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속의 시신’...캠퍼스가 떨고 있다
▲ 애니 레이 | ||
전자 출입증을 소지한 예일대 학생이나 대학 관계자들만이 건물에 출입할 수 있다는 점 덕분에 수사는 급진전됐고, 결국 지난 16일 유력한 용의자 한 명이 체포되면서 사건은 일단락됐다.
하지만 이번 사건으로 예일대에서는 교내 안전에 대한 문제가 다시금 심각하게 논의되고 있으며, 이런 우려는 예일대를 넘어 하버드, 코넬, 펜실베이니아 등 아이비리그 전체로 퍼지고 있다. 특히 이번 사건으로 패닉 상태에 빠져 있는 예일대 학생들은 “누가 더 이상 캠퍼스를 안전지대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라며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레이가 실종된 것은 지난 9월 8일이었다. 그녀의 마지막 모습은 메인 캠퍼스에서 1.6㎞가량 떨어져 있는 의과대학 부속건물 연구실 입구의 CCTV에 찍혀 있었다. 처음에는 실종 사건으로 여기고 수색을 펼쳤던 경찰은 곧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연구실에 설치된 75대의 CCTV 어느 곳에서도 레이가 다시 건물 밖으로 나가는 모습이 발견되지 않은 것이다.
마침내 레이가 실종된 지 5일 만인 지난 12일, 실험실 천장에서 결정적인 증거가 발견됐다. 누군가가 피 묻은 셔츠를 천장 타일 안에 몰래 숨겨 놓은 것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오후 지하실 벽에서 시체 한 구가 발견됐고, 확인 결과 이 시체는 레이의 것으로 판명됐다. 결국 그녀는 우려했던 바대로 건물 밖으로 나오지 못한 채 건물 안에서 처참하게 살해되었던 것이다.
시체가 발견된 연구실은 출입증이 있어야지만 드나들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에 경찰의 용의선상에 오른 사람들은 극히 일부로 제한됐다. 그리고 얼마 안 가 한 명의 유력한 용의자가 경찰에 체포됐다. 바로 동물 실험실에서 기술직 직원으로 일하고 있던 레이몬드 클라크(24)라는 이름의 남성이었다. 그가 용의자로 지목된 이유는 가슴에 있는 손톱으로 할퀸 자국 때문이었다. 또한 그는 경찰의 초동 수사 당시 거짓말 탐지기를 통과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 레이몬드 클라크 | ||
한편 교내에서 이런 끔찍한 살인 사건이 벌어지자 예일대 학생들은 두려움과 공포심에 떨면서 학교 측에 하루빨리 대책을 마련하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화학과 2학년생인 무니브 술탄은 “살인마가 캠퍼스를 돌아다닌다니 정말 끔찍하다”며 “앞으로는 마음 놓고 학교를 다니지 못하겠다”라고 불안해했다.
예일대는 공포심에 떨고 있는 학생들에게 단체 메일을 보내 안심시키는 등 사태를 수습하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리처드 레빈 예일대 학장은 “많은 통계 자료들이 보여주듯 예일이 다른 아이비리그 대학보다 특히 더 위험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가령 학생 1000명 당 범죄 발생 건수는 예일이 11.7건인 데 반해 하버드는 20.5건이며, 2.7건인 코넬이나 6건인 펜실베이니아를 제외한 다른 아이비리그 대학들도 평균 9.6~12건이라는 것이다. 또한 교내에서 발생하는 범죄의 65% 이상이 단순 강도이며, 살인이나 강간 등과 같은 강력 범죄는 극히 일부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 애니 레이(오른쪽)과 약혼자 | ||
또한 이 사건은 당시 사건과 관련해 퇴학 당한 흑인 여학생이 뒤늦게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고 나서면서 인종 문제로까지 번져 교내를 시끄럽게 하기도 했다. 가난한 흑인 노동자 집안 출신이자 코카콜라, 뉴욕타임스, 골드만삭스 등에서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하던 차네쿠아 캠벨(21)은 당시 기숙사 출입증을 범인에게 빌려준 혐의를 받고 학교로부터 퇴학을 당했다.
하지만 캠벨 자신은 사건이 발생한 기숙사에 살고 있지 않았으며, 사건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주장하면서 자신은 인종 차별의 희생양이라고 항변했다.
한편 아이비리그 인근에 위치한 대학들도 최근 부쩍 늘어난 범죄 사건으로 교내 안전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특히 지난 2007년 발생했던 버지니아 공대 총격 사건 후 캠퍼스 곳곳에서는 감시 카메라가 설치됐으며, 대부분의 대학들은 보안 문제가 발생할 경우 학생들에게 이메일, 문자 메시지, 페이스북 메시지를 통해 신속히 상황을 전달할 수 있도록 비상 연락망을 구축해 놓았다.
가령 뉴욕에 위치한 포드햄대학은 1년 반 전 권총으로 무장한 남성이 학교 도서관으로 향한다는 제보를 접한 직후 1만 5000명의 학생들에게 ‘모두 도서관 근처에 가지 말 것’이라는 단체 문자 메시지와 메일을 발송해 대형 사고를 막았다. 또한 디자인 및 건축 전문 대학인 프랫인스티튜트에서는 경비원이 24시간 내내 캠퍼스를 순찰하고 있으며, 교내에는 수백 대의 감시 카메라와 비상전화기가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