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초반 ‘커리어하이’ 순항 “나는 농구 못하는 선수…기량발전상 받고 싶어”
올 시즌 원주 DB 프로미 주장을 맡은 김태홍. 최준필 기자
DB는 KBL을 대표하는 명문 팀이다. 프로 출범 20시즌 동안 5위 밖의 순위를 기록한 시즌은 단 6회뿐이다. 플레이오프에는 16회 진출, 3회 우승과 5회 준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태평성대가 지속될 수는 없다. 지난 시즌 5위를 기록한 DB는 시즌 종료 이후 선수단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박지현과 김봉수가 선수생활 은퇴를 선언했고, 에이스로 활약하던 허웅은 상무로 떠났다. 선수생활 막바지를 보내고 있는 팀의 상징 김주성은 더 이상 한 경기 30분 이상을 달릴 수 없다. 팀 내 큰 비중을 차지하는 윤호영도 장기 부상으로 결장이 불가피했다.
또한 DB는 3년간 팀을 이끌어온 김영만 감독과 결별하고, 안양 KGC 인삼공사에서 우승을 이뤘던 이상범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겼다. 선수단에 코칭스태프까지 변화하며 다른 팀이 됐다. 주축 선수들이 대거 빠졌고 코칭 스태프도 바뀌며 팀 정비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이 감독은 DB를 새로운 팀으로 만들어야 했다. 비시즌간 FA 최대어로 꼽힌 이정현 영입전에서도 전주 KCC에 밀렸다.
이처럼 주축 선수의 연이은 이탈, 코칭스태프 교체, FA 선수 영입 실패 등으로 DB는 많은 이들이 하위권 후보로 꼽는 팀 중 하나였다. 올 시즌부터 주장을 맡게 된 김태홍도 DB에 대한 기존의 시선을 인정했다.
시즌 전 많은 전문가나 팬들은 DB를 약체로 꼽았다. 이에 김태홍은 “당연한 이야기”라며 인정했다. 최준필 기자
뚜껑을 열어본 시즌은 기존 예상에서 빗나갔다. 약체로 평가되던 DB는 이정현을 영입하며 ‘호화진용’을 꾸린 KCC와의 개막전에서 승리를 거두더니 내리 5연승을 달렸다. 이후 2연패를 기록했지만 여전히 단독 2위에 올라 있다. 시즌 초이지만 DB는 전문가들의 예상을 뒤엎는 활약을 펼치고 있다.
“개막전 상대가 호화군단 KCC였다. 우리는 다들 안된다고 했다. 그런데 그 경기를 이기면서 자신감을 많이 얻었다. 다음 경기도 이기면서 분위기가 확 살아났다. 비록 5연승 이후 2연패를 했지만 지금도 질 것 같은 느낌은 안 든다. 선수들 마음이 편안해지니까 경기도 잘 풀렸다.”
5연승을 달성했던 부산 KT와의 경기는 DB 상승세의 정점이었다. DB는 경기를 앞서 나갔지만 후반 들어 추격을 허용했다. 4쿼터 들어선 시소게임이 계속됐다. 동점 상황에서 경기 종료 버저가 울리기 직전 김주성이 득점에 성공하며 승리했다. 김태홍은 KT전에 대해 “KT가 앞서갈 때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며 “오히려 우리는 마음이 편했고 KT 선수들이 쫓기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신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DB의 비결로 ‘자신감’을 꼽았다. 기술적으로 크게 달라질 것은 없지만 코칭 스태프가 자신감을 심어줬고 선수단 스스로도 좋은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비시즌부터 감독님이 여러 선수에게 기회를 많이 주셨다. 가장 많이 하시는 말씀은 ‘거침없이’다”라면서 “우리가 젊은 팀이 됐다. 서로 으쌰으쌰 해서 한번 해보자는 분위기가 됐다. 한 번 탄력을 받으면 쭉 달려 나갈 수 있는 팀이다”라고 말했다.
김태홍 개인으로도 기록적인 시즌을 보내고 있다. 지난 2011-2012시즌 데뷔한 그는 올 시즌 7경기를 치른 현재 데뷔한 이후 출전 시간, 경기당 득점, 리바운드, 스틸 등 다양한 방면에서 개인 최고 기록을 세우고 있다. 김태홍은 “다른 것보다 자신감이 많이 생긴 것 같다. 감독님도 믿음을 주시고 ‘실수해도 괜찮다’고 자신감을 심어주신다”고 했다.
