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델리온이냐 치크팝이냐에 따라 브러쉬 달라져…브러쉬 가격 뻥튀기 심해”
길바닥 장사에서 시작한 ‘서현역 브러쉬’. 서울·대전·대구·부산 전국에서 여성들이 브러쉬를 구매하기 위해 서현역을 찾았고, 아저씨의 진심이 담긴 브러쉬는 입소문으로 ‘코덕(코스메틱 덕후)’들 사이에서 유명세를 타게 됐다. 그리고 최근 그의 브러쉬는 아모레퍼시픽 브랜드 ‘아리따움’까지 입점했다. 안 씨 성을 가진 안해원 사장은 현재 ‘Ancci(안씨)’ 브러쉬 가게를 운영 중이다. 그의 ‘브러쉬 흥망성쇠’를 들어봤다.
‘서현역 브러쉬 아저씨’ 안해원 사장이 홍대에 위치한 자신의 매장 ‘안씨’ 브러쉬에서 여성 손님들에게 사용법을 알려주고 있다. / 박정훈 기자
# 인터뷰에 앞서
서현역 브러쉬 아저씨는 지나치게 겸손했다. 기자는 금요일과 월요일 이틀에 걸쳐 홍대 안씨 매장에 직접 방문해 설득하고 이메일과 문자 메시지로 인터뷰를 요청했다. 아저씨는 “이게 뭐 대단한 것도 아니고 저는 별것도 아닌데….”라는 말을 수차례 반복했다.
# 본격 인터뷰
- 참 어렵게 마주했다.
“나같이 사업 망했다가 다시 일어서는 사람이 한 둘도 아닌데 이렇게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이 부담스럽다. 들어보면 별 얘기도 아닌데….”
- 길바닥 장사부터 시작해 아모레퍼시픽 브랜드 ‘아리따움’과 콜라보레이션까지 왔으면 잘난척 해도 될 것 같은데
“절대 그렇지 않다. 내가 25년간 하던 일을 묵묵하게 이어오고 있는 것일 뿐이다. ”
- 과거 어떤 일을 했었나.
“과거 25년 동안 유럽을 대상으로 뷰티케어 제품 수출업을 해왔는데, 수익이 괜찮았다. 몇천만 달러의 수익을 내기도 했다. 그런데 2009년 금융위기 때 유럽 바이어들이 많이 망했다. 다들 파산하는 바람에 주문량이 많이 줄어들어 사업에 실패했다. 내 사업이 망하면서 데리고 있던 직원들은 각자 제 갈길을 갔다. 사무실에 남은 것은 브러쉬 뿐이었다. 사업 실패로 주머니에는 단 돈 1만 원도 없었기 때문에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문에 남은 브러쉬를 사무실에 남은 단 한 대의 아반떼 승용차에 실었다. ”
- 그렇게 좌판을 시작한 것인가.
“그렇다. 화양역과 건대역, 홍대역, 잠실역에서 돌아다니면서 길거리 장사를 3년 정도 했다. 잠실에서는 주차딱지를 많이 받았고 벌금도 많이 물었다. 그렇게 좌판장사를 시작할 때 처음엔 여자분들이 눈길도 안 줬다. 그래도 묵묵히 하다보니 단골손님이 생기기도했고, 중·고등학생까지 브러쉬를 사갔다. 물건이 좋았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당시 어떻게 홍보가 됐는지 모르겠는데,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입소문이 퍼진 것 같았다. 그래서 다른 지역, 지방에서 브러쉬를 구매하기 위해 찾아오는 손님들도 점차 생겨났다.”
서현역에서 좌판 장사를 하던 안해원 사장은 홍대에 매장을 내고 브러쉬를 개발 및 판매 중이다. / 박정훈 기자
“그때 물건을 사갔던 손님들 중 일부는 여전히 홍대 ‘안씨’를 방문한다. 한 손님은 내가 잠실에서 장사를 하던 당시 만났었는데, 지금은 한 기획사에 취직해 특수분장을 담당하는 걸로 알고 있다.”
- 멀리서도 손님이 오는 걸로 알고 있다.
“제주도에서도 온다. 해외에 있는 손님들은 한국에 올 일이 있으면 와서 구매한다. 대만 사람들도 오곤 한다.”
