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품살포 고소고발 이어져…시행사-조합원 ‘딜’ 건설사 관여 입증 쉽지 않아
19일 서울 서초구 반포주공아파트 전경. 단지 내에 들어서자마자 ‘조합원 분양 신청 접수’라는 제목의 커다란 플래카드가 눈에 띄었다. 고성준 기자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재건축 사업이라고 평가됐던 서울 서초 반포주공 1단지 수주전은 현대건설, 잠실 미성·크로바 수주전은 롯데건설 승리로 각각 돌아갔다. 두 수주전에서 쓴잔을 마신 GS건설은 서초 잠원 한신4지구 재건축 시공사로 선정되며 한숨 돌릴 수 있었다.
하지만 ‘가장 뜨거웠던 시공사 수주전’이라는 평만큼, 후폭풍이 거세다. 업체 선정 과정에서 금품이 오간 정황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기 때문. 경찰도 경찰청장의 하명 하에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
무려 2조 6000억 원, 재건축 사업 규모가 가장 컸던 서울 서초 반포주공 1단지를 찾았다. 이미 수주전이 끝나서일까, 19일 오전 취재진이 찾은 반포주공 1단지(1·2·4주구) 분위기는 생각보다 썰렁했다. 단지 내에 들어서자마자 ‘조합원 분양 신청 접수’라는 제목의 커다란 플래카드만 눈에 띄었다. 지난 9월 27일 현대건설이 시공사로 선정되고 서초구청에서 사업시행인가를 받은 만큼, 오는 11월 13일까지 조합원 분양 신청을 하라는 것이다. 조합원 분양 신청을 하지 않으면 분양 대신 현금으로 받게 된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평온함과 달리 반포주공 1단지 조합원들의 마음은 뒤숭숭했다. 한 공인중개사무소 앞에서 만난 70대 조합원은 반포주공 1단지를 향한 과도한 관심에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그는 “이곳 사는 사람들 대부분이 70~80대 노인들이다. 노년을 조용히 지내고 싶은 사람들인데 이런 조그만 동네 소식이 왜 전 국민들에 알려져야 하나”고 불편을 토로했다. 그는 이어 “이제 경찰조사도 시작된다던데 혹시나 문제가 발견돼 시공사 선정을 취소한다거나 재투표한다는 이야기가 나올까 두렵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도 반포주공 조합원들은 현대건설로 시공사가 선정된 과정은 자연스런 흐름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또 다른 70대 조합원은 “아내와 아들 특히 젊은 친구들은 ‘GS 자이’ 등 브랜드를 보고 많이 선호한 것은 사실이지만, 여기 (조합원) 분들 대부분이 나 같은 어르신들이다. 자금력도 확실하지만 무엇보다 과거 정주영 회장 시절 현대그룹의 영광을 현대건설이 다시 한 번 되찾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많이 찍어서 시공사로 선정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진흙탕 싸움이 된 건설사 수주전이 경찰 수사까지 번진 상황에 대해서는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건설사 측이 주는 돈이든 뭐든 우리(조합원들)는 안 받으려 했다”는 그는 “아파트 입구에서 내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가 만나서 막 선물을 주려고 해 호통을 친 적도 있다”고 토로했다.
GS건설이 한신4지구 재건축 수주 과정에서 신고센터 운영을 통해 적발한 금품·향응 증거물. 사진=GS건설 제공
막판까지 박빙의 승부가 예상됐던 만큼, 조합원들의 마음을 사기 위한 건설사들의 경쟁은 치열했다. 그리고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금품’이 동원됐다. 앞선 조합원은 “한번은 내가 계속 무시하니까 나 대신 집사람한테 30만 원 상당의 상품권을 전해주더라. 집사람이 아무 생각 없이 받았다가 나한테 얘기해서 다시 돌려주라고 화를 낸 적이 있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우리 부부가 안 움직이니까 아들 내외한테 가서 홍보책자와 선물 등을 돌린 적도 있었을 정도”라며 “정말 집요하게 선물 공세를 펼쳤다”고 혀를 내둘렀다.
