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목적 납치 계획했다가 우발 살인 가능성”
엔씨소프트 사장 윤송이 씨의 부친이자,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의 장인 윤 아무개 씨(68) 피살 사건을 수사 중인 양평경찰서 수사팀 관계자의 설명이다. 경찰은 용의자 허 아무개 씨(41)를 구속하는 데 성공했지만, 구체적인 범행 동기를 아직 밝혀내지 못했다.
일각에서는 허 씨가 엔씨소프트가 개발한 리니지 게임에서 사용되는 200만~300만 원 상당의 고가 아이템을 구매하려 한 적이 있다는 점을 들어, 계획 살인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리니지 게임 아이템 고가 거래 등으로 빚을 지게 된 것에 대해 불만을 품고, 엔씨소프트 김택진 대표의 장인을 계획적으로 살해했을 수도 있다는 것.
실제 허 씨는 리니지에서 사용되는 특정 아이템 구입을 희망한다며, ‘서울 강남구에서 직거래 가능, 경기에서 직거래 가능’이라고 인터넷에 글을 올린 바 있다. 하지만 경찰은 게임 아이템 구매 등과 연관된 원한 살인일 가능성은 낮게 보고 있다. 게임 아이템 거래 시점과 횟수를 유의미하게 보기 힘들기 때문. 앞선 경찰 관계자는 “글을 올린 게 지난해이고, 거래 희망 글을 올린 게 단 한 번뿐이지 않냐”며 “그것 때문에 윤 씨를 살해를 했다고 하기에는 설명이 안 되는 부분이 너무 많아서 가능성을 크게 보고 있지는 않다”고 귀띔했다.
지난 10월 27일 오전 엔씨소프트 윤송이 사장 부친 살해 용의자가 경기도 양평군 양평경찰서로 압송되고 있다. 연합뉴스
오히려 경찰은 허 씨가 토지를 개발하고 분양하는 부동산 업자로 최근 윤 씨 자택 인근 주택 공사를 담당하고 있었던 점, 빚 8000만 원가량이 있어 채무 독촉을 받아왔던 점을 유력한 범행 동기로 보고 있다. 하지만 계획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하기에는 빈틈이 있는 부분도 공존하는 게 이번 사건의 특징이다. 특히 허 씨가 수사에 협조적이지 않아 경찰 수사는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목격자가 없고 허 씨가 진술을 하지 않는 탓에, 경찰은 범행 증거 자료를 토대로 기본 범행 사실을 입증했을 뿐이다. 허 씨를 구속시킬 수 있었던 핵심 증거 역시 DNA였다. 경찰 검거 당시 허 씨가 타고 있던 차량에서 발견된 혈흔에서 윤 씨의 DNA가 나왔기 때문. 하지만 구속된 뒤에도 허 씨는 여전히 범행을 부인하고 있다. 경찰은 프로파일러를 투입했지만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고 있다.
# 치밀하게 준비한 계획 살인?!
범행이 계획적이었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얼마나 준비를 철저히 했느냐다. 경찰과 검찰 등 수사기관은 범행 계획 정도를 놓고 우발적 살인과 계획적 살인을 구분하는데, 그런 면에서 허 씨는 살인이 처음부터 목적이었다고 보일 만한 여지의 행동들을 많이 한 게 사실이다.
범행 도구부터 계획적이라는 게 수사 전문가들의 평가다. 허 씨는 칼을 사용해서 윤 씨를 살해했는데, 흉기의 선택부터 ‘살인의 목적’이 있다는 것. 특히 허 씨는 윤 씨를 칼로 세 차례 찔렀는데, 수사 경험이 많은 경찰들은 “말다툼을 하다가 우발적으로 살해하는 것과 달리, 준비해 온 예리한 칼이 있다는 점, 허 씨의 목 등을 세 번이나 찔렀다는 점 등을 볼 때 살인 가능성을 열어두고 범행을 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사건 전부터 ‘치밀’하게 시나리오를 짠 정황도 있다. 휴대폰으로 사전에 범행을 암시하는 검색을 한 것. 범행을 하루 앞두고 허 씨는 자신의 휴대전화로 수갑, 가스총, 핸드폰 위치추적, 고급빌라 등을 검색했다. 범행 대상으로 고급빌라 거주자, 납치 수단으로 수갑, 그리고 범행 도구로 가스총을 준비하려 했다는 설명이 가능하다. 특히 도망치는 과정에서 경찰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위치 추적 과정을 확인한 것에 경찰은 주목하고 있다. 실제 허 씨가 범행 당일 아예 자신의 휴대전화를 꺼두고 이동했기 때문.
사전탐색도 여러 차례 진행했다. 범행 당일 허 씨는 경기 양평군 서종면에 위치한 윤 씨 자택 인근을 세 차례나 찾았다. 지난달 25일 오후 3시, 오후 4시, 오후 5시 10분쯤 범행 현장에 모습을 드러냈고, 색소폰 동호회 활동을 마친 윤 씨는 오후 7시 25분쯤 집 앞 주차장에 도착했다. 윤 씨가 범행 장소를 고른 뒤, 범행 대상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설명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 10월 26일 엔시소프트 윤송이 사장의 부친이자 김택진 대표의 장인으로 알려진 윤 아무개 씨(68)가 경기도 양평 자택 정원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일요신문DB
특히 범행 장소도 기록이 남지 않는 곳이었다. 경찰 수사에 따르면 허 씨는 지난 10월 25일 오후 8시 전후로, 경기 양평군 윤 씨 자택 주차장에서 윤 씨를 살해했다. 집 주변에는 CCTV가 설치돼 있었지만, 윤 씨가 살해된 곳은 CCTV에 찍히지 않는 사각지대였다.
