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전 잔재 속 맨땅에 헤딩…폐렴으로 숨진 13세 제자 직접 묻어주기도”
대한축구협회 도움으로 파주 NFC에서 훈련을 하고 있는 동티모르 U-18 대표팀 김신환 감독.
김신환 감독은 처음부터 동티모르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생각은 없었다고 털어놨다. 선수 생활을 그만두고 국내외에서 사업을 했던 그는 동티모르 또한 ‘사업적’으로 접근했다.
친한 후배, 인도네시아 지인 등의 권유로 방문한 동티모르는 예상보다 환경이 열악했다. 그는 “내전 후유증이 심했다. 잔해가 정리되지 않았고 지붕 없는 집도 많더라. 사람 살 곳이 못 되더라”라며 “계획도 없이 갔었고 뭔가 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안들었다.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이었다”고 설명했다. 김 감독은 이후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서너 달 시간이 흐르자 또 가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동티모르에 세 번째로 떠나기 전날 사우나에서 잠을 자고 있었는데 이상한 꿈을 꿨다. 동티모르에서 묵던 곳에 불이 났고 내가 불에 탄 시체를 운반하며 일을 하고 있더라. 잠에서 깨니 땀이 범벅이었다. 선명한 꿈이었다. 그리고 동티모르에 도착했는데 동네에서 어른, 아이가 섞여 공을 차고 있는 모습을 보며 아이들에게 축구를 가르쳐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아시아축구연맹 U-19 챔피언십 예선에 참가한 동티모르 대표팀 선수들. 사진=대한축구협회
아이들에게 축구를 가르치겠다는 계획을 세운 그는 이를 바로 행동으로 옮겼다. 친한 후배 등 지인들이 쥐어준 돈으로 유니폼, 축구화 등 장비를 구입했고 아이들을 모집했다. 처음 40여 명의 아이들이 모였다. 영양이 부족해 운동을 많이 하지는 못했지만 아이들이 열심히 나왔다. 인원도 늘어났다.
그는 당시를 떠올리며 “미친 척하고 열심히 가르쳤다. 3개월 정도 하니까 실력이 올라오는 게 보이더라. 11세에서 12세가 축구선수로서 가장 습득이 빠른 시기다. 1년이 지나자 내가 봐도 나쁘지 않은 팀이 됐다. 동남아 내에서는 거의 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15세 이하 어린 선수들을 데리고 아시아권 여러 대회에 참가했다. 일본 등 아시아 강팀을 이기고 우승컵을 동티모르로 가져왔다. 동티모르 아이들에게 축구 붐이 일었고 국내에도 그의 이름이 알려지며 ‘동티모르 히딩크’로도 불렸다. 대한축구협회나 김 감독의 지인, 한국 기업으로부터 도움의 손길도 이어졌다.
한국에서는 겪어보기 힘든 다양한 경험도 많이 했다. 자신이 지도하던 13세 선수가 폐렴으로 사망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봤다. 그는 “그 아이가 3세일 때부터 봤다. 그집 3형제를 내가 다 가르쳤다. 중간에 아이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도 알고 있었다. 아버지는 사별 이후 남편이 있는 여자를 만났고 나중엔 그 여자 남편을 청부살인했다. 그 남자가 아이 아버지를 좀 괴롭혔던 것 같다. 아버지가 감옥에 가있는 와중에 아이가 죽었다. 내손으로 직접 아이를 묘지에 묻어줬다. 그때 처음 동티모르에서 눈물을 흘렸던 것 같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김 감독의 유소년 지도로 축구 강국으로 거듭날 것만 같았던 동티모르는 성장이 정체됐다. 현재 피파랭킹 192위로 아시아 내에서도 아래에 4개국뿐이다. 김 감독은 동티모르 축구 성장 저해 요인 중 하나로 축구협회를 꼽았다. 그는 “협회장과 사무총장 등 임원들이 문제였다. 전문성도 없고 축구에 대한 애정도 없었다. 돈만 밝히는 사람들이었다”며 “내가 사람들로부터 좀 지지를 받으니 나를 눈엣가시처럼 여겼다. 대회에 나갈 선수 등록을 안해주며 방해했다. 그래서 나도 어느 순간 협회와 담을 쌓아버렸다”고 설명했다.
김 감독은 소수 어린 아이들만 맡아서 지도를 이어갔고 동티모르 축구는 다시 쇠락했다. 빈곤국인 동티모르의 사정도 축구 발전에 한계로 작용했다. 김 감독은 “선수들이 훈련할 수 있는 운동장이 인조잔디 구장 딱 하나다. 거기를 4등분으로 나눠 연령별 선수들이 함께 쓴다. 조명 시설도 없어서 날이 뜨거운 낮에만 훈련을 할 수 있다”며 아쉬워했다. 동티모르는 1부리그에 8팀으로 프로리그가 운영되고 있지만 이들은 맨땅에서 훈련을 진행할 정도로 환경이 열악하다.
김 감독은 선수들의 정신적인 면도 지적했다. 그는 “선수들 동기 부여도 힘들다. 당장 먹고 사는 게 힘드니까 우리처럼 나라를 대표해서 뛴다는 사명감 같은 것도 없다. 소집을 해도 운동하러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면서 “안되는 부분에 대한 포기도 빠르다. 좋게 말하면 낙천적이라고 해야 하나(웃음). 어제 경기도 전반엔 잘 막다가 후반 중반 이후 급격히 무너지지 않았나”고 덧붙였다.