언론의 관심을 받은 것은 최근이지만, 재건축 수주전은 수년 전부터 시작됐다고. 특히 GS건설은 3년 전부터 공을 들여왔다는 게 조합원들의 전언이다. 그는 “3년 전에 누가 보냈는지 안 적혀 있는 선물세트(치약, 샴푸가 담겨 있는)를 받은 적이 있었다”며 “누가 보냈는지 몰라도 주소와 이름이 맞아서 좀 긴가민가 했지만 그냥 받아서 썼다. 나중에 GS건설 쪽에서 나온 과장이라는 사람이 ‘선물 잘 받으셨죠’라고 물어봐서 깜짝 놀란 적이 있다. GS건설은 그만큼 오랫동안 이번 수주전에 공을 들였다”고 털어놨다.
그는 마지막으로 “아파트 여러 채를 가지고 있어 용산 동부이촌동도 그렇고, 몇 번의 아파트 재건축 사업을 경험했지만 이번처럼 엄청난 규모의 시행사(아웃소싱·용역업체) 직원들이 동원된 것은 처음 봤다”며 “그만큼 강남 재건축 사업이 돈이 된다고 판단해서 건설사들이 움직인 게 아니었겠느냐, 돈과 선물로 조합원을 설득하려는 시도가 GS, 현대 말고도 건설사 별로 엄청났다”고 귀띔했다.
‘뒷돈’의 주범이 건설사들이라는 설명. 하지만 건설업계에서 나오는 얘기는 사뭇 다르다. 일부 조합원들이 먼저 금품을 요구하기도 했다는 것. 강남 재건축 수주전에 참여했던 한 건설업체 관계자는 “일부 조합원들은 ‘A 건설사에서 얼마를 주기로 했는데, 얼마를 줄 수 있냐? 더 많이 주면 A 건설사를 찍지 않고 너희 건설사를 찍겠다’며 딜을 제안하기도 했다”며 “한 표가 아쉬운데 조합원의 요구대로 안 줄 수 있냐, 일부지만 직접 금품을 요구한 조합원들의 태도에 우리도 혀를 내둘렀다”고 지적했다.
그런 가운데 GS건설은 다소 구체적인 뒷돈 정황을 폭로하고 나섰다. 지난 15일 서울 서초구 잠원동 한신4지구 재건축 수주전 과정에서 경쟁사인 롯데건설로부터 받았다며 조합원들이 신고한 현금 등 금품명세를 공개한 것. GS건설은 이와 함께 롯데건설이 특별 관리해온 조합원 명단도 공개했다. 해당 명단에는 직책과 성명, 계약금과 등급이 적혀 있었는데 약정 내용에는 지지자 규모와 구체적인 보장(상근이사 보장·향후 조합장 추대·부재자 확보 시 인당 100만 원 별도 수당 지급) 등이 적혀 있었다.
한신4지구 금품 제공 관련 특별 관리자 명단 증거물. 사진=GS건설 제공
‘돈’을 통한 조합원 설득 시도는 시공사 선정 투표 직전까지 계속됐다. 특히 총회를 2주가량 앞두고부터 금품전에 제대로 불이 붙었다. 쟁점은 이사비였다. 시공사 선정 총회를 앞두고 현대건설이 이사비로 7000만 원을 무상 지원하겠다고 내놓았다가 여론의 비판을 받은 것.
