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광주교도소 일원 5·18 암매장 추정지 “농장터 외 4곳 더 있다”
-5·18재단, 재소자 농장 터 주변 2곳과 동·서쪽 담장 인근 지목
-8구 시신 수습한 장소 특정…추가 제보 검증 목적
-땅속탐사레이더 우선 투입…의심 물질 탐지하면 추가 발굴 추진
옛 광주교도소 내 5·18 암매장 발굴에 나선 5·18기념재단이 지난 3일부터 주말까지 콘크리트 등 표토층을 걷어내는 등 발굴을 위한 사진 정지작업을 벌였다. <5·18기념재단 제공>
[광주=일요신문] 조현중 기자 = 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이 시민들을 살해 암매장한 것으로 추정되는 옛 광주교도소(북구 문흥동) 인근에 대한 발굴 작업이 시작됐다. 37년 만이다. 5·18기념재단과 5월 3단체(유족회·부상자회·구속부상자회)에 따르면 지난 4일 발굴 대상지를 덮고 있는 콘크리트 제거작업을 시작으로 공식적인 암매장 발굴조사에 착수했다. 발굴 대상지는 광주시 북구 문흥동 옛 광주교도소 부지 내이며 1차 대상지는 3공수여단 지휘관이 1995년 검찰 조사에서 작성한 약도와 시민 제보 등을 토대로 추정한 교도소 북쪽 담장 117m(폭 3∼5m) 구간이다.
5·18재단 등은 법무부가 발굴 착수를 승인한 지난 3일 사전 준비 작업을 거쳐 이날 굴삭기 등 중장비를 동원해 콘크리트를 완전히 제거한 후 쇠말뚝과 노끈으로 작업 구간을 확정했다. 6일부터 문화재 발굴방식으로 전환한다. 조현종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아시아문화연구소장과 최인선 순천대학교 문화유산연구소장이 자문을 맡고 실무는 민간단체인 대한문화재연구원이 담당한다.
발굴단은 발굴대상지 곳곳에 유적지 조사에서 쓰이는 트렌치(Trench·시굴 조사용 구덩이)를 설치해 지하를 살핀다. 의심스러운 물체가 발견되면 작업자들이 작은 삽, 붓 등을 사용해 10㎝ 깊이씩 땅을 파헤쳐가면서 정밀조사를 한다.
유해가 발견되면 광주지방검찰청과 유해수습, 신원확인 주체, 작업 지속 여부를 협의할 예정이다. 재단은 과거 행방불명자 발굴조사에 참여했던 박종태 전남대 법의학 교수와 윤창륙 조선대 임상 치의학 교수에게 신원확인 참여를 요청한 상태다.
재단은 날씨 상황이 좋다면 작업 착수 약 15일 뒤에 유해 존재 여부가 판명된다고 설명했다. 현장에서 유해가 나오면 광주지방검찰청이 수사에 나설 방침이다. 재단은 유해수습과 신원확인 주체에 대해 검찰과 협의 중이다.
발굴 대상지는 당시 3공수여단 부대원과 재소자 등이 지목한 장소로 암매장된 유해가 있을 가능성이 크다. 옛 광주교도소 발굴 등 암매장 조사는 2002년과 2006년, 2008년에 이어 네 번째이지만 이번 발굴이 암매장 공수부대원 메모와 목격자·재소자 증언 등 객관적 증거가 가장 많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희생자들의 암매장 장소로 추정되는 옛 광주교도소 발굴은 암매장 진실을 풀어줄 단초가 될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암매장 발굴 결과는 5·18당시 총체적 희생자 수를 규명할 수 있는 결정적 증거로 작용할 전망이어서 의미를 갖는다.
지난 4일 김후식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장, 양희승 5·18구속부상자회장, 정춘식 5·18유족회장(왼쪽부터)이 광주교도소 5·18 암매장 발굴 개토식에서 발굴 시작을 알리고 있다.<5·18기념재단 제공>
5·18 당시 계엄사령부와 보안사령부가 작성한 자료에는 옛 광주교도소에서 시민 27∼28명이 총격 등으로 숨졌다고 기록돼 있다. 하지만 옛 광주교도소에서 수습한 시신은 11구여서 나머지는 암매장됐을 가능성이 크다. 5·18기념재단은 3공수부대 4개 대대가 각자 희생자를 암매장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를 근거로 옛 광주교도소 내 암매장 장소를 5곳으로 추정하고 있다. 재단은 지난 10월 23일 기자회견을 열어 “지난 18일 현장조사를 통해 지목한 재소자 농장 터를 포함해 교도소 주변 5곳을 암매장지로 추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옛 광주교도소 발굴에는 고고학적 방법이 동원된다.
5·18기념재단은 5·18 당시 옛 광주교도소에 주둔한 3공수여단 김모 중령의 암매장지가 표시된 약도와 메모, 진술과 광주교도소 재소자의 증언을 토대로 교도소 후면 옛 농장터를 우선 발굴대상으로 특정한 상태다. 농장 터는 당시 공수부대의 순찰로 인근 부지이자 3공수여단 16대대가 주둔했었다.
