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 넘으면 무보증사채 채권자들과 조건 변경 합의해야…롯데쇼핑 “자산 재평가 통해 부채비율 감소 예상”
최근 온라인을 중심으로 롯데그룹이 유동성 위기에 처했다는 ‘지라시’가 나돌았다. 이에 롯데그룹은 “롯데그룹의 10월 기준 총자산은 139조 원, 보유 주식 가치는 37조 5000억 원에 달한다”며 “롯데그룹 전체 부동산 가치는 10월 평가 기준 56조 원이며 즉시 활용 가능한 가용 예금도 15조 4000억 원을 보유하는 등 유동성을 유지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재계에서도 ‘해프닝’으로 마무리되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롯데그룹 핵심 계열사 롯데케미칼은 지난 11월 21일 2조 450억 원 규모 무보증사채에 기한이익상실 사유가 발생했다고 공고했다. 기한이익상실이란 특정 상황에서 채권자가 채무자에게 빌려준 대출금을 만기일 전에 조기회수하는 것을 뜻한다. 롯데케미칼은 무보증사채 발행 당시 ‘3개년 누적 평균 EBITDA(상각 전 영업이익)를 이자비용의 5배 이상 유지’를 조건으로 내걸었다. 이를 이행하지 못해 기한이익상실 사유가 발생한 것이다.
기한이익상실 사유가 발생했다고 바로 채권을 상환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통상적으로 기한이익상실 사유가 발생하면 회사는 사채권자 집회를 소집해 채권자에게 조건 변경 등을 요청한다. 롯데케미칼은 12월 중 사채권자 집회를 개최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관건은 채권자가 롯데케미칼의 요구를 어느 정도까지 수용할지 여부다.
김서연 NICE신용평가 수석연구원은 “채권자들은 계약 변경에 동의하더라도 최근 채권금리 상승 등을 이유로 이자율 상향 조정을 요구할 수 있다”며 “롯데케미칼과 채권자 간 합의점에 이르지 못할 경우 채권자들은 기한이익 상실 선언을 위한 사채권자집회를 소집하고, 결의를 통해 해당 채권의 조기 상환을 강제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금융투자업계 시선은 롯데그룹의 또 다른 핵심 계열사 롯데쇼핑을 향하고 있다. 롯데쇼핑도 기한이익상실 사유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롯데쇼핑이 발행한 무보증사채는 지난 9월 말 기준 총 2조 6050억 원이다. 이 중 4500억 원에 대해서는 별도 기준 부채비율을 200% 이하로 유지하지 못 할 경우 기한이익상실 사유가 발생한다. 1800억 원에 대해서는 부채비율 300%, 나머지 1조 9750억 원은 부채비율 400% 이하로 유지하지 않으면 기한이익상실 사유에 해당한다.
롯데쇼핑의 별도 기준 부채비율은 지난해 9월 말 152.99%에서 올해 9월 말 154.91%로 1년간 1.92%포인트(p) 증가했다. 문제는 앞으로다. 롯데쇼핑은 부산롯데타워, 오카도 스마트 플랫폼 등 굵직굵직한 투자를 예고한 상태다. 부산롯데타워의 경우 완공 후 수익성에 대해서 의문부호가 찍히고 있다(관련기사 부산롯데타워 착공 가시화…롯데쇼핑 ‘체력’에 따라붙는 의문부호).
이런 가운데 롯데쇼핑의 최근 실적도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롯데쇼핑의 별도 기준 순이익은 지난해 1~3분기 2846억 원에서 올해 1~3분기 38억 원으로 98.66% 감소했다. 쿠팡 등 이커머스(전자상거래) 업체가 약진하면서 롯데쇼핑에 대한 실적 전망도 좋지 않다. 롯데쇼핑도 2020년 ‘롯데ON’을 출범시키며 이커머스 사업에 진출했다. 하지만 롯데쇼핑 이커머스 사업부는 출범 후 현재까지 5000억 원 이상의 적자를 기록했다.
문아영 NICE신용평가 선임연구원은 “(롯데쇼핑은) 유통 산업의 구조적 변화로 주력 사업인 오프라인 소매유통업의 중장기적 수익기반이 약화되고 있는 점을 감안했을 때 롯데쇼핑 영업수익성의 추가적인 개선 여력은 제한적일 전망”이라며 “온라인 사업 강화 및 신규 오프라인 점포 출점 및 기존 점포 리뉴얼 등에 따른 전반적인 투자 부담이 지속될 예정으로 단기간 내 회사의 재무안정성 지표 개선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롯데쇼핑의 부채비율이 200%가 넘어가면 당장 4500억 원을 조기 상환해야 할 위기에 놓인다. 롯데쇼핑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이 지난 9월 말 별도 기준 9568억 원임을 감안하면 적은 돈이 아니다. 조기 상환이 어려우면 이자율 상향 등의 조건을 내걸며 채권자를 설득해야 한다. 이자율이 상향되면 롯데쇼핑의 비용이 늘어나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롯데지주로서도 롯데쇼핑 기한이익상실 사유 발생은 부담되는 일이다. 롯데지주의 수익은 대부분 배당금에서 발생한다. 핵심 계열사인 롯데케미칼과 롯데쇼핑의 수익성과 신용등급 악화는 곧 롯데지주의 수익성과 신용등급 악화로 이어지게 된다. NICE신용평가는 이미 지난 6월 롯데지주의 신용등급을 ‘AA-/안정적’에서 ‘AA-/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했다. 신용등급이 하락하면 자금 조달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고, 이는 신사업 추진에도 불안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롯데쇼핑은 유동성 확보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롯데쇼핑은 롯데백화점 센텀시티점 매각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롯데쇼핑은 이 매각설과 관련해 “효율적 운영을 위한 다양한 방안을 모색 중이고, 매각은 다양한 방안 중 하나일 뿐 현재 결정된 사안은 없다”고 설명했다. 롯데쇼핑은 앞서 지난 6월 이커머스 사업부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진행한 바 있다. 롯데쇼핑의 실적이 개선되지 않으면 추가적인 조치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롯데쇼핑은 지난 10월 ‘CEO IR 데이’에서 연결 법인에 대한 자산 재평가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롯데쇼핑은 2009년 자산 재평가를 진행한 후 부채비율이 102%에서 86%로 하락했다고 설명했다. 롯데쇼핑 관계자는 “롯데쇼핑은 지난 9월 말 연결 기준 현금 및 예금을 2조 8500억 원 보유하고 있으며 자산의 실질가치 반영 및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자산 재평가를 진행하고 있다”며 “재평가 대상 토지 자산은 7조 6000억 원 규모이며 재평가를 통해 자본의 증가 및 부채비율 감소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롯데쇼핑 무보증사채의 기한이익상실 사유는 연결 기준이 아닌 별도 기준으로 발생한다. 롯데쇼핑 연결 법인에 대한 자산 재평가는 별도 기준 재무에 직접적으로 반영되지 않는다. 롯데쇼핑이 무보증사채 기한이익상실 사유 발생 방지를 위해서는 연결 법인 자산 재평가 후 이를 별도 기준 재무에 적용하기 위한 작업을 추가로 진행해야 한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