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력 붙이던 정 돌부리에 휘청
▲ ▲ 더 큰 그림을 그려야... 정세균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은 7월 28일 서울 영등포역 앞에서 언론악법 원천무효 거리 선전전을 가졌다. -유장훈기자 doculove@ilyo.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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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주가가 급상승한 친노그룹이 신당을 창당할 경우 정 대표의 정치적 입지는 흔들릴 수밖에 없고, 야권 권력지형도 지각변동이 불가피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정 대표가 친노 신당론을 애써 외면하면서 민주당 중심의 대통합론을 주창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관측과 그 맥을 같이하고 있다.
친노 진영 주변에선 신당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는 이해찬·한명숙 전 총리와 달리 ‘친노 아이콘’으로 자리 잡은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이들 창당파와 물밑 교감을 나누고 있을 것이란 관측이 설득력 있게 나돌면서 정 대표를 바짝 긴장시키고 있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친노 신당이 태동할 경우 10월 재보선과 내년 지방선거, 나아가 차기 대권지형에 적잖은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하한정국을 달구는 뜨거운 감자로 부상한 정 대표와 친노 신당파 간의 심상치 않은 이상기류 속으로 들어가 봤다.
정 대표에게 의원직 사퇴와 장외 전면 투쟁 카드는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는 그야말로 벼랑 끝 승부수나 다름없다. 정 대표는 지난 4·29 재보선 과정에서 민주당을 탈당한 뒤 고향 출마를 선언한 정동영 의원에 맞서 차기 총선 때 자신의 출신지인 호남 지역구에 불출마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호남 불출마’ 선언에 이어 ‘의원직 사퇴’라는 초강수를 둔 정 대표는 전국을 순회하면서 ‘언론악법 원천무효’ 장외 투쟁을 진두지휘한다는 방침이다. ‘미디어 전쟁’을 계기로 의원직에 연연하지 않고 큰 정치인으로 거듭나겠다는 정 대표의 대권 복심과 맞물린 행보로 풀이된다.
정치권 관계자들도 정 대표의 벼랑 끝 승부수 이면에는 ‘대망론’이 자리 잡고 있을 것이란 관측을 내놓고 있다. 대정부 장외 강경 투쟁으로 부족한 야성을 제고하는 동시에 여야 잠룡들에 비해 현저히 뒤처진 대중적 인지도 또한 최대한 끌어올리겠다는 포석이 담겨져 있을 것이란 얘기다. 본격적인 휴가철과 하한정국을 감안하면 장외 투쟁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고 의원직 사퇴 또한 ‘정치적 쇼’로 비춰질 수 있다는 일부 비판에도 불구하고 정 대표가 ‘올인’ 승부수를 띄운 배경이기도 하다.
민주당 주변에선 7월 28일 영등포 당사에서 가진 ‘언론악법 원천무효 투쟁대책위원회’ 출정식이 마치 정 대표의 대권 출정식을 보는 것 같았다는 말이 나돌고 있을 정도다.
이처럼 의원직을 버리고 가시밭길 대권레이스를 통해 야권 지도자로 거듭나려 했던 정 대표의 중장기 대권 구상은 뜻하지 않은 복병으로 또 다른 시련을 예고하고 있다. 민주당의 주주이자 진보개혁 진영을 대표하는 친노그룹 일각에서 신당 창당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친노 신당파가 추진하고 있는 친노 신당은 단순한 ‘소문’이나 ‘설’ 수준을 넘어 구체적인 공론화 단계로 접어들고 있는 형국이다.
