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장단체 뒤로 학교·갱단 ‘얼기설기’
▲ 이번 테러의 배후 조종자로 의심되고 있는 갱단 두목 다웃 이브라힘. | ||
그렇다면 이번 뭄바이 테러를 계기로 국제사회에 새로운 ‘악’으로 떠오른 LeT는 과연 어떤 단체일까.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LeT는 파키스탄에 본부를 두고 있는 이슬람 무장단체로 한때 파키스탄 정보부(ISI)의 지원을 받아온 것으로 알려져 적지 않은 파장이 일고 있다. 하지만 이보다 더욱 놀라운 것은 뭄바이 출신의 갱단 두목인 다웃 이브라힘(53)이 이번 테러를 배후에서 조종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자신의 고향을 피바다로 만든 그는 누구이며, 또 어떤 이유로 조국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게 된 걸까.
지금까지 대부분의 이슬람 과격단체들이 저지른 테러가 그러했듯이 이번에도 문제는 ‘종교’였다. 인도의 11억 인구 가운데 80%를 차지하는 약 10억 명의 힌두교도와 14%를 차지하는 1억 5000만 명의 무슬림 사이의 뿌리 깊은 불신이 결국 피를 부르고 만 것이다.
현재 인도 경찰의 수배 대상 1순위에 올라 있는 이브라힘 역시 무슬림이다. 인도 최대의 영향력 있는 갱단으로 꼽히는 ‘D-컴퍼니’의 우두머리인 그는 현재 파키스탄 정보부의 비호 아래 항구도시인 카라쉬에서 은둔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올해 <포브스>에 의해 ‘세계에서 가장 두려운 범죄자 10인’ 가운데 4위를 차지했을 정도로 악명을 떨치고 있는 그는 고향인 인도는 물론 파키스탄, 두바이 등지에서도 막강한 파워를 자랑하고 있다. 그의 조직은 주로 금, 마약, 무기 등을 밀거래하면서 부를 축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 그의 조직이 처음부터 종교색을 띠었던 것은 아니었다. 1993년 이전에는 오히려 종교를 초월한 조직이었다. 가령 이브라힘 본인은 무슬림이었지만 충복이자 ‘넘버 원’ 격이었던 코타 라한은 힌두교도였다.
▲ 이슬람 학교 ‘마드라사’ | ||
반 무슬림 감정이 고조되자 이브라힘은 복수를 계획했다. 종교 앞에 조국 같은 건 없었다. 결국 그는 이듬해인 1993년 뭄바이에서 연쇄 폭탄 테러를 저질렀고, 이 테러로 무려 257명이 사망했다. 이브라힘이 세상에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도 이 때부터였다. 당시 테러에 사용됐던 폭발물 RDX를 대량으로 인도에 밀반입하는 것을 지원했던 그는 인도의 해안경비대를 매수해서 목적을 달성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번에 발생한 뭄바이 테러 역시 이브라힘이 비슷한 방식으로 해안경비대에게 미리 뇌물을 제공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LeT 테러범들은 이브라힘이 머물고 있는 파키스탄의 카라쉬에서 출발해서 뭄바이의 사술 부두를 통해 입항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술 부두는 이브라힘의 통제 하에 있는 인도의 부두 가운데 하나이며, 이미 이곳의 경찰들이 이브라힘에게 매수를 당했다는 주장도 심심치 않게 들려오고 있다.
그렇다면 이번 테러를 저지른 것으로 알려진 다소 생소한 이름의 LeT는 어떤 조직일까. 파키스탄에 본부를 두고 있는 LeT는 남아시아 최대의 이슬람 무장단체 가운데 하나로 인도를 붕괴시키고 인도 내 힌두교와 유대교를 말살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과격단체다.
이 단체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이번 테러에서도 드러났다시피 조직원들의 출신이다. 파키스탄의 극빈 지역인 펀자브 지방 출신의 10~20대 청년들이 주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펀자브의 바하왈푸르, 물탄, 파리드콧 등 대부분의 지역들은 파키스탄에서도 가장 가난한 지역으로 꼽히고 있으며, 특히 종교적 극단주의가 강한 곳으로 유명하다. 이번에 유일하게 생포된 테러범인 모하메드 아민 카사브(21) 역시 파리드콧 출신이며, 사망한 테러범 가운데 신원이 파악된 두 명은 물탄 출신이다.
영국의 일간 <가디언>의 보도에 따르면 젊은이들이 LeT로 몰리는 까닭은 무엇보다도 ‘가난’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교육과 숙식 등이 공짜로 제공되는 이슬람 학교인 ‘마드라사’에 입학함과 동시에 자신도 모르게 테러범으로 키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저 배를 굶기지 않기 위해 어린 자식들을 ‘마드라사’에 보냈을 뿐 부모들은 훗날 자식들이 테러범이 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 지난달 무장괴한들이 뭄바이 상업지역에서 동시 다발 테러를 일으켜 사망자만 100명을 넘어섰다. 테러 습격을 받아 불길과 연기가 치솟고 있는 타지마할 호텔. EPA/연합뉴스 | ||
과거 수많은 이슬람 학자와 성직자, 법관 등을 배출했던 이슬람 전문학교인 ‘마드라사’의 상당수가 ‘테러범 양성소’로 변질된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지난 2001년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하면서부터였다. 당시 미국의 아프간 침공에 분노한 ‘마드라사’의 학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학업을 중단한 채 탈레반에 지원했으며, 이때부터 ‘마드라사’는 이슬람 학교가 아닌 ‘테러범 양성소’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현재 파키스탄 내 대부분의 ‘마드라사’ 학생들은 성전의 의무에 대해서 주입식 교육을 받고 있다. 학생들의 연령은 6세부터 16세까지며, 새벽 5시부터 저녁까지 이어지는 수업을 마친 후에는 전투 훈련을 받는다. 지금까지 ‘마드라사’에서 4만 명의 학생들을 가르친 이슬람 성직자인 마울라나 리아즈 축티는 “아프가니스탄이나 카슈미르에서 반 이슬람 세력과 투쟁하는 것이 우리의 종교적 의무다”라고 강조했다.
현재 뭄바이 테러범인 카사브의 고향 파리드콧에서는 ‘마드라사’를 졸업한 LeT 조직원들이 300명가량 활동하고 있으며, 전화 한 통이면 언제 어디서건 금세 출동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다른 테러단체와 마찬가지로 LeT 조직원들 역시 훈련 캠프에서 몇 개월간 고립된 생활을 하다 보면 대원들 간에 끈끈한 결속력도 생기고, 결국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대량 살인을 저지를 정도로 잔혹하게 변한다고 한다. 아무리 순수한 청소년들이라고 해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얼마 전 앳된 얼굴의 테러범들이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는 무고한 사람들을 상대로 무차별 총격을 가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이런 훈련 때문이었다.
무엇보다도 종교 문제가 해소되지 않는 한 장소를 불문하고 어쩌면 테러와의 전쟁은 영원히 풀지 못할 숙제일지 모른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