여론의 뭇매와 정부의 제재 끝에 결국 이사비는 유야무야됐지만, 조합원들의 심기(?)를 건드린 GS건설도 패배의 쓴 잔을 들이켰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강남 재건축 사업이기 때문에 건설업체들의 어떤 시도도 설명이 가능하다’고 귀띔한다. 사업비가 조 단위로 들지만, 재개발 과정 동안 공사 현장에 세울 간판만으로도, 엄청난 홍보 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것. 홍보 효과로 추정되는 금액만으로도 건설 비용 이상을 뽑을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한 부동산 관계자는 “강남강남 하지만 이번 반포주공 1단지는 압구정동이 본격 재개발되기 전까지는 가장 위치가 좋은 곳이었다”며 “이렇게 치열한 수주전은 한동안 또 보기 힘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사업에 참여하지 않은 한 건설업계 관계자 역시 “원래 재개발, 재건축 때는 서로 입장이 다른 사람들끼리 상당히 치열하게 대립한다”며 “재개발의 경우 반대하는 주민들이 정말 똥바가지를 준비해서 입장이 다른 주민이나 건설업체 측 직원들에게 뿌리며 육탄전을 벌이기도 하지만, 시간이 많이 흘렀고 나름 여유가 있는 조합원들로 꾸려진 강남 아파트 재건축이다보니 사뭇 다른 양상(금품전)으로 수주전이 진행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잠실 등 강남 일대가 재건축 붐을 앞두고 있어, 금품이 횡행하는 악습을 뿌리 뽑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건설사가 용역업체 직원과 그들이 전달하는 금품을 앞세워 조합원을 설득하는 구조를 손봐야 한다는 것. 자연스럽게 수사기관으로의 고소고발도 이어지고 있다. 한신4지구 조합원 1명이 서울 서초경찰서에 고발장을 이미 제출했다. 서초서 관계자는 ”주택 재건축 정비사업 건설업자 선정을 앞두고 롯데건설이 조합원들에게 금품을 뿌린 혐의가 있다며 지난주에 고발장이 접수됐다“고 설명했다.
재건축-재개발 영업 일선 흐름부터 짚어보자. 시공사 선정은 건설사들이 뛰어들지만, 수사 과정 전반의 실제 일처리는 아웃소싱(용역업체) 형식으로 진행된다. 건설사와 계약을 맺은 시행사들이 단순 인원 공급 수준을 넘어 조합원 설득 전반을 책임진다.
통상 이들은 조합원 10여 명당 1명 정도의 요원을 투입한다. 강남 재건축 ‘최대어’였던 반포주공 1단지의 경우 현대건설과 GS건설 역시 각각 수백 명의 시행사 측 요원을 투입했다. 그리고 금품은 이들을 통해 조합원들에게 전달된다.
당연히 위법이다. 현행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 11조에 따르면 ‘누구든지 시공자의 선정과 관련해 금품·향응 등 재산상 이익을 제공하거나 제공 의사를 표시하거나 제공을 약속하는 행위’를 하지 못하게 명시되어 있다. 이 규정을 위반할 경우 건설사 법인, 건설사나 용역업체 직원은 처벌 대상이 된다.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지난 9월 27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공동사업시행 건설업자 선정 등을 위한 2017년 임시총회(서울 서초구 반포주공1단지-1·2·4주구)에서 조합원들이 시공사 선정을 위한 투표를 하고 있다. 박정훈 기자
하지만 수사는 쉽지 않다는 게 사정당국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건설업 흐름을 잘 아는 검찰 관계자는 “이번 강남 재개발 사건이 아닌, 일반적인 사건의 경우”라고 전제한 뒤 “돈을 주고받는 것은 건설업체가 아니라, 건설업체와 계약한 시행사 소속 직원들과 조합원이기 때문에 건설업체가 관여하지 않았다고 하면 그 부분을 수사로 입증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특히 수사를 대비해, 건설업체와 시행사가 ‘애매한 계약서’를 작성한다고 알려졌다.
그는 “시행사와 건설사가 계약서를 쓰더라도 구체적인 인센티브나 뒷돈 부분은 계약서에 절대 포함시키지 않는다”며 “계약서 없이 구두로만 얘기해서 진행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 경우 건설사의 관여 여부를 밝히기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고 털어놨다.
