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사찰 개입 혐의’ 최 전 차장 구속영장 청구 소식에…‘우레이저’ 주춤
예민한 질문을 하는 기자들에게 서슴없이 ‘레이저 눈빛’을 쏘는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지만(원래 같이 일하는 검사들에게는 더 심한 눈빛을 쏘았다고 알려져 있기도 하다), 최윤수 전 국정원 2차장 얘기가 나오자 ‘주춤’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대학시절부터 30년 넘게 알고 지낸 친한 친구가 자신 때문에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받게 된 상황이 미안하고 안타까워서였으리라.
‘우병우 사단, 황수경 전 KBS 아나운서의 남편’으로 유명한 최윤수 전 2차장이지만, 사실 박근혜 정부 시절에는 ‘절친’ 우 전 수석을 등에 업고 검찰 내에서 가장 잘나가던 검사였다. 실력이 탁월했던 최 전 차장은, 검사장도 가뿐하게 달았다. 하지만 검사장이 된 후 ‘절친’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국정원 2차장으로 가게 됐다. 파격적인 인사였는데 그때의 결정이 최 전 차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전락하게끔 만들었다.
박근혜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의 불법사찰에 개입한 혐의를 받는 최윤수 전 국정원 2차장이 지난 2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되고 있다. 연합뉴스
둘의 인연부터 짚어보자. 경북 김천에서 태어나 부산 내성고를 졸업한 최윤수 전 2차장과 우병우 전 수석과 대학에 입학하면서 알게 됐다. 경북 영주 출신의 우병우 전 수석과 1984년 서울대 법대에 나란히 입학한 것. 수십 명이 넘는 대학 동기 사이에서도, 이들은 친하게 붙어 다녔다. 재수를 하거나, 삼수를 하고 온 ‘형’들 사이에서 동갑내기 친구가 있다는 것은, 이들을 더욱 가깝게 만드는 요인이었다.
인연은 사법시험을 합격하면서 더 끈끈해졌다. 선후배 검사가 된 것. ‘천재’ 소리를 들은 우 전 수석은 대학 3학년 재학 중인 1987년, 제29회 사법시험에 최연소(21세)로 합격해 검사로 임관했다. 최윤수 전 차장은 우 전 수석의 2년 후배가 됐다. 제31회 사법시험에 합격했고 우 전 수석처럼 검사의 길을 선택했다. 선후배 문화가 엄격한 검찰이지만, 이들은 사석에서는 여전히 대학 때처럼 말을 놓고 지냈다. 단순히 말을 놓는 게 아니라, 대학 시절 별명으로 서로를 부르고, 욕설이 담긴 얘기들도 편하게 주고받는 사이였다.
최윤수 전 차장, 우병우 전 수석과 대학 동기인 한 법조인은 “민정수석이 된 후에도 이들의 서초동 술자리에 몇 번 합류했는데, 대학 시절 친구들이랑 얘기하던 것처럼 별명과 욕을 아무렇지 않게 섞어서 대화를 하더라”며 “우 전 수석이 대학 시절보다 더 거침없이 개인적인 의견을 얘기해도, 최 전 차장은 익숙한 듯 편하게 자기 얘기를 하는 분위기였다”고 묘사했다.
직권남용 및 국가정보원법 위반 공모 혐의를 받는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지난 29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박정훈 기자
검찰 내에서도 나란히 특수 수사의 길을 선택한 우 전 수석과 최 전 차장. ‘승승장구’ 하던 둘은 우 전 수석이 예민한 수사를 맡았다가 좌천되면서 달라졌다. 우병우 전 수석은 2009년 박연차 탈세 수사를 하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주임검사가 됐는데, 노 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수사에 책임을 지게 됐다.
동기(사법연수원 19기) 중 유력한 검사장 후보였던 우 전 수석은 다음 두 차례 인사에서 검사장이 되지 못했고, 좌천성 인사를 받았다. 인천지검 부천지청장과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임명됐는데, 이는 검찰 내에서 ‘그만두고 나가라’는 시그널로 풀이될 수 있다. 참고 견디던 우 전 수석은 결국 2013년 검사의 옷을 벗고 변호사로 개업했다.
한때 꿈이었던 검사장을 달지 못하고, 개업해 나갈 때는 초라했지만 얼마 안 가 화려하게 부활했다. 다음해(2014년) 민정비서관으로 발탁돼 청와대에 입성했고, 입성 7개월 만에 민정수석이 된 것. 그리고 우 전 수석은 검찰을 완벽하게 통제하기 시작했다. 검찰의 ‘칼’이 얼마만큼 위력적인지 알았기 때문이었다.