벤치에서 경기를 지켜보는 김신환 감독. 사진=대한축구협회
김 감독과 갈등을 빚던 동티모르 축구협회 수뇌부는 지난해 말 교체됐다. 새 협회장은 그에게 정중하게 ‘성인 대표팀을 맡아 달라’고 제안했다.
김 감독은 선수 동기부여를 위해 일정 금액의 대표팀 수당, 대표팀 운영과 관련해 감독에 전권 위임 등을 요구했다. 성적보다는 향후 3년간 국가대표팀의 체계를 잡는 데 집중하자고 제안했고 협회는 이를 수락했다.
동티모르에서 봉사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축구지만 승부욕도 생긴다. 그는 “그래도 축구를 하는데 이겨야 하지 않겠나”라며 “협회와 대표팀이 체계가 잡히고 상비군 격으로 많은 선수들을 정기적으로 소집해서 운영한다면 지금보다 전력이 충분히 강해질 수 있다.
스페인 말라가 CF와 포르투갈 SC 브라가 등에서 뛰는 유망주들도 있다. 궁극적으로는 동남아시아 내에서만큼은 강팀이 되는 게 목표다. 인도네시아, 베트남, 말레이시아 정도와는 대등하게 겨뤄야 한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개인적 목표는 여기(파주 NFC) 같은 축구 학교를 동티모르에 짓고 싶다. 이 정도 규모는 무리고(웃음). 작은 건물 하나에 인조잔디 구장 한 면, 천연잔디 구장 세 면 정도 지어놓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다”고 나름의 포부를 밝혔다.
파주=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
김신환 감독이 본 ‘축구 천재’ 이강인 “한 차원 높은 선수, 인성까지 그뤠잇!” 이번 아시아축구연맹 U-19 챔피언십 예선에 참가하는 대한민국 U-18 대표팀은 약팀을 상대하는 예선전임에도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았다. 유럽 현지에서도 유망주로 각광받고 있는 스페인 발렌시아 CF 유스팀 소속 미드필더 이강인이 국내 팬들 앞에서 기량을 선보이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이강인. 사진=대한축구협회 6일 한국을 상대한 동티모르 김신환 감독도 이강인을 주시해왔다. 그는 “유튜브에서 이강인 경기 영상을 많이 찾아봤다. 영상과 마찬가지로 실제 경기에서도 기량이 좋더라”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강인은 이날 벤치에서 경기를 시작했지만 후반전 교체 투입돼 짧은 시간임에도 1골 1도움을 올리며 강한 인상을 남겼다. 경기에 투입된 직후 상대 밀집 수비를 깨는 중거리 슈팅을 지속적으로 골문 안으로 날렸다. 골키퍼가 가까스로 막아낼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강인은 후반 추가시간에 프리킥 중거리 슈팅으로 골을 기록했다. 김 감독은 “볼 소유 능력이 좋고 드리블이 부드럽다. 선수들을 한쪽으로 몰아 놓고 전방으로 찔러주는 패스를 한다”며 “한 차원 높은 선수다. 좋은 선수인 건 확실하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그는 “인성적으로도 좋은 선수인 것 같다. 파주에서 지나치면서 불러서 ‘내가 너 유튜브에서 많이 봤다’고 이야기도 하는데 인사도 잘하고 대답도 예의 바르게 잘한다”고 덧붙였다. [상] |
영화 <맨발의 꿈> 탄생 비화 ‘선수들 비행기표 값 벌려고…’ 김신환 감독과 동티모르 유소년 축구선수들의 스토리는 국내에서 영화로도 제작된 바 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기간에 개봉된 영화 <맨발의 꿈>은 동티모르에서 한국인 감독이 유소년 축구팀을 이끄는 내용을 담았다. 김 감독의 스토리다. 김 감독은 영화에 대해 “영화를 연출한 김태균 감독과는 전부터 알던 사이”라며 “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고 싶다고 여러 번 이야기 했었는데 내가 부끄럽기도 하고 해서 ‘말도 안되는 소리하지 말라’며 그때마다 펄쩍 뛰었다”고 말했다. 이후 김태균 감독은 종종 유소년팀 운영을 돕는 기부금을 건네기만 했다. 유소년 팀을 이끌고 국제대회에 참가하던 김신환 감독은 어느 날 난관에 부딪혔다. 대회 참가 직전에 협회 지원이 부족해 선수들 비행기표를 구입하지 못하게 됐다.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가 갑자기 머릿속에 떠오른 이는 김태균 감독이었다. 김 감독은 “그때 바로 김태균 감독에게 전화를 걸어 ‘그 영화 하면 나에게 생기는 수익은 얼마냐’고 물었더니 저작권 관련해서 2000만 원이라고 하더라. 그래서 바로 하겠다고 하고 2000만 원과 기부금 조금을 보태 아이들 비행기 표와 운동 장비를 살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동티모르 축구협회에 금전적 지원이 풍족했다면 아마도 영화 ‘맨발의 꿈’은 세상에 빛을 보지 못했을지 모른다. [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