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폐소생술 능력 과시 위해 환자들에 치명적 약물 주입…“증명된 희생자 빙산의 일각”
간호사 닐스 회겔은 5년간 106명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왼쪽은 재판정에서 얼굴을 가리고 있는 모습이다.
병원 동료들의 증언에 따르면, 회겔은 무척이나 성실하고 헌신적인 간호사였다. 하지만 때로는 이상하리만치 너무 성실했다는 점이 문제였다. 가령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던 한 의사는 “하루는 회겔이 어떤 환자의 심폐소생술을 실시하기 전에 복도를 달려가서는 두 명의 견습 간호사들을 긴급히 불러왔다. 왜 그가 즉시 심폐소생술을 하지 않고 굳이 견습생들을 불러왔는지 의심스러웠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바로 여기에 회겔의 범행 동기가 숨어 있었다는 사실을 그때 그 의사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회겔의 범행 수법은 늘 똑같았다. 중환자 병동에서 근무했던 회겔은 위독한 상태의 환자들만을 골라 범행을 저질렀다. 먼저 환자의 심장에 치명적인 약물을 몰래 주입해 위급한 상태에 빠지도록 한 다음 직접 심폐소생술로 되살리는 것이었다. 심폐소생술에 극적으로 성공할 경우 그는 동료들 사이에서 ‘영웅’ 또는 ‘구세주’가 되었지만, 실패할 경우 환자는 그대로 사망하고 말았다. 그리고 불행히도 대부분은 그랬다.
이처럼 회겔은 자신의 심폐소생술 능력을 과시하고자 ‘재미삼아’ 범행을 저질렀고, 환자가 살아나면 동료들과 함께 기뻐하는 척을, 그리고 환자가 사망하면 낙담하는 척을 했다. 2015년 재판에서 수석판사는 “회겔에게 피해자들은 하나의 게임 캐릭터 같은 존재였다. 그 게임은 늘 회겔이 이기는 게임이었다. 나머지는 모두 잃는 게임이었다”고 말했다.
회겔이 범행에 사용했던 약물은 아지말린(항부정맥제), 소탈롤(항부정맥제), 아미오다론(항부정맥제), 리도카인(국소마취제), 염화칼륨 등 모두 다섯 가지였다. 이 약물들은 과도하게 투입될 경우 심장 부정맥과 혈압 하강 증상이 나타나며, 중증 상태인 환자의 경우에는 혈압이 급격히 낮아져 목숨이 위태로워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5년 동안 은밀하게 진행됐던 그의 범죄 행각이 마침내 발각된 것은 2005년, 한 동료 간호사의 신고 때문이었다. 회겔이 환자의 주사기에 의사의 처방전 없이 항부정맥제를 몰래 투입하는 모습을 목격했던 것. 당시 이 간호사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안정적이었던 환자의 심박수가 갑자기 불규칙해졌었다”고 말하면서 “병실에 가보니 이미 회겔이 도착해 있었다. 그리고 쓰레기통에서 빈 약물통을 발견했다”고 증언했다.
결국 덜미가 잡힌 회겔은 경찰에 의해 체포됐고, 수사 결과 그간의 끔찍했던 범행들이 하나둘 만천하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수사당국은 병원 직원들의 “아무래도 회겔이 환자들의 합병증 발병, 심폐소생술 횟수 증가, 더 나아가 원인 불명의 사망과 연관이 있는 것 같다”는 증언을 토대로 수사를 벌였으며, 그 결과 회겔이 병원에서 일하기 시작한 2003년 이후부터 갑자기 환자들의 사망률이 두 배로 증가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가령 2005년 한 해 동안 사망한 환자들의 73%가 유독 회겔의 근무 시간에 사망했던 것이다.
이에 추가 범행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다는 비난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올덴부르크 경찰국장인 요한 퀴메는 <가디언>을 통해 “회겔의 범죄는 사전에 막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회겔이 처음 근무했던 올덴부르크의 병원에서부터 이런 수상한 낌새는 충분히 눈치챌 수 있었다는 것이다.
닐스 회겔이 연쇄살인극을 벌인 올덴부르크 병원(위)과 델멘호르스트 병원.