위치가 드러날 것을 분석해 본인 차량의 블랙박스 기록도 남기지 않았다. 기록을 남기지 않으려는 것은 살해한 윤 씨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적용됐다. 윤 씨를 살해한 직후 윤 씨의 차량을 버리고 가기 전, 윤 씨의 벤츠 차량에서 흔적을 지운 것. 윤 씨 차량의 블랙박스 기록을 제거했고 윤 씨의 휴대폰은 물론, 벤츠 차량의 키도 버려버렸다. 물론 윤 씨를 살해할 때 사용한 흉기 역시 버렸지만 결국 경찰인 이를 찾아냈다.
# 준비하지 않은 우발적 살해?!
앞서 언급한 부분들을 보면 매우 치밀해 보이지만, 범행 직후 허 씨의 행동은 빈틈이 적지 않다. 특히 범행 전 치밀했던 행적과 비교하면 의구심이 제기될 만큼 허점이 많다.
우선 허 씨는 범행 후 윤 씨 시신을 주차장에 그대로 둔 채로 차량만 옮겼다. 윤 씨 시신을 남겨뒀다는 것부터 허술하다. 시신을 은닉했을 경우, 살해 여부에 앞서 실종의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보고 경찰이 수사를 천천히 진행하기 때문. 그만큼 도주의 시간을 벌 수 있었다. 근데 허 씨는 오히려 범행 후 경찰이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윤 씨의 시신을 윤 씨 집 앞에 그대로 놓고 왔다.
차량도 제대로 숨기지 않았다. 허 씨는 범행 후 윤 씨의 키를 훔쳐 윤 씨 벤츠 차량을 몰고 현장을 빠져 나왔지만, 윤 씨 자택 5km 인근 공터에 버려뒀다. 벤츠에 장착된 블랙박스를 제거하긴 했으나 경찰이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도로가에 차량을 세워놨고, 인근 CCTV가 찍히고 있는데도 본인 차량(i30)로 옮겨탄 뒤 도주했다. 도주 과정이 치밀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혈흔도 그대로였다. 윤 씨가 숨진 채 발견된 지는 10시간, 범행 20여 시간 만에 전북 임실의 국도에서 경찰에 검거됐다. 그럼에도 검거 당시 허 씨는 범행 과정에서 튄 혈흔이 묻은 옷과 신발을 그대로 착용하고 있었다. 정말 치밀하게 준비했다면, 윤 씨 시신과 차량을 경찰이 쉽게 찾을 수 없는 곳에 은닉시킨 뒤 차량과 옷 등을 버리고, 본인 명의가 아닌 차량으로 도주했어야 한다. 그랬을 경우 경찰이 허 씨를 20시간 만에 검거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허 씨는 본인이 살해한 윤 씨가 엔씨소프트 김택진 대표의 장인이었다는 점도 몰랐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을 수사 중인 관계자는 “이번 사건은 윤 씨가 누구인지 알고 했다기보다는, 그냥 부유한 사람을 범행 대상으로 삼으려던 중 발생한 것으로 봐야 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 남은 건 진술뿐!
경찰에 붙잡힌 허 씨는 윤 씨를 살해한 혐의에 대해 처음에는 부인하다가 향후 ‘살해한 게 맞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범행 동기와 경위에 대해서는 신빙성이 낮은 진술을 하거나 아예 답변을 회피하고 있다. 처음에는 ‘주차 문제로 시비 붙어 순간적으로 욱해서 살해했다’는 취지로 진술했으나, 경찰이 CCTV 기록 등을 토대로 구체적으로 묻자 답변을 거부했다. 심지어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 때에는 “시동이 걸린 윤 씨의 벤츠를 훔쳤지만 살해하지 않았다”며 범행 자체를 부인하기도 했다.
통상의 범행 동기 중 가장 비중이 큰 ‘경제적인 이유’를 경찰은 주목하고 있다. 허 씨가 9월 이후부터 9월 이후 대부업체와 카드사 등으로부터 대출 독촉 문자를 받은 기록이 있기 때문. 경찰은 허 씨가 8000만 원 상당의 채무가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허 씨 역시 경제적인 어려움은 인정했다. 경찰에 “8000만 원 상당 채무가 있지만, 본인 빚은 2000만~3000만 원이고 어머니 빚이 5000만 원이며, 원금과 이자를 포함해 매월 200만~300만 원씩 갚고 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이를 토대로 허 씨의 금융거래 내역을 확인하기 위한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재 경찰이 세운 범행 동기는 ‘경제적인 문제로 어려움을 겪자 고급빌라 거주자에 대한 강도 및 납치, 협박을 준비했다가 윤 씨가 저항하자 우발적으로 살해한 뒤 도주했다’는 것. 경찰 관계자는 ”금전적인 목적의 계획 납치, 우발 살인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남은 구속 기간 동안, 최대한 허 씨의 진술을 끌어내 사건을 검찰에 송치한다는 계획이다.
서환한 기자 brigh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