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도 집어삼킨 ‘돈이 돈을 낳는 곳’
▲ 마카오의 화려한 카지노와 이곳에서 밤새 도박을 즐기는 사람들. | ||
마카오가 중국의 일부가 된 이후 일확천금을 꿈꾸는 중국인들이 몰려들면서 마카오의 판돈이 드디어 라스베이거스를 능가하게 되었다고 한다. 미국의 인구가 3억 명인 데 반해 중국의 인구는 13억 명으로 네 배가 넘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게다가 중국에서 도박이 합법인 지역은 마카오 단 한 곳뿐. 그동안 당국의 감시를 피해 여기저기서 숨죽이며 도박을 하던 중국인들은 이제는 마카오에서 화려한 쇼를 보면서 24시간 마음껏 도박을 즐기고 있다.
지난해 라스베이거스의 700개 카지노가 60억 달러(약 88조 원)의 매출을 올린 데 비해 마카오에 위치한 불과 31개의 카지노들은 총 100억 달러(약 147조 원)의 매출을 올렸다. 1600만 명의 중국인들이 자유로운 도박을 위해 마카오로 향한 결과다.
마카오의 놀라운 발전의 중심에는 ‘마카오의 큰손’인 억만장자 스탠리 호(85)가 있다. 그는 2001년 마카오가 외국자본에 문을 열기 전까지 40년 동안 카지노를 비롯해 부동산, 관광, 교통 등 마카오의 서비스산업을 독점해온 인물이다. 그는 마카오를 지배하던 갱단의 두목 ‘부러진 이’ 완 쿠옥타이가 구속돼 15년형을 선고받은 이후 마카오에서 전지적인 존재로 군림해왔다.
한때 그의 카지노에서 내는 세금이 마카오 전체 세수의 70%를 차지할 정도였으며, 지금도 그는 마카오의 31개의 카지노 중 ‘카지노 리스보아’를 비롯한 17곳을 소유하고 있다. 호가 카지노만큼 많이 가진 것이 또 하나 있으니 바로 부인과 자식들이다. 모두 네 명의 부인과 17명의 자식을 거느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딸 팬지와 아들 로렌스도 아버지의 대를 이어 동업자와 함께 각각 자신의 카지노를 경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는 만큼 호의 합법적 경영의 이면에 관해 석연치 않은 소문들도 나돌고 있다. 카지노의 평화를 위해 여러 갱단과 손을 잡고 있다는 뻔한 얘기는 제외하더라도 미국 재무금융범죄 단속기관(the US Treasury Financial Crimes Enforcement Network)이 호와 그가 경영하는 승항은행이 북한의 돈세탁에 연루되어 있다는 혐의를 두고 조사를 벌이는 등 그동안 그는 크고 작은 범죄와 관련해 의혹의 눈길을 받아왔다. 그러나 모두 혐의만 있을 뿐 그는 아직까지 단 한 차례도 기소된 바 없다.
그런데 최근 중국정부가 뜨거워진 마카오의 도박판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중국의 경제성장과 함께 엄청나게 호황을 누려온 마카오 카지노업계의 주 수입원은 단순히 오락삼아 도박을 즐기는 다수의 관광객이 아닌 VIP룸을 차지하고 거액의 판돈을 거는 소위 ‘큰손’들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주요 고객들 중 다수가 중국의 고위 공무원들이라는 것이다.
얼마 전 마카오에 인접한 희주시의 경찰청장은 공금 1000만 위안(약 21억 원)을 마카오의 도박판에서 탕진한 혐의로 체포되었다. 그는 또한 이민국의 부패한 직원들과 짜고 마카오에서 일하고자 하는 수만 명의 중국 매춘여성들에게 비자를 판매한 혐의도 받고 있다. 후베이성 홍콩대표는 9800만 위안(약 208억 원)을 도박으로 날려 처형당했으며 신양의 부시장 역시 1000만 위안(약 21억 원)을 도박에 써 형장의 이슬이 되었고, 한 여성 우체국 공무원은 마카오의 도박판에서 진 빚을 갚기 위해 18억 위안(약 3800억 원)의 공금을 횡령한 혐의로 법정에 섰다. 베이징대학에 따르면 마카오에서 중국의 고위공직자들이 세탁하는 돈은 88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중국정부는 도박의 폐해를 줄이기 위해 공직자의 도박에 대해 엄중한 처벌을 가하는 동시에 도박 관련 자격증의 발급 기준을 강화하고 본토인의 마카오행을 제한하는 새로운 비자법을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의 세계 경기침체가 마카오 카지노사업에도 걸림돌이 되고 있긴 마찬가지다. 최초의 외국인 투자로 마카오에 들어설 예정이던 대규모 카지노 리조트의 사업자인 ‘라스베이거스 샌즈’사가 자금 사정과 중국정부의 규제를 이유로 공사를 중단하는 바람에 1만 1000명의 현장노동자들이 실직을 할 위기에 몰렸다. 이 리조트의 완공은 2010년으로 연기되었다.
악재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인 요인들도 없지는 않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 이어 2010년에는 상하이에서 대규모 엑스포가 열릴 예정인데다 둔화되기는 했지만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10%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중국당국도 최근 다양한 경기부양책을 내놓고 60년 만에 경마를 합법화하는 등 경기 활성화에 힘쓰고 있다. 마카오 내부에서도 시장 다각화를 위해 초특급 호텔과 쇼핑몰, 국제수준의 회의시설을 강화해 다양한 국제회의와 행사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또한 마카오 카지노의 미래에 관한 비관적 전망도 낙관론으로 바뀌고 있다. 금융대란이 한창이던 지난 10월 8억 달러(약 11조 7000억 원)를 벌어들이는 등 하락세를 보이던 매출이 소폭 상승세로 돌아섰다. 올해 마카오의 카지노 수는 2004년 이후 4년 만에 두 배에 달하는 31개로 늘어난 데 이어 2013년에는 37개로 늘어날 전망이다. 카지노 재벌들도 ‘이번 불황이 끝나면 또 호황이 오는 것 아니냐’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미국 주간지 <타임>에 따르면 전문가들도 경기침체와 중국의 법적 조치 등이 오히려 마카오의 과속 성장에 제동을 걸어 안정적인 성장을 가져올 수 있다고 점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마카오 카지노 업계의 희망은 도박을 대하는 중국인들의 자세에 달려있는 듯하다. 영국의 <데일리메일>에 따르면 마카오의 카지노를 둘러본 한 영국 관광객은 “중국인들은 라스베이거스의 관광객들처럼 단순히 즐기는 것이 아니라 ‘도박’ 자체에 몰입한다”고 말했다. 돈을 상징하는 8자를 행운의 숫자로 여기는 중국인들이 도박판을 자신의 ‘행운’을 시험하는 장으로 여기는 이상 마카오 카지노의 화려한 불빛은 결코 꺼지지 않을 것이다.
이예준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