회의를 마친 후 회겔은 돌연 3주간의 병가를 냈다. 그리고 우연인지 몰라도 회겔이 휴가를 낸 기간 동안 사망한 환자 수는 단 두 명에 불과했다.
결국 직원들 사이에 돌던 흉흉한 소문을 의식한 병원 측은 2002년 9월, 회겔에게 사직을 권고했다. 다만 다른 병원으로 이직할 수 있도록 추천서를 작성해주었다. 추천서에는 “사려 깊고, 성실하며, 자발적으로 일하는 간호사다” “주어진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한다”는 등 칭찬 일색이었다. 덕분에 회겔은 2002년 델멘호르스트 병원으로 이직할 수 있었으며, 역시 이곳에서도 중환자실 병동에서 근무할 수 있었다.
수상한 일은 이곳에서도 계속 벌어졌다. 그가 병원에 온 후부터 갑자기 심장 부정맥 또는 혈압 강하로 목숨이 위태로워진 환자들이 부쩍 늘어났던 것. 그러던 중 2005년 결국 한 동료 간호사에 의해 부정 행위가 목격되고 난 후에야 회겔의 범죄 행각은 멈추었다.
경찰 조사 결과, 최초의 범행은 2000년 2월 올덴부르크에서 시작됐던 것으로 조사됐다. 다만 그 전에 저지른 범행에 대해서는 워낙 오래된 일이라 더 이상 증명할 수가 없는 상태다.
2008년, 올덴부르크 지방법원은 회겔에게 델멘호르스트 병원에서 벌어진 두 건의 살인 및 세 건의 살인미수 혐의로 징역 7년 6월형을 선고했다. 하지만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쏟아지는 제보로 추가 수사를 벌였던 검찰은 2014년 1월 새로운 혐의로 회겔을 추가 기소했으며, 경찰 역시 특수수사본부를 꾸리고 다시 수사에 착수했다.
500명가량의 환자들의 진료 기록을 조사한 경찰은 이 가운데 미심쩍게 사망한 134명을 추려냈다. 이미 땅에 묻힌 사체를 발굴한 후 회겔이 사용한 약물의 흔적이 남아있는지 조사했고, 이 가운데 시신 27구에서 항부정맥 약물 성분이 검출됐다.
2015년 1월, 회겔은 법정에서 모든 범행 사실을 자백했다. 당시 회겔은 유가족들에게 “진심으로 죄송하다”며 용서를 구하는 한편 “모두 우발적으로 저지른 일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환자들이 사망할 때마다 다시는 범행을 저지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이런 다짐은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사라졌다”고도 말했다. 그리고 2015년 2월, 결국 올덴부르크 지방법원은 두 건의 살인, 두 건의 살인미수, 두 건의 심각한 상해 혐의 등 범죄 행위가 증명된 총 여섯 건의 범죄 행위에 대해 종신형을 선고했다.
하지만 과연 이게 전부일까. 이에 대해 아르네 슈미트 특수수사본부장은 “그동안 회겔이 몇 명을 살해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희생자들이 이미 화장된 상태이기 때문에 더 이상의 수사는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증명된 범죄 행위는 아마 빙산의 일각일 것”이라고도 말했다. 퀴메 국장 역시 “회겔의 끔찍한 범행은 상상을 초월한다”고 말했다.
실제 그후에도 수사를 하면 할수록 희생자 수는 점점 늘어만 갔다. 2016년 6월, 수사당국은 회겔이 델멘호르스트 병원에서 열두 명을 더 살해한 혐의를 포착했으며, 2017년 8월에는 총 84명으로 희생자수가 더 늘어났다. 이에 따라 종신형을 선고받은 여섯 건까지 더해 최종적으로 밝혀진 회겔의 범죄 행각은 90건에 달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끝이 아니었다. 가장 최근인 2017년 11월, 검찰은 추가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희생자 명단에 열여섯 명을 더 포함시켰다. 이로써 지금까지 밝혀진 희생자 수는 총 106명에 달한 상태다.
회겔의 끔찍한 범죄 행각이 계속해서 드러나자 독일인들은 그동안 안일했던 병원 측의 태도를 질타하는 한편,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무엇보다 더욱 끔찍한 것은 행여 앞으로 희생자 수가 더 늘어날까 하는 것이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