김태홍은 이번 시즌을 앞두고 주장으로 선임됐다. 프로 무대에서 주장 선임은 처음이다. 그는 “감독님이 처음으로 주장을 해보라고 말씀하셨다. ‘프로팀 주장 언제 해보겠냐’며 장난스레 이야기 하셨지만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고 정말 놀랐다”며 “작년에도 그랬고 내가 팀에서 딱 중간 위치다. 주장이 되니까 좀 더 팀 내부를 디테일하게 신경 쓰게 된다. 전에는 운동 스케줄도 통보 받고 정하는 입장이었는데 이제는 내가 조율해야 한다. 신경 쓸 부분이 많지만 나태해지기보다 더 집중할 수 있어서 나 개인에게도 긍정적이다”라고 설명했다.
비시즌도 알차게 보냈다. 그는 지난 시즌 종료 이후 2개월 휴가를 받았지만 그 중 한 달은 훈련에 매진했다. 5월에는 박대남 스킬 트레이너를 찾아 ‘특별 과외’를 받기도 했다. 당시 기자는 그의 스킬 트레이닝 장면을 우연히 지켜볼 기회가 있었다. 그는 계속해서 웃는 얼굴로 트레이닝에 임했다. “박대남 트레이너가 고등학교 선배다. 제3자의 눈으로 부족한 부분을 냉정히 지적해준다. 여름에 일주일 휴가를 받았을 때도 운동하러 갔었다”고 말했다.
“나를 찾는 선수 중 일부 유부남들은 가사 노동이나 육아를 피해서 오기도 한다”는 박 트레이너의 폭로(?)를 전하자 김태홍은 “나는 절대 아니다. 나는 아직 신혼이다. 휴가 때도 와이프와 많은 시간을 보냈다”며 웃었다. 그는 지난 4월 결혼 이후 DB로 이적했다.
개인적인 목표는 ‘기량발전상’이다. 그는 “내가 농구를 잘하는 선수가 아니기 때문에 예전부터 받아보고 싶은 상이다. 말로만 들어도 좋아졌다는 평가는 기분이 좋은데 그 상은 공식적으로 발전을 인정받게 되는 것이다. 상을 받으면 또 발전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며 눈을 반짝였다.
시즌 개인 목표로는 경기당 평균 리바운드 5개와 3점슛 성공율 33%를 꼽았다. “지금까지 3점슛 30%를 넘겨본 적이 없다(웃음). 팀에 도움이 되려면 30%는 넘겨야 한다. 이 두 가지 외에 목표는 없다. 팀을 위해서 움직이고 싶다”고 덧붙였다.
김태홍은 스스로를 “농구를 센스 있게 하지 못하는 선수”라고 평가하면서도 기량발전상에 대한 욕심을 숨기지 않았다. 최준필 기자
새로운 코칭스태프, 새로운 주장과 함께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DB이지만 그들에게 불안요소는 여전히 존재한다. 김태홍이 말했듯 분위기를 잘 타는 팀이기에 언제 하락세로 빠져들지 모른다. 또한 김태홍 외에도 주전 출전 경험이 적은 이들이 많다. 이들은 한 시즌 내내 많은 시간을 소화해본 경험이 많지 않다. 시즌 후반에는 체력문제가 드러날 수도 있다.
이같은 지적에 김태홍은 “(윤)호영이 형도 회복중이고 (한)정원이형, (박)병우, (김)현호 등이 부상에서 복귀할 예정이다. 지금 뛰고 있는 선수들이 지칠 때쯤 부상 선수들이 돌아올 거라 믿는다. 그러면 선수층은 두터워질 수 있다”며 “주성이 형도 ‘시즌이 54게임이지만 우리는 지금 한 게임만 보자’고 조언해 준다”고 했다. 그러면서 “팀 분위기가 불타올랐다가 확 내려 앉을까봐 불안한 마음은 있다. 그 부분을 컨트롤하는 게 내 몫인 것 같다”고 말했다.
시즌 전 모두로부터 약체라는 평가를 받은 DB. 하지만 시즌 초반이지만 2위로 선전하며 예상을 깨고 있다. 인터뷰 내내 스스로를 ‘농구 센스가 부족하고 투박한 선수’라는 주장 김태홍은 예년과 다른 모습으로 팀에 기여하고 있다. 그의 목표는 올 시즌처럼 조금씩 더 발전하는 것이다.
“선수생활을 언제까지 할지는 모르겠지만 팬들에게 궂은일 열심히 하고 활력 넘치는 선수라는 이미지로 남고 싶다. 그런 선수가 되는 게 쉽지는 않지만 더 노력하겠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