- 도대체 손님이 왜 이렇게 많은 건가…. 평일인데 (오픈 전 부터 웨이팅이 있고, 오픈 뒤 가게가 사람들로 꽉 찬다)
“그나마 기자님이 찾아온 수요일은 손님이 적은 날이다. 토요일은 평일의 두 배 많은 손님이 찾아온다. 일요일과 월요일은 가게를 열지 않는다. 일요일에도 열면 좋겠지만, 일요일까지 문을 여니 물건이 금방 품절되더라. 일요일 먼 곳에서 오는 손님들에게 미안했다. 그래서 일요일은 문을 닫는다.”
- 기존 서현역 좌판에서 어쩌다가 홍대입구역의 상가로 입점했나.
“추운 날 밖에서 판매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 서현역은 정말 춥다. 작은 가게를 내려고 서현역에 상가를 알아봤는데 너무 비쌌었다. 지금 있는 홍대 가게보다 더 비싸다. 당시 손님들은 울산, 부산, 전주 등 전국 각지에서 오셨는데, 어디로 가게를 만들면 좋을지 물어보니 손님들은 홍대를 추천했다.”
- 일부 보도에 따르면 한 손님이 홍대 매장 오픈을 도와줬다던데.
“그건 잘못된 보도다. 대학교 동창이 사업을 하며 돈이 넉넉한데 홍대 안씨 오픈을 도와줬다. 덕분에 올해 2월 홍대에 가게를 얻을 수 있게 됐다.”
- 서현역 부근에 있던 손님들이 아쉬워 했을텐데.
“서현역에 있던 중·고등학교 손님들이 성인이 돼서 홍대 매장으로 방문해줬다. 고마웠다.”
- 온라인 주문이 안 된다는 점이 너무나도 절망적이다. 서울·경기도권은 괜찮지만, 지방에 사는 여성들은 구매가 어렵다.
“브러쉬는 온라인으로 사는 물건이 아니다. 만져보고 사야한다. 직접 손으로 만져보고 얼굴에 문질러서 판단해야 한다. 브러쉬마다 탄력이 다르고 같은 모델의 브러쉬도 제각기 다른 탄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 매장에 진열된 브러쉬들 모두 포장을 하지 않고 손님들이 손으로 만져볼 수 있게 하고 있다. 다른 그 무엇보다 욕심을 내서 사업을 확장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다.”
기자에게 ‘쉐딩’을 해선 안 되는 얼굴이라고 ‘팩트폭력’을 날리는 안해원 사장. 매장을 방문하는 손님들에게 화장법을 설명해 준다. / 박정훈 기자
- 블러셔 브러쉬는 어떤 제품이 좋은가. 추천해줄 수 있나.
“어떤 블러셔(볼터치 화장품)를 사용하고 있나.”
- 블러셔가 브러쉬를 고를 때 영향을 주나.
“물론이다. 블러셔는 프레스드(Pressed)형과 베이크드(Baked)형으로 나뉜다. 프레스드는 가루를 압축해 넣은 것이고, 베이크드는 프레스드를 오븐에 구운 것이다. 프레스드보다 베이크는 은은하고 가벼운 화장 효과를 낼 수 있지만 제형이 훨씬 더 단단하다. 따라서 여기에 따라 사용하는 브러쉬도 달라진다.”
- 백화점에 가서 블러셔 브러쉬를 구매해도 이렇게 까다롭진 않다.
“그 점이 문제다. 화장품 제형과 종류에 따라 브러쉬의 종류도 달라진다. 클리니크 치크팝, 베네피트 캘리포니아, 나스 오르가즘 등은 우리나라 여성들이 많이 사용하는 베이크드형 블러셔다. 이런 것을 사용할 때는 브러쉬가 단단하고 힘이 있는 것을 사용해야 발색이 잘 된다. 베네피트 단델리온 등은 프레스드형으로 부드러운 브러쉬로도 발색이 된다. 반대로 부드러운 브러쉬로 치크팝을 사용할 수는 없다. 물론 세게 문지르면 발색이 대충 될지는 모르겠지만, 피부만 따갑고 블러셔가 빨리 닳기만 한다. 브러쉬도 쉽게 상한다. 따라서 자신이 쓰는 화장품 종류와 제형에 따라 브러쉬를 구분해서 골라야한다. ”
안해원 사장은 손님들이 사용하는 화장품 제품에 맞는 브러쉬를 골라준다. 사진은 안호성 사장이 테스트용으로 사용하는 브러쉬들. / 박정훈 기자
- 그래서 손님들에게 브러쉬 설명을 10분씩 해주나.