친노 신당 실무 업무를 주도하고 있는 천호선 전 대변인은 7월 30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신당 창당과 관련해 진보개혁 진영은 물론 각계각층의 다양한 의견과 견해를 수렴하고 있다”며 “노무현 전 대통령이 추구해 온 정치개혁을 구현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창당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창당 일정을 묻는 질문에 천 전 대변인은 “미디어법 정국으로 여야가 첨예하게 맞서고 있는 만큼 이 기간 동안은 창당 문제를 공론화하지 말자는 게 내부 방침”이라며 “미디어법 논란이 한풀 꺾이고 하한 정국이 지나면 어떤 식으로든 신당 밑그림이 윤곽을 드러낼 것”이라고 답했다. 미디어법 논란으로 여야가 극한 대치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신당을 띄울 경우 자칫 ‘야권 분열을 초래했다’는 역풍에 직면할 수 있음을 우려해 신당 일정을 조율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정치권 관계자들도 친노그룹이 민주당 중심의 민주정부 10년 계승사업과는 별도로 ‘노무현 정신 계승’ 작업과 맞물린 독자적인 정치결사체를 구축할 것이란 관측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친노 신당파가 7월 26~27일 충북 보은에서 비공개 워크숍을 갖고 공동의 정치적 지향점을 실현하기 위한 신당 문제를 구체적으로 논의하는 등 신당 창당 작업을 본격화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관측과 그 맥을 같이하고 있다. 이날 워크숍에는 이병완 전 대통령비서실장을 비롯한 참여정부 청와대 일부 핵심 참모 및 정·관계 고위직을 지낸 인사들과 전국의 정치권 인사 200여 명이 참석했다. 김병준 전 정책실장은 ‘참여민주정치 개혁’을 주제로 특강을 하기도 했다. 이들 신당파는 민주당 중심의 대통합과 정치개혁은 현실적 장벽이 높은 만큼 신당 창당을 통해 ‘노무현 정신’을 계승해야 한다는 데 방점을 찍고 구체적인 창당 로드맵을 그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당파 일각에선 9월에 창당 발기인 대회를 갖고, 연말을 전후해 신당을 창당한다는 밑그림이 제시되고 있다.
일부 정세 분석가들은 친노 신당파가 연말쯤 신당을 창당한 뒤 내년 지방선거 때 민주당과 선거 연대를 통해 정치적 기반을 구축하고, 대선정국을 전후해 민주당과의 당 대 당 통합 등 방법으로 민주개혁 진영의 대통합을 이끌어 내려는 시나리오를 모색하고 있을 것이란 관측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신당파의 이러한 시나리오가 현실화되기는 결코 쉽지 않을 것이란 시각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친노그룹 좌장 격인 이해찬 전 총리를 비롯해 민주당에 몸을 담고 있는 한명숙 전 총리와 안희정 최고위원, 서갑원 의원 등 친노 핵심 인사들이 신당 창당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창당 동력을 끌어올리기 힘들 것이란 관측이다. 정 대표는 물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복심으로 통하는 박지원 의원을 비롯한 동교동계와 호남 지역 인사들이 신당 창당에 강한 거부감을 표출하고 있는 것도 부담이다.
여기에 신당을 추진하고 있는 인사들 대부분이 ‘원외’라는 현실적 한계를 안고 있는 데다 전국적인 조직망 구축과 막대한 창당 자금 조달도 난제로 남아 있다.
그렇다고 실현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정치는 생물’이란 말이 있듯이 신당에 반대하고 있는 친노 핵심 인사들이 기존 입장을 바꿔 신당에 동참할 가능성은 언제든 열려있는 상태고, 과거 유시민 전 장관이 주도한 개혁당처럼 저비용으로 신당을 창당하는 방법을 모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한 전 총리는 신당 창당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지만 유 전 장관은 신당 추진 움직임에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유 전 장관이 침묵하고 있는 것은 그가 신당 창당에 암묵적 동의 내지는 교감을 나누고 있기 때문이라는 관측도 없지 않다. 특히 과거 개혁당 출신 인사들과 유 전 장관의 팬클럽인 ‘시민광장’ 관계자들이 대거 신당파에 속해 있다는 점에서 유 전 장관이 신당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을 것이란 의혹도 끊이지 않고 있다.
유 전 장관이 신당에 참여할 경우 친노 신당은 급물살을 타게 될 것이고, 폭발력 있는 정치결사체로 진화될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유 전 장관이 대중적 인지도가 높을뿐더러 ‘포스트 노무현’ 경쟁에서 우월적 지위를 확보하고 있다는 평가 때문이다. 또 영남 출신인 유 전 장관이 신당 창당을 주도할 경우 친노그룹과 진보 진영은 물론 영남 개혁 세력까지 흡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친노 신당이 민주당과 야권은 물론 일부 여권 권력지형까지 뒤흔드는 핵뇌관으로 부상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정황에 미뤄 신당의 출현은 ‘올인’ 승부를 펼치고 있는 정 대표의 정치 행보에 상당한 악재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가뜩이나 대권 경쟁자인 정동영 의원을 정점으로 한 당 안팎의 비주류 세력의 견제가 만만치 않은 상황에서 친노그룹의 상당수마저 딴 살림을 차릴 경우 당내 입지가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벼랑 끝 승부수를 던진 정 대표와 신당 창당을 본격화하고 있는 친노 신당파의 엇갈린 정치행보가 야권 권력지형 및 차기 대권구도에 어떤 변수로 작용할지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