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 도끼’ 벼랑에 몰리면 발등 찍을 수도
▲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피의자 신분으로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 출두했다. 사진공동취재단 | ||
실제로 검찰은 3인방의 신병을 확보한 이후 노 전 대통령과의 연관성을 집중적으로 추궁한 바 있고, 마지막 보강수사 과정에서도 이들 3인방의 ‘입’에 희망을 걸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3인방 중 가장 먼저 구속된 박 회장은 ‘모기론’을 주장하면서 ‘박연차 게이트’를 ‘노무현 게이트’로 확전시킨 주역으로 돌변한 상태고, 강 회장과 정 전 비서관도 차츰 심경의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 정황이 포착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은 세 사람의 진술에 따라 노 전 대통령의 명운이 갈릴 수 있는 애꿎은 운명에 처해 있는 형국이다. 과연 이들은 마지막 순간에 노 전 대통령에게 ‘비수’를 던지게 될까, 아니면 끝내 방패 역할을 할까.
박연차·강금원 회장과 정상문 전 비서관은 노 전 대통령의 비리 의혹을 입증할 핵심 당사자로 지목받고 있다. 세 사람 모두 노 전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로 노 전 대통령 가족들과 수상한 돈 거래 과정에 깊숙이 개입하는 등 ‘노무현 게이트’를 해결할 나름의 열쇠를 쥐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세 사람은 특히 2007년 8월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만나 노 전 대통령의 퇴임 후 구상을 논의하는 등 노 전 대통령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는 점에서 사건의 진실을 풀어줄 핵심 키워드로 부상하고 있다. 이날 3자 회동에서 ‘50억 원 제공’ 의사를 밝힌 박 회장은 2008년 2월 홍콩 APC 계좌에서 노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인 연철호 씨(노건평 씨 사위) 계좌로 500만 달러를 송금했다. 강 회장도 ‘3자 회동’ 한 달 뒤인 2007년 9월 봉하마을 개발사업 명목으로 설립한 ㈜봉화에 50억 원을 투자했다. 강 회장은 2008년 12월 ㈜봉화 사무실을 봉하마을로 옮기면서 20억 원을 추가로 투입했다.
검찰은 두 후원자가 노 전 대통령 가족과 ㈜봉화에 각각 50억 원을 ‘투자’한 배경에 강한 의구심을 보내고 있다. 측근 3인방이 회동을 통해 노 전 대통령 퇴임을 대비해 50억 원씩 내기로 합의하고 그 합의에 따라 50억 원을 가족과 ㈜봉화에 투자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검찰은 특히 이 자리에 정 전 비서관이 동석했다는 점에서 노 전 대통령도 이 같은 사실을 퇴임 전에 인지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은 검찰 조사에서 측근들과 가족들의 돈 거래 사실을 대부분 퇴임 후에 알았다며 혐의 사실을 완강히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돈 거래에 직접 관여한 이들 세 사람이 노 전 대통령이 연루된 결정적 증거나 폭탄 진술을 할 경우 노 전 대통령의 반박 논리는 퇴색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측근 3인방 중 노 전 대통령을 위협할 핵뇌관은 단연 박 회장이다. 그는 연 씨에게 500만 달러를 건넸고, 정 전 비서관을 통해 100만 달러를 노 전 대통령 측에 전달한 장본인이다. 돈의 성격과 실체를 알고 있는 핵심 당사자인 셈이다. 물론 박 회장과 노 전 대통령 가족들의 돈 거래 사실은 검찰이 전 방위적인 계좌 추적 등을 통해 밝혀낸 것이다. 하지만 돈의 실체와 관련해 당사자들의 입장이 갈리고 있는 데다 검찰이 노 전 대통령의 혐의를 입증할 만한 결정적인 단서를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박 회장의 폭탄 진술은 상당한 파괴력을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박 회장은 변호인인 박찬종 변호사를 통해 “나는 모기에 불과하다”며 억울함을 호소하는 등 ‘박연차 게이트’를 ‘노무현 게이트’로 확전시키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박 회장은 연 씨에게 건넨 500만 달러에 대해 “노 전 대통령을 보고서 줬다”고 진술하는가 하면 정 전 비서관을 통해 건넨 100만 달러도 “노 전 대통령이 필요하다는 전화를 해왔다”고 진술해 노 전 대통령의 직접 개입 의혹에 불씨를 지폈다.