“그렇다. 화장을 못 하는 손님들이 있으니 그 분들을 위해 맞는 화장법을 설명해준다. 기자님도 사실 쉐딩을 하면 안 되는 얼굴이다. 쉐딩은 얼굴이 작아보이고 입체적으로 보이는 효과를 준다. 기자님은 이미 얼굴 폭이 좁고 길이가 긴 편인데, 쉐딩을 하면 얼굴이 더 길어보인다.”
- 아….몰랐다.
“몰랐으니 이렇게 일일이 다 알려주는 것이다. 브러쉬를 판매하고 끝내기보단 좀 더 자세한 설명을 해주고싶다.”
- 매출을 올리려면 쉐딩이 어울리지 않는 사람에게도 쉐딩 브러쉬를 추천해야하는 것 같은데.
“아니다. 못 사게 한다. 쓸데 없이 왜 자꾸 사느냐.”
- 브러쉬 설명이 한 손님당 거의 10분이 걸리더라. 사장님은 앉지도 못하고 계속 설명만 하던데, 다른 직원을 고용해 설명을 시켜도 되지 않을까.
“다른 직원들은 모른다. 브러쉬를 하는 사람은 브러쉬만 알고, 화장품을 하는 사람은 화장품만 안다. 이 두가지를 다 아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화장품의 특징과 브러쉬의 제 기능을 잘 아는 사람이 설명해야 한다.”
- 오후 2시부터 저녁 9시까지 서서 설명만 하면 힘들텐데
“힘들다. 말을 많이 하다보니 혀도 꼬이고 말도 잘 안 나온다. 초기에는 저녁도 못 먹고 밤까지 일 했는데, 이제는 저녁 시간을 만들어 그 시간에 잠깐 쉴 수 있다.”
- 다른 코스메틱 브랜드로부터 동업을 제안받을 법도 한데, 아리따움처럼 콜라보레이션 제안을 하거나….
“유명한 곳, 여기저기에서 입점하라는 제안을 많이 받긴 받았다. 입점하면 편하게 장사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욕심을 내다보면 브러쉬의 퀄리티가 떨어진다. 그래서 아리따움에도 한정판으로 소량의 브러쉬에 대해서만 계약을 맺었다. 무엇보다 사업이 한 번 실패한 경험이 있어서 이정도만 하고싶다. 사업 제안도 사양한다. 그냥 적당한 기반을 갖추고 기술력만 높여서 좋은 브러쉬를 더 개발하고 만들고 싶다.”
- 대량생산을 하면 퀄리티가 떨어진다? 이해가 잘 안 간다.
“브러쉬에 사용하고 있는 이런 털은 구하기가 힘들다. 러시아와 몽골, 중국에서 인맥과 연줄을 통해서만 구매할 수 있다. 따라서 대량구매가 불가하다.”
- 아리따움에 판매되고 있는 한정판 브러쉬 4개 선정 기준은 뭔가. 안씨 브러쉬의 베스트셀러인가.
“아니다. 아리따움에서 잘 나가는 제품들(블러셔, 섀도우 등)에 맞는 브러쉬들을 고른 것이다. 다시 말해, 아리따움 주력 상품의 제형에 브러쉬를 맞춘 것이다. 물론 이 넷 브러쉬도 좋지만, 이보다 더 좋은 브러쉬들도 많다.”
매장 안에는 건의함이 마련돼 있다. 여기에 손님들이 원하는 브러쉬를 넣으면, 안해원 사장은 이를 개발해 생산한다. / 박정훈 기자
- 인기 없는 브러쉬는 단종시키나.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저렴한 제품은 단종시키지 않는다. 어린 학생들이 종종 오는데, 그런 손님들이 구매할 수 있게 남겨둔다. 반면, 손님들이 건의함에 건의하는 제품들은 개발하고 생산할 계획이다.”
- 브러쉬를 판매하는 사람이지만, 학생들, 미성년자들이 화장하는 것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물론 어린 학생들에게는 화장을 하지 말라고 말 한다. 아빠의 마음이다. 하하하. 그래도 코 묻은 돈을 들고 와서 브러쉬를 사겠다고 한다. 그러면 그냥 브러쉬 서비스를 넉넉하게 준다.”
- 브러쉬를 세척할 때 검은 물이 수차례 나온다는 제보를 받았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백양모를 제외한 천연모는 모두 염색 과정을 거친다. 몇 차례 색소가 나오긴 하지만, 이건 다 천연색소다. 다만 브러쉬 세척만 주의하면 된다.”