검찰 통제의 통로가 바로 최윤수 전 차장이었다. 우 전 수석이 청와대에 입성한 시점부터, 최 전 차장은 정치인이나 대기업 수사를 주도하는 특수 수사를 지휘하는 요직에 가게 됐다. 전주지방검찰청 차장검사였던 최윤수 전 2차장은 절친 우병우가 청와대에 들어간 뒤 대검찰청 반부패부 선임연구관(2014년),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2015년)에 임명된다. 서울중앙지검에서 농협, 포스코,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 사건 등 청와대에서 지시한 수사를 무난하게 마무리 지은 최윤수 전 차장은 2015년 12월 인사에서 검사장(부산고검 차장검사)으로 승진한다. 자연스런 흐름이었다. 그리고 지난해 2월, 검사장이 된 지 3개월 만에 돌연 국정원 2차장으로 임명된다.
우병우 전 수석의 추천이었다는 게 정설. 실제 최윤수 전 2차장은 국정원에 가게 된 일련의 과정에 대해 가까운 법조인들에게 “우병우가 하라고 하는데 안 갈 수가 없었다”고 털어놨다. 우 전 수석의 요청을 받았다고 인정한 것. 우 전 수석은 지속적으로 최 전 차장에게 ‘국정원에 가서 도와달라’고 요청했지만, 최 전 차장은 “검사장도 아닌데 어떻게 국정원 차장으로 갈 수 있겠냐”며 거절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검사장이 된 후 우 전 수석이 “나는 검사장도 아닌데, 민정수석이 되지 않았냐”며 최 전 차장에게 국정원 차장으로 갈 것을 강력하게 다시 권유했다. 이에 최 전 차장은 주변에 “본인은 검사장 못했는데도 민정수석이지 않느냐고 하는데 더 이상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고 검사 옷을 벗게 된 과정을 밝혔다. 결국 검사장이 된 뒤에 국정원으로 갔음에도, 파격적인 인사였다. 최 전 차장이 전임이었던 김수민 2차장(사법시험 22회)보다 9기수 아래였으니 말이다.
국정원 2차장으로 자리를 옮긴 최 전 차장은 검찰에 있을 때보다 적극적으로 우 전 수석과 협조했다. 국내 정보 및 공안 부문을 담당하는 국정원 내 핵심 요직에서 문화 예술인 블랙리스트 등과 같은 예민한 자료에 관여하고, 이를 우 전 수석에게 공유했다. 특히 이석수 전 감찰관의 사찰을 허락하고, 관련 동향을 우 전 수석에게 보고하게끔 했다. 그리고 결국 그 협조들이 국정원법 위반 혐의가 되어, 최 전 차장을 구속영장 실질심사까지 이끌었다.
우병우 전 수석과 ‘공범’의 위치에서 국가정보원의 불법사찰에 관여했다는 게 서울중앙지검 국정원 수사팀(수사팀장 박찬호 2차장검사)의 판단이다. 검찰은 최윤수 전 차장이 ‘국정원 문화·예술인 배제 보고서’를 수차례 보고받고 지시하는 등 블랙리스트 작성·실행에 관여한 것으로 보고 있다. 추명호 전 국정원 국익정보국장이 우병우 전 수석에게 ‘비선 보고’하는 데 관여한 정황도 확인했다. 추명호 전 국장이 공식 기록 등을 남기지 않고, 우 전 수석에게 보고하는 과정을 알고 승인했다는 것. 정식 보고 체계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국정원법 위반이라는 게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 이유다.
우병우 전 수석의 구속을 계획하고 있는 검찰 입장에서, 우 전 수석을 잡기 전 신병확보가 필요한 것이 최 전 차장이기도 하다. 우병우 전 수석을 깔끔히 구속하기 위해서는 ‘공범’인 최 전 차장을 구속할 필요가 있기 때문. 실제 검찰은 지난 22일 추 전 국장을 구속기소하며 최 전 차장과 우 전 수석을 공범으로 적시했다. 구속영장 실질심사에 모습을 드러낸 최 전 차장은 “불법 사찰에 관여한 게 맞느냐, 우병우 전 수석에게 보고했느냐” 등의 기자들의 질문에 일절 답을 하지 않고 들어갔다.
서환한 기자 brigh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