신화를 이어갈 희망에 부풀어 있다. 2023년 FA 투수 한현희의 보상선수로 롯데에서 데려온 이강준이 키움에서 전역 신고를 하고 본격적으로 전력에 합류한다. 그는 상무 입대 후 최고 구속을 시속 158㎞까지 끌어올리면서 퓨처스리그 최정상의 불펜으로 활약해 기대감을 높였다.
한승주, 김영현, 강효종도 충분한 잠재력이 있는 선수들이다. 한승주는 지난해 선발과 중간을 오가며 1군 투수로 풀시즌을 보내 경쟁력을 보여줬다. 김영현은 마운드가 강한 KT에서 지난해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이름을 올릴 만큼 구위를 인정받았다. 강효종은 2021년 LG 트윈스의 1차 지명을 받은 특급 유망주였다. KT, 두산, KIA는 이들의 2025년이 아닌 2026년 6월 이후에 희망을 걸고 있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