- 세척은 어떤 식으로 해야하나.
“여성분들이 가장 잘못하는 것이 폼 클렌저나 클렌징 워터를 사용해 브러쉬를 세척하는 것이다. 천연모도 동물 털이다. 우리 사람 머리카락과 똑같고 그 안에 그 자체의 유분을 머금고 있다. 머리를 빨래비누로 감아봤나. 마찬가지다. 브러쉬의 천연모는 사람 머리칼과 똑같으니 사람 샴푸를 쓰는 것이 가장 좋다.”
- 일부 여성들은 동물 털에 거부감을 느낀다. 아마 동물의 털가죽을 산채로 벗겨내는 것에서 비롯된 것 같다.
“인조를 써서 브러쉬를 만들 수도 있겠지만, 인조는 화장품의 뭉침과 날림이 있고 발색도 잘 안 된다. 그래서 인조는 사용하지 않는다. 천연모 역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동물의 가죽을 산 채로 벗긴 뒤 죽이는 것이 아니라, 동물을 사육하고 털만 잘라내는 것이니 동물 윤리는 걱정 말라.”
한 여성이 안씨 브러쉬 매장에서 브러쉬들을 살펴보고 있다. / 박정훈 기자
- 유언비어도 발견했다. 안씨 브러쉬는 중국에서 싼 값에 들여와서 싸다는 주장도 봤다.
“하하하. 아마도 여성분들이 그동안 너무 비싼 브러쉬를 사왔기 때문에 그런 소문이 생긴 것 같다. 모 자체는 중국, 러시아, 몽골에서 들어오고 다른 부품은 국내에서 만든다. 여성분들이 적당한 가격의, 좋은 퀄리티의 브러쉬를 사용했으면 한다.”
- 그렇다면, 왜 브러쉬는 퀄리티에 비해 가격이 비싼 걸까.
“수출과 수입을 거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중국으로, OEM으로, 직구 등의 과정을 거치다보니 브러쉬의 가격이 뻥튀기 되고 비싸지는 것이다. 시중에 보면 형태만 브러쉬고 정작 그 기능은 못 하는 것들이 많은데 안타깝다.”
- 그런 점에서 볼 때, 안씨 브러쉬에서 시작해 여러 브러쉬 브랜드들이 유행처럼 생기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저렴한 브러쉬들이 생산되고 있는데,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브러쉬 가게들이 여럿 생기면서 경쟁이 점점 치열해지고 있다. 당장 이 근처에만 해도 브러쉬 가게가 몇 개 생겼다. 브러쉬 가게가 유행처럼 생기고 번져나가고 있는데 이렇게 경쟁이 시작되면 가격이 다같이 비싸져서 소비자들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 또는 서로 가격을 낮추다보면 제품의 퀄리티가 떨어질 수도 있다. 그래서 걱정이 많이 된다. 국내에서 제조 기반을 마련하는 것은 어렵다. 다 중국으로 가버렸으니. 수출은 이미 경쟁력을 상실했다. 국내에서 이렇게 활성화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일부 업자들이 치열한 경쟁 속에 가격으로 덤핑해버리는 현상은 없었으면 한다.”
안해원 사장은 앞으로 유럽을 타깃으로 수출 사업을 이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 박정훈 기자
“예전에 거래하던 바이어들과 연락을 시도하고 있다. 유럽을 대상으로 다시 수출할 것이다. 물론 유럽에서도 대량이 아닌 100~200개 소량다품종을 수출할 것이다. 사업 비중은 국내와 외국이 5 대 5가 될 것이다. 일단 지금 홍대 안씨 브러쉬 사업이 안정화 되면 독일, 홍콩, 미국에서 열리는 뷰티 박람회에 갈 예정이다.”
- 길거리에서 시작해 이렇게 가게를 내고, 방송과 SNS에서 유명세를 타게 됐다. 소회를 밝히자면?
“그냥 추운 서현역에서 장사를 하다가 따뜻한 실내로 와서 좋다. 하하하.”
- 사업 철학은?
“욕심내지 말자.”
- 여담으로, 사장님 피부가 중년 남성치곤 굉장히 좋다. 아마 안씨 브러쉬로 화장을 해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좋은 브러쉬로 화장을 하면 그렇게 좋은 피부를 연출할 수 있나.
“아니다. 이건 원래 피부다. 화장한 피부가 아니다.”
- 연장보다는 ‘타고난 피부’란 말인가.
“하하하하.”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