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치는 건지 안 치는 건지 ‘방황하는 칼날’
130억 원 한진해운 부실투자와 관련한 최순자 인하대 총장에 대한 검찰 수사가 7개월째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교육부가 최순자 총장에 대해 중징계 요구를 통보하자 인하대 교수회는 최 총장 파면을 요구하며 단체행동에 들어갔다.
교육부는 지난 9월 1일 학교발전기금 130억 원을 한진해운 부실채권에 투자해 재정에 손실을 초래한 최 총장에게 중징계 의결을 요구했다. 인하대는 이에 불복하고 재심의를 요청했지만, 교육부는 지난 7일 열린 재심의에서도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교수회 측은 “최순자 총장이 교육부의 중징계 요구를 통보받고도 반성이나 사과 한마디 없이 오히려 연임 의도를 흘리고 다닌다”며 “몰상식적이고 반지성적 인물”이라고 비난했다.
앞서 인하대는 대학발전기금을 활용해 지난 2012년 7월과 2015년 6~7월 각각 50억 원과 80억 원, 총 130억 원어치의 한진해운 회사채를 매입했다. 하지만 지난 2월 법원이 한진해운 파산선고를 내리면서, 인하대가 매입한 채권들은 모두 휴지 조각이 됐다.
인하대가 한진해운에 투자한 대학발전기금은 동문·학부모·기업들이 낸 기부금으로, 학생복지나 교육시설 확충에 사용돼야 한다. 물론 사립학교법 등에 따르면 대학이 발전기금을 주식·채권 등 금융상품에 투자하는 것이 불법은 아니다. 문제는 한진해운이 해운업 불황으로 경영 악화를 겪는 와중에 투자결정을 했다는 점이다. 인하대가 80억 원의 회사채를 매입한 2015년 6~7월 당시 한진해운 회사채 신용등급은 투자적격등급 중 가장 낮은 ‘BBB-’였다.
회사채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최순자 총장 등 실무진이 적법 절차를 지키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왔다. 교수회 관계자는 “대학이 채권을 매입하기 위해서는 기금운용위원회를 열고 종목 선정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한진해운 회사채 매입 시 위원회가 열리지 않았고, 최순자 총장과 사무처장이 전결로 결정했다”며 “보유 회사채에 5% 이상 손실이 발생하면, 학교는 기금운용위원회를 열어 채권 매도 또는 보류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그런 절차도 거치지 않아 손실이 커지도록 방치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교육부는 중징계 의결 요구에 그치지 않고 최순자 총장 등 관계자들에 대한 검찰 수사도 의뢰했다. 검찰은 이 사건을 인천지검 특수부에 배당해 조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런데 인하대의 한진해운 부실채권 투자와 관련해 검찰 고발이 들어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지난 4월 인천지역 시민단체인 인천평화복지연대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과 최순자 총장, 인하대 전·현직 사무처장 등 4명에 대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로 인천지검에 고발장을 제출했다.
특히 이 고발장에는 피고발인에 최순자 총장뿐만 아니라 조양호 회장도 이름을 올려 눈길을 끌었다. 인하대는 학교법인 ‘정석인하학원’ 소속이다. 정석인하학원의 이사장은 조양호 회장이고, 아들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 역시 이사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또한 한진해운은 당시 한진그룹의 계열사였다.
이에 인하대의 한진해운 공매사채 매입 결정에 정석인하학원의 입김이 작용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한진그룹 오너 일가나 계열사의 손실 보전을 위해 인하대의 대학발전기금을 이용했다는 것이다. 피고발인에 조양호 회장이 포함된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으로 보인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신동근 더불어민주당 의원 역시 지난 3월 보도자료를 통해 “인하대가 한진해운 회사채를 매입하는 과정에 모기업인 한진그룹의 직·간접적 외압이 있었던 것이 아닌지 의혹을 사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검찰의 지지부진한 수사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인천지검에 고발장이 제출되고 7개월이 지났지만 검찰에서는 아직까지 수사 결론을 내놓지 않고 있다.
고발인인 인천평화복지연대 관계자는 “고발장 접수하고 고발인 조사는 받았다. 이후 수사가 진행되지 않아 검찰에 문의하니, 검찰 인사에 따른 담당자 변경 등으로 늦어진다는 답을 받았다. 하지만 그 이후 수사 진행사항은 따로 듣지 못했다”고 전했다.
실제 인천지검은 아직까지 피고발인 조사도 마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최순자 총장은 “인천지검에서 아직 조사를 받지 않았다. 연락도 없었다”며 “다만 직원들은 조사를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한진그룹 관계자 역시 “조양호 회장은 피고발인 조사를 받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인천지검 관계자는 “수사가 진행 중인 사건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고 말을 아꼈다.
하지만 법조계 관계자는 “7개월째 피고발인 조사도 안 했는데, 그걸 수사 중인 사건이라고 볼 수 있느냐”며 “이렇게 수사가 길게 미뤄지는 경우는 드물다. 결국 조사를 진행할 수 없는 다른 사정이 있는 것 아니겠느냐. 검찰에서도 부담을 느끼고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이어 “고발인들이 빨리 수사를 진행해달라고 검찰에 압력을 넣는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자택 공사대금에 회사 돈을 끌어다 쓴 혐의로 지난 9월 경찰청에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이종현 기자
한편 조양호 회장은 이 고발건 외에도 최근 조사를 받은 사건에서도 ‘봐주기’ 논란이 불거진 바 있다. 조양호 회장은 계열사 호텔 공사비 30여억 원을 자택공사 대금으로 유용한 혐의로 지난 9월 경찰청에 소환돼 약 16시간에 걸쳐 피의자 조사를 받았다.
경찰은 피의자 조사 후 조 회장에 대해 두 차례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검찰이 모두 반려해 검·경 사이에 갈등이 불거졌다. 영장기각 사유에 대해 검찰 측은 “경찰이 수사한 증거 자료만으로는 조양호 회장이 비용 전가 사실을 보고 받았거나 알았다는 점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결국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지난 22일 조양호 회장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를 적용해 불구속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할 수밖에 없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