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급 노풍 ‘가문의 부활’ 훈풍 될까
▲ 상주가 된 친노 - 5월 29일 서울 경복궁 앞뜰에서 열린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에서 친노인사들이 한명숙 장례위원장의 조사에 흐느끼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
지난해 2월 노 전 대통령의 퇴임과 18대 총선을 거치면서 쇠락의 길로 접어든 친노그룹은 ‘박연차 게이트’가 터지면서 최대 강점이었던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고 사실상 정치적 파산 위기에 직면했었다. 하지만 ‘주군’인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한 이후 추모 열기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노 전 대통령은 국민적 리더로 부활했고 몰락 위기에 처했던 친노그룹 또한 재기의 동력을 확보하고 있는 형국이다.
침통함과 비통한 분위기 속에 노 전 대통령을 먼저 떠나보낸 친노그룹은 고인의 정치 이념과 철학을 계승·발전시킬 수 있는 정치 세력화를 물밑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과연 친노그룹은 주군인 노 전 대통령의 숭고한 희생을 발판으로 ‘부활의 날갯짓’을 할 수 있을까.
노 전 대통령과 함께 참여정부를 이끌어 온 친노그룹은 크게 386 참모그룹과 참여정부 관료그룹, 야인시절부터 관계를 맺어온 영남 인맥 등으로 분류된다.
‘좌희정(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우광재(이광재 민주당 의원)’로 대표되는 386 참모그룹은 노 전 대통령의 의원 시절부터 정치역정을 함께한 인사들로 참여정부 시절 막강 파워그룹으로 군림했다. 안 위원과 이 의원을 중심으로 민주당 서갑원·백원우 의원,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대변인을 지냈던 윤태영 김만수 천호선 씨 등이 대표적인 386그룹 멤버다.
관료그룹은 참여정부 시절 내각에 중용돼 노 전 대통령과 국정을 이끌었던 인사들을 지칭한다. 참여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지낸 이해찬 한명숙 전 총리, 장관을 역임한 유시민 강금실 김두관 전 장관 등이 대표적이다.
영남인맥은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영남지역을 매개로 인연을 맺어온 인사들로 이들도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와 내각에 두루 포진해 노 전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적극 보좌했다. 노 전 대통령의 ‘영원한 비서실장’으로 통하는 문재인 전 비서실장, 이강철 전 시민사회수석, 김병준 전 청와대 정책실장, 이정우 전 청와대 경제수석, 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 등이 영남 인맥의 핵심이다.
노 전 대통령의 자발적 팬클럽이자 영원한 지지자를 자임하고 있는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와 노 전 대통령의 후원회장을 지낸 이기명 씨, 영화인 명계남 문성근 씨 등도 친노그룹의 핵심 인사로 꼽힌다.
이들 친노그룹은 2002년 대선 과정에서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에 ‘올인’했고, 그해 12월 노 전 대통령과 함께 정권을 거머쥐는 역사를 일궈냈다. 이들중 상당수는 참여정부 출범 후 청와대와 내각에 두루 포진해 노 전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보좌했고 일부 측근들은 국회에 진출해 정치인으로 성장하기도 했다. 2003년 11월 민주당 분열 사태를 겪으면서 친노그룹이 주역이 되어 창당한 열린우리당은 2004년 4월 ‘탄핵 정국’ 속에서 치러진 17대 총선을 통해 과반 의석이 넘는 원내 1당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게 된다.
하지만 과거 정권과 마찬가지로 친노그룹의 전성기 또한 오래가지 않았다. 2007년 야권 대선후보 경선 및 대선 과정에서 열린우리당은 또다시 분열사태에 직면했다. 친노그룹은 끝까지 열린우리당 사수를 고집했으나 2007년 8월 당시 탈당파 주류세력이 창당한 민주신당에 ‘백기투항’하는 아픔을 감내해야 했다.
이후 2007년 대선에서 민주당이 참패하고 2008년 2월 노 전 대통령이 퇴임하면서 쇠락의 길로 접어든 친노그룹은 두 달 후 치러진 18대 총선에서 대거 낙선하면서 명맥만 유지한 정치세력으로 추락했다. 급기야 지난해 12월부터 불어닥친 검찰발 사정한파에 일부 친노그룹 핵심인사가 구속되는가 하면 노 전 대통령 가족과 후원자들의 부적절한 돈 거래 등 갖가지 의혹들이 속속 불거지면서 참여정부의 도덕성은 처참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노 전 대통령과 참여정부가 최대 무기로 내세웠던 도덕성이 곤두박질치면서 친노그룹의 정치명운도 다 된 게 아니냐는 관측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 서거라는 초대형 돌출 변수가 터지면서 꺼져가던 친노그룹의 정치생명에 부활의 불씨가 지펴지고 있는 분위기다. 서거한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추모 물결이 거대한 파도로 변해 정치권을 휩쓸면서 노 전 대통령과 참여정부에 대한 재평가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친노그룹이 당장 정치 세력화를 모색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386 참모그룹의 핵심인 이광재 의원이 구속된 상태고 안희정 최고 또한 검찰 수사선상에 오르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해찬 한명숙 유시민 강금실 등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인사들 대부분이 원외라는 현실적 한계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 애도와 추모 물결이 전 사회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친노그룹이 정치 재기를 모색할 경우 오히려 여론의 역풍 및 국민적 반감에 직면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친노그룹은 당분간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마음속 깊이 애도하고 추모해준 국민들에 대한 고마움과 감사의 뜻을 전하면서 정치적 현안에 대해서는 최대한 목소리를 낮출 것으로 보인다.
다만 노 전 대통령의 정치 이념과 철학을 계승·발전시켜야 한다는 사명감과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는 만큼 민심 흐름과 정국 구도를 예의주시하면서 재기 명분과 세력화 동력을 축적할 가능성에 힘이 실리고 있다.
정국 동향에 밝은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친노그룹은 18대 총선 이후 절치부심 재기를 모색해 왔다”며 “시기와 명분이 문제이지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기폭제로 친노그룹은 어떤 식으로든 정치 세력화를 도모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주군의 희생으로 꺼져가던 정치생명 불씨를 되살리고 있는 친노그룹이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 움직임과 맞물려 그의 정치적 자산과 철학을 계승·발전시키는 정치세력으로 부활할 수 있을지 민심의 향배에 정치권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