재단이 추가로 지목한 암매장지는 옛 교도소 북측 담장 밖 재소자 농장 터 주변 2개 장소다. 1980년 5월 당시 3공수여단 본부소속 김모 소령이 ‘12·12 및 5·18 사건’ 검찰 조사에서 진술한 암매장지다. 김 소령은 ‘담장에서 3m 정도 떨어진 곳에서 부하 5∼6명을 데리고 직접 시신 12구를 매장했다’고 검찰에서 밝혔다. 추정 공간은 길이 117m, 폭 3∼5m다. 이곳은 1980년 당시 광주교도소에 복역했던 재소자가 거론한 곳에서 멀지 않은 곳이다. 1980년 당시 3공수부대 하사관이 제보한 장소도 이곳이다.
재단은 지난 10월 18일 현장조사에서 1980년 5월 당시 교도소 수용자였던 최모씨로부터 북측 담장 밖에서 굴착기가 작업하는 모습을 봤다는 증언을 확보했다. 최씨는 장소 2곳을 언급하며 “움푹 들어간 계곡처럼 내려오는 곳”이라고 설명했는데 김 소령 진술에 등장하는 농장 터와도 가깝다. 재단은 김 소령 진술과 최씨 증언에 나오는 3곳이 광범위하게 봤을 때 하나의 장소이지만, 세부적으로 구분하면 별개의 암매장지라고 결론 내렸다.
재단이 주목하는 또 다른 암매장 추정지는 옛 교도소 동쪽 담장 주변이다. 동쪽 담장 주변은 전남 담양과 광주 도심을 잇는 도로가 자리하고 있다. 계엄군은 이곳을 오가는 여러 시민을 사살하면서 ‘폭도들이 교도소를 습격하려 했다’는 거짓 정황을 꾸며냈다. 재단은 5·18민주유공자유족회가 1988년 확보한 3공수 부대원 증언에 기초해 동쪽 담장 주변도 발굴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재단은 최근 확보한 3공수 15대대 부사관 출신 김모씨 증언을 바탕으로 옛 교도소 서측 담장 주변도 암매장지로 추정하고 있다. 김씨는 지난 9월 19일 재단에 직접 연락을 취해 “1980년 5월22일 새벽 전남대에 연행됐던 시민 120명을 광주교도소로 이송, 고속도로 방향으로 조준사격해 전복된 차량의 시신을 수습하고 하루 정도 방치했으나 시신 부패로 5~7구를 가매장했다”고 증언했다.
재단은 이어지는 제보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다. 5·18기념재단 김양래 상임이사는 “옛 광주교도소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다 갖고 있지 못한 상황이다”며 “무엇보다 5·18 직후 8구의 시신을 발견한 장소가 확실히 어딘지를 파악하지 못한 상태다”고 설명했다. 앞서 언급한 5·18 이후 계엄사령부가 발표한 ‘광주사태 진상조사’에는 광주교도소에서 27명(보안대 자료에는 28명)의 시민들이 사망했다고 기록됐다. 이중 8구의 시신은 5·18 직후 광주교도소 관사 뒤편에서 암매장됐다가 발견됐고, 교도소 앞 야산에서 3구가 발견된 바 있다.
5·18 암매장로 추정되는 장소가 표시된 3공수여단 김모 중령의 메모와 약도. <5.18기념재단 제공>
문제는 ‘교도소 관사 뒤편’이란 정보만 있을 뿐 이게 정확히 어디인지가 특정이 안 되고 있다는 것이다. 김 상임이사는 “추가적인 제보가 기존 제보와 중복되는지 여부 등을 확인하기 위해선 우선적으로 8구가 발견된 곳부터 특정해야 하는 상황이다”며 “이에 8구 시신을 수습할 당시 목격자 2명을 모시고 현장에 가서 위치를 확인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재단은 우선 범위가 압축된 교도소 외곽 옛 농장터를 발굴하는 한편, 제보가 들어온 교도소의 다른 장소에 대해선 추가 정밀조사를 하는 등 ‘투트랙’으로 진행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재소자 농장 터를 제외한 암매장 추정지 4곳에는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보유한 땅속탐사레이더(GPR·Ground Penetrating Radar)가 우선 투입된다. GPR 장비는 지하 약 10m까지 투과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단은 GPR 장비가 의심 물질을 탐지하면 법무부와 논의해 추가 발굴에 착수한다는 방침이다.
아울러 5·18기념재단이 행방불명자 암매장지로 지목된 옛 광주교도소에서 항쟁 당시 상황을 재구성하는 작업에 돌입하기로 했다. 비공개로 열리는 현장증언에는 1980년 5월 27일 교도소장 관사 근처에서 땅에 묻힌 가족 시신을 수습했던 5·18유가족 등이 참여한다. 어렵게 드러난 제보가 기존에 알려진 역사적 사실에 가려지지 않도록 1980년 교도소 상황을 새로운 관점에서 재구성한다는 취지다. 현장증언을 거치지 않고 청취한 제보를 기존에 밝혀진 사실과 단순 대조하면 중복된 내용으로 오인하거나 잘못된 분석을 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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