박 회장은 또 사법처리된 친노 인사들과 진술이 엇갈릴 경우 대질신문 등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대부분 관철시켜 ‘박 검사’라는 별칭을 얻고 있을 정도다. 비록 불발로 끝났지만 검찰이 4월 30일 노 전 대통령과 박 회장의 대질신문을 시도했던 것도 ‘모르쇠’로 일관한 노 전 대통령을 압박하기 위한 카드로 풀이된다.
▲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맨위),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가운데), 정상문 전 청와대 비서관(아래). 사진공동취재단 | ||
노 전 대통령의 오랜 친구로 참여정부 안살림을 맡아왔던 정 전 비서관이 검찰과 법정에서 어떤 진술을 할지도 초미의 관심사다. 정 전 비서관은 박 회장이 노 전 대통령 측에 건넨 100만 달러와 3억 원, 정대근 전 농협 회장이 권양숙 여사에게 보낸 3만 달러에 모두 관여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특히 청와대 공금 12억 5000만 원을 횡령해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가 추가로 포착돼 노 전 대통령을 궁지로 몰아넣고 있다. 정 전 비서관이 공금 횡령 등 혐의로 4월 21일 구속되자 노 전 대통령이 다음날(4월 22일) 사실상 ‘백기투항’을 선언했던 배경에는 참여정부 청와대 안살림을 맡아왔던 정 전 비서관의 비중과 역할론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검찰은 정 전 비서관의 신병을 확보한 뒤 노 전 대통령 측근들과 가족 간의 ‘600만 달러+알파’ 돈 거래 사실을 노 전 대통령이 퇴임 전에 인지했는지 여부를 집중 추궁하는가 하면 청와대 공금 횡령과 관련해서도 노 전 대통령의 인지 내지는 묵인 가능성을 열어 놓고 수사에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검찰은 600만 달러가 모두 현금으로 건네졌고 공금 횡령을 노 전 대통령이 인지했는지 여부를 구체적으로 밝힌다는 게 현실적인 한계가 있는 만큼 당사자인 정 전 비서관의 진술에 기대를 걸고 있는 분위기다.
정 전 비서관은 구속 직전에 청와대 공금 횡령 혐의는 시인하면서도 “노 전 대통령은 전혀 모르는 일”이라며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변함없는 충성심을 과시한 바 있다. 하지만 구속에 따른 피로감과 형량에 대한 부담이 큰 데다 검찰이 구체적인 정황 증거를 제시하면서 집요하게 추궁하자 점차 심적 동요를 일으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최근 기자와 만난 대검의 한 관계자는 “구속직후 묵비권 행사 등 노 전 대통령의 연루 의혹을 강하게 부정했던 정 전 비서관이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심경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노무현의 집사’로 불리는 정 전 비서관이 검찰이나 법정에서 폭탄 진술을 할 경우 노 전 대통령은 더욱 곤란한 처지로 몰리게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회사 돈 수백억 원을 임의로 사용한 혐의 등으로 4월 28일 구속기소된 강 회장도 노 전 대통령의 명운을 가를 변수로 꼽히고 있다. 검찰은 그동안 강 회장의 횡령 혐의 외에 ㈜봉화에 투자한 70억 원의 실체를 파악하는 데 수사력을 집중해 왔다.
강 회장은 “㈜봉화에 투입한 돈은 농촌 살리기 사업을 목적으로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 투자한 것으로 문제될 게 없다”는 일관된 주장을 펼쳐왔다. 강 회장은 특히 “노 전 대통령에게는 사적으로 10원도 건넨 적 없다”며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변함없는 의리를 과시하고 있다.
검찰도 그동안 ㈜봉화에 투자한 70억 원의 출처 및 실체에 대해 광범위한 수사를 펼쳐 왔지만 이렇다 할 혐의를 잡지 못할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이 4월 28일 강 회장을 기소하면서 70억 원 실체와 관련된 사안을 제외시킨 것도 혐의를 입증할 정황이나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설령 검찰이 70억 원이 노 전 대통령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돼 있다는 정황을 잡았다 하더라도 강 회장의 성격과 스타일에 미뤄 그가 노 전 대통령을 물고 늘어질 가능성은 낮다는 시각이 많다. ‘모기론’을 주장하면서 노 전 대통령에게 불리한 진술을 쏟아내고 있는 박 회장과는 달리 강 회장은 ‘전두환의 장세동’으로 통할 정도로 노 전 대통령과 경제적 후견인을 넘어 ‘정치적 동지’라는 특별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검찰 일각에서는 박 회장도 처음에는 ‘모르쇠’로 일관하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입을 열기 시작했다는 점에 미뤄 강 회장도 정황 증거 등이 추가로 포착될 경우 심경 변화를 일으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