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수에 놀라고 외모에 더 놀랐다
지난 8월 5일 사이타마 현의 후지미 시의 한 주차장에서 40대 남성의 시신이 발견됐다. 신원을 확인한 결과 평범한 회사원인 오이데 요시유키(41)였으며 사인은 가스중독인 것으로 밝혀졌다. 사망하기 하루 전날 그는 자신의 블로그에 “오늘 밤 그녀와 함께 결혼 전 여행을 떠날 예정”이라며 행복에 겨운 듯한 글을 올렸다.
현재 그의 죽음에 의문을 품은 경찰이 가장 강력한 살해 용의자로 지목하고 있는 사람은 그와 함께 여행을 떠날 예정이었던 약혼녀 기지마 가나에다. 오이데의 시신을 부검한 결과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가 죽기 전 술과 함께 수면제를 복용했다는 사실, 그리고 수면제를 구입한 사람이 가나에였다는 사실이 그것이었다.
사정이 이렇자 그녀가 오이데에게 수면제를 먹인 후 연탄을 피워 자살로 위장하려 했다는 의혹이 짙어지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오이데의 죽음에 대해 “헤어지자는 나의 말을 듣고 자살한 것”이라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사건 발생 후 그녀가 자신의 블로그에 “서스펜스 드라마 같은 하루였다”라는 등의 글들을 올렸던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자 살해 의혹은 더욱 짙어지고 있다.
가나에는 현재 오이데의 죽음 등 총 여섯 명의 남성들의 의문사를 비롯, 각종 인터넷 사기범죄로 경찰조사를 받고 있다. 그녀는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남성들에게 자신을 ‘음악을 공부하는 학생’, ‘간호도우미’ 등으로 위장소개한 뒤 “학비가 모자라다”, “월세가 밀렸다”며 돈을 요구했다.
그녀는 “결혼하면 평생 헌신하는 것으로 은혜를 갚겠다”는 등의 달콤한 말로 유혹했고 남성들은 그녀에게 속아 수십만 엔을 송금하곤 했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대부분의 남성들은 얼마 안 가 그녀에게서 이별통보를 받았으며 어떤 경우에는 심지어 화재나 가스중독 등으로 급작스레 사망하고 말았다.
사실 이 사건이 일본열도에 화제를 몰고온 이유는 사건 자체보다는 다른 데 있었다. 바로 언론에서 공개한 그녀의 사진, 즉 그녀의 ‘못생긴 얼굴’ 때문이었다. 수십 명의 남성에게 결혼을 빙자로 1억 엔의 돈을 갈취한 여성의 용모치고는 너무 ‘뚱뚱하고 못생겼기’ 때문이었다. 그런 용모로 남자들에게서 어떻게 돈을 받아낼 수 있었는지 그녀의 놀라운 사기수법에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수사관계자는 압수한 그녀의 컴퓨터에서 이와 관련된 여러 건의 심증을 찾아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녀가 즐겨 찾던 ‘결혼사이트’에는 많은 회원들의 연령, 연 수입, 학력 등이 소개되어 있었으며, 그녀는 이곳에서 작업 대상을 물색하곤 했다. 그녀의 컴퓨터에는 사기와 사기미수 피해자 남성 6명 등 수십 명의 남성회원과 메일을 주고받았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이밖에도 그녀는 범행을 저지르는 데 필요한 정보를 인터넷을 통해 얻곤 했다. 가령 자살 사이트에서는 연탄으로 자살하는 방법 등에 대한 정보를 얻었고 4월, 7월, 8월 등 총 3회에 걸쳐 숯과 연탄 세트를 구입한 것도 인터넷을 통해서였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4월과 7월, 8월이 그녀와 알고 지내던 남성들이 연탄으로 의문사한 때와 일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당시 의문사했던 후쿠야마 마사오(사망 당시 70세)는 총 7400만 엔(약 9억 5000만 원)을 가나에에게 뜯긴 피해자였다. 이는 그녀가 남성들에게서 받아냈다고 추정되는 1억 엔(약 13억 원)의 4분의 3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재활용품 가게를 경영하며 검소하게 살았던 그로 하여금 9억 원이라는 거액의 돈을 선뜻 내놓게 만든 그녀의 힘(?)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그와 가나에가 만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5년 전이었다. 이성 만남을 주선하는 사이트의 회원이었던 후쿠야마는 어느 날 한 여성으로부터 “저는 음대를 졸업하고 야마하에서 일하고 있는 요시카와 사쿠라라고 합니다. 캠브리지 음대 유학을 지원해줄 분을 찾고 있습니다”라는 내용의 이메일을 받았다. 학력, 이름, 경력 모두 가나에가 지어낸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그는 어떤 의심도 하지 않고 점점 그녀의 거짓말에 빠져들었다. 심지어 그녀는 “어머니는 왕족 출신”, “왕세자께서 어머니가 아플 때 병문안을 와주었다”, “아버지는 세스나기(미국 세스나 항공기 회사의 경비행기)의 이상 착륙으로 사망” 등 점차 드라마틱한 이야기들을 꾸며대기 시작했다.
그녀가 사기꾼이란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후쿠야마는 생전에 그녀로부터 받은 이메일을 인쇄해 몇 번이고 다시 읽으며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다. 그와 가깝게 지내던 한 지인의 증언에 따르면 둘이 함께 호텔에서 머문 적도 있지만 성관계가 있었는지는 확실치 않다고 한다. 후쿠야마는 죽기 직전 그의 변호사에게 “그 아이에게 준 돈을 되돌려 받고 싶다”며 상담했다고 한다. 하지만 끝내 그 돈은 돌려받지 못했던 그는 3년 전 8월 31일 자택의 욕조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사망 당시 지바현 경찰서에서는 그의 금전문제가 사망과 밀접한 관련이 없다고 판단, 부검을 하지 않은 채 그를 화장했다.
이밖에도 놀라운 점은 1억 엔 이상의 돈을 받아냈음에도 불구하고 체포 당시 그녀의 재정상태가 거의 마이너스나 다름없었다는 데 있었다. 겉으로는 벤츠 E클래스를 몰고 다니는 등 화려한 인생을 사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월세(22만 엔(약 280만 원))도 내지 못하는 빈곤한 상태였던 것이다.
그녀가 그렇게 궁핍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녀의 블로그에 가끔씩 등장하는 40대 남성 S 때문이라고 수사관계자들은 추측하고 있다. 오이데의 사망 3일 뒤 그녀는 자신의 블로그에 후쿠시마현의 우라반다이에 여행을 다녀왔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수사 관계자는 여행지에서 묵었던 숙박업소 종업원의 “수년 전부터 같은 남성과 1년에 4~5회 정도 방문하고 있다”라는 증언을 토대로 그녀가 당시 한 남성과 여행을 떠났던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S의 신원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녀가 그와의 만남을 위해 막대한 돈을 썼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고등학교 졸업 문집에서 “따뜻한 가정을 꾸려 남편을 위해 헌신하는 멋진 주부가 되는 것이 꿈입니다”라고 말하던 18세의 기지마 가나에는 현재 ‘결혼’이라는 먹이로 외로운 남성들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들의 외로움을 이용해 이득을 취한 그녀의 죗값이 얼마나 무거울지는 판결이 내려진 후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김지혜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