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있는 ‘반 MB 세력’ 찍어내!
▲ 민주당 박지원 의원. | ||
박 의원은 검찰과 국정원 등 사정당국의 ‘정치 사찰’ 배후에 청와대가 자리 잡고 있다고 주장해 파문을 확산시키고 있다. 청와대는 ‘정치 사찰’ 의혹을 일축하고 있지만 내심 정부 부처 내부에서 고급 정보가 유출되고 있는 사실에 바짝 긴장하고 있는 분위기다. 공직기강이 무너지고 기밀이 자꾸 외부로 유출될 경우 권력누수로 이어져 조기 레임덕을 초래할 수 있다는 위기감도 감지되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선 청와대가 공직기강을 다잡고 권력누수를 차단하기 위해 사정당국에 비밀 지령을 하달했다는 얘기까지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정치 사찰’ 논란에 휩싸이면서까지 당국이 강력한 내부단속에 나선 까닭은 무엇일까.
“청와대와 사정당국이 내 뒷조사를 하고 있다.”
천 전 후보자 낙마에 결정적 역할을 한 박지원 의원이 7월 17일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폭로한 내용이다. 검찰총장 인사청문회 때 자신이 공개한 자료의 출처를 검찰이 조사하고 있고, 그 배후에는 청와대가 자리하고 있다는 게 박 의원 주장의 골자다. 박 의원의 ‘뒷조사’ 주장은 곧 사실로 드러났다. 검찰이 관세청 등을 상대로 천 전 후보자의 해외 골프여행 등 개인정보 유출 경위를 내사한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보복 수사’ 논란 등 파문이 확산될 조짐이 일자 검찰은 7월 21일 내사 자료를 해당기관에 넘기고 수사를 중단했지만 ‘정치 사찰’ 논란은 더욱 확산되고 있다.
김유정 민주당 대변인은 18일 논평을 통해 “천 전 후보자의 낙마 후 검찰이 박지원 의원 뒷조사를 하는 것은 반민주적인 보복수사”라며 “검찰은 야당 의원의 정당한 의정활동에 대한 사찰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민주당 관계자들은 검찰이 여론의 역풍을 감수하면서까지 무리하게 박 의원에 대한 내사를 벌인 것은 청와대 등 윗선의 지시가 있었거나 분명 말 못할 또 다른 사정이 숨어 있을 것이란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이와 관련, 7월 22일 기자와 만난 대검의 한 관계자는 “고검장이 대거 사퇴한데 이어 총장 후보자마저 낙마해 초유의 지도부 공백 사태에 직면한 검찰이 무리수를 둘 이유가 없지 않느냐”며 “분명 청와대나 윗선의 지시나 교감 속에 내사를 진행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박 의원에 대한 내사는 흐트러진 공직기강을 다잡고 권력누수 현상을 차단하고자 하는 권력 핵심부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파악된다”며 “검찰을 비롯해 국정원과 경찰, 국세청 등 사정기관에 정부 기밀을 유출하는 ‘빨대’ 색출령이 하달되는가 하면 공직기강을 바로잡기 위한 공직자 사정 플랜도 은밀히 가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치권 관계자들도 청와대를 정점으로 한 사정당국이 이번 ‘천성관 파동’을 계기로 공직사회의 흐트러진 기강을 바로잡고 권력누수를 차단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를 강구하고 있을 것이란 관측을 내놓고 있다. 정권을 지탱해 주는 버팀목인 공직사회의 기강이 무너지고 정부 기밀이 계속 유출될 경우 권력누수로 이어져 결국 레임덕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와 여권 핵심부 일각에서는 정부 내부의 기밀 유출 이면에는 ‘친 민주당’ ‘친 호남’ 성향 공직자를 주축으로 한 ‘반 MB’ 세력의 조직적 반발 기류가 자리하고 있을 것이란 의구심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천 전 후보자와 관련한 정부 내부 자료는 물론 김재호 동아일보 사장 및 경총 회장 아들의 주식불공정거래 의혹, 한승수 총리 아들 내외의 주식거래 논란 등이 속속 외부에 유출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권 내부에선 ‘반 MB’ 정서에 편승한 권력누수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사정당국 주변에서 권력누수 현상을 차단하고 공직기강을 다잡기 위해 제2의 사정정국이 도래할 것이란 소문이 나돌고 있는 것도 이러한 목소리와 그 맥을 같이하고 있다. 실제로 여름 휴가철을 맞아 정부 부처와 전국 자치단체, 시도교육청 등 공직사회 전반에 공직기강 특별감찰이 광범위하게 실시되고 있다. 여름철 휴가에 따른 행정공백 방지와 시민생활 안정을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흐트러진 공직기강을 확립하고 권력누수 현상을 철저히 차단하겠다는 정권 차원의 전 방위적인 감찰 플랜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사정당국 주변에선 청와대 민정수석실 산하 감사팀을 보강해 상시 감찰을 실시하고 감찰에 적발된 인사는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엄정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청와대 감사팀의 ‘제 식구 봐주기’ 식의 솜방망이 처벌이 공직기강을 흐트러뜨리는 동시에 감찰 무용론을 불러온 게 아니냐는 자성의 목소리도 흘러나오고 있다.
실제로 청와대는 올해 초 발생한 청와대 행정관의 향응수수 의혹을 계기로 청와대 및 고위공직자들의 기강을 다잡기 위해 4월 초부터 100일 감찰에 돌입한 바 있다. 지난 7월 7일자로 마무리된 100일 감찰에는 청와대 민정수석실 산하 감사팀 7명과 특별팀원 12명 등 모두 19명이 투입돼 고강도 감찰을 벌여 한동안 공직사회를 공포 속으로 몰아넣기도 했다. 하지만 감찰팀은 100일간의 고강도 감찰에도 불구하고 단 1명의 사법처리 대상자는 물론 공직자 윤리강령에 위반한 징계 대상자도 아무도 없었다고 발표하고 감찰을 마무리했다.
100일 감찰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감찰팀 주변에선 골프 접대를 받거나 룸살롱에 출입한 청와대 인사들이 상당수 적발이 됐고, 이권 개입 등 개인비리 혐의가 적발된 고위 공직자도 수 명에 달한다는 소문이 무성히 나돌았으나 감찰 결과는 정반대였다. 감찰팀의 솜방망이 감사 결과는 감찰 무용론과 함께 100일 감찰을 둘러싼 갖가지 억측과 의혹을 양산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사정당국 일각에서는 감찰 결과 청와대 고위급 인사의 비리 혐의가 적발되는 등 자칫 현 정부 권력형 비리 문제로 비화되거나 고위층의 도덕적 해이 문제가 현 정부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 감찰 ‘백지화’ 카드를 꺼내든 게 아니냐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여권 관계자들은 민주당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정치 사찰’ 논란을 불식시키고 공직기강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상시 감찰 체제를 가동해 비리가 적발될 경우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일벌백계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사정당국의 공직기강 재정비 플랜과 고강도 사정 드라이브가 언제 어떤 식으로 수면 위로 부상할지 공직사회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