조합원 한 명당 적게는 수십만 원, 많게는 수백만 원의 뒷돈이 횡행하기 때문에 시행사는 수주전에 실패할 경우 수천만 원을 날리기도 하지만, 성공했을 때 얻을 성과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한다. 검찰 관계자는 “제대로 된 수주전에서 한 번이라도 승리하면 시행사 측은 10억 원은 우습게 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뒷돈이 자연스러운 것은 아직 업계가 혼탁하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아파트 재개발은 아니지만, ‘뜨겁다’던 부산 해운대에 들어설 초고층 주상복합 단지 LCT 흐름도 비슷하다. 최근 분양 시장에서 화려하게 부활한 것. 이 단지는 해운대 해수욕장 바로 앞에 101층 높이의 초고층 주상복합으로 사업비만 2조 7000억여 원에 달하는 대형 개발 프로젝트였다.
분양 당시 웃돈이 최소 수억 원은 붙을 것이란 소문이 돌 정도로 관심을 받았지만, 이영복 LCT 회장의 정관계 로비가 검찰 수사로 이어지면서 시세가 내리막을 탔다. 검찰 수사가 막을 내린 직후에는 프리미엄이 없는 분양권까지 나왔을 정도. 하지만 해운대 바로 앞이라는 입지 덕분에 분양 시장에서 빠르게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부산지검 관계자는 “최근 LCT 분양이 굉장히 잘 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강남 재건축 시장도, LCT도 입지가 좋으니 결국 돈이 몰리지 않느냐”며 “이영복 회장이 잘 알지 못하는 정관계 인사들에게 돈을 그렇게 뿌리고 다닌 것도 입지 좋은 곳에 높은 건물만 올리면 돈이 된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환한·김상훈 기자 bright@ilyo.co.kr
[단독] ‘단군 이래 최대 규모’ 재건축 수주비리 수사 경찰이 나선다 경찰청. 이종현 기자 “문제가 되는 부분이 있다면 모두 수사해라.” (이철성 경찰청장)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재건축 단지로 꼽히는 서울 서초구 반포주공1단지와 서초 잠원 한신4지구, 잠실 미성·크로바 재개발업체 선정 수주전 후폭풍이 거세다. 경찰은 건설사와 조합원 간의 금품 거래 정황을 포착하고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 특히 이번 사건은 재개발 관련 혼탁해진 시장 흐름 전반을 보고 받은 이철성 경찰청장이 “문제가 되는 부분을 확실하게 수사하라”고 지시했고, 이에 인지수사를 담당하는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가 직접 나서 관련 범죄 혐의를 모으고 있다. 조만간 용역업체(OS)와 건설업체, 조합들을 상대로 한 압수수색 가능성도 거론된다. 당초 수사 주체는 경찰이 아니라 검찰이 언급됐다. 특히 ‘과거와는 다르게 하겠다’며 수주전에 비교적 달라진 자세로 임했던 GS건설은 수주전이 혼탁해지자, 내부적으로 검찰 고발까지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 흐름을 아는 한 법조인은 “구체적으로 검찰 고발 등도 검토했지만 검찰에서 수사에 당장 나서지 않을 것처럼 입장을 전달해 와 실제 고발까지는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검찰이 수사를 머뭇거린 이유는 앞서 설명한 것처럼 쉬운 수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형사 사건에 밝은 한 검찰 관계자는 “원래 재개발 과정에서의 금품 사건은 건설사 개입 입증도 어렵고 처벌하더라도 조합원 일부와 건설사 임원급이 끝이기 때문에 재미가 없는 편”이라며 “처벌 수위도 약하기 때문에 압수수색 등으로 확인해야 할 것은 많아 품은 많이 들고, 수사 성과는 약한, 소위 말해 검사들이 꺼리는 사건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검찰이 수사를 피한 저의에는 특수수사를 하지 말라는 대검찰청 차원의 지시도 한몫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선 법조인은 “일선 지검 특수부도 이번 재건축 시공사 선정 과정에서 뒷돈이 오간 흐름을 파악했지만, 문무일 검찰총장이 인지 수사는 가능한 움직이지 말라고 지시한 것 때문에 특수부들이 사건에 뛰어들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경찰이 검찰이 머뭇대는 빈틈을 노려, 전통적으로 검찰이 해오던 수사 영역에 뛰어든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