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유명인과 찰칵’ 중독자였다
▲ 지난 11월 24일 백악관 만찬장에서 오바마 대통령과 악수를 나누고 있는 미카엘레 살라히. 살라히 부부는 만찬장에 초대받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 ||
지난 11월 24일 저녁 백악관 동문 입구.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 주최하는 국빈만찬에 초대받은 300명가량의 손님들이 하나둘 도착하기 시작했다. 미국을 국빈 방문한 만모한 싱 인도 총리 부부를 위한 자리이기도 했던 이날 만찬에는 미국의 내로라하는 VIP 인사들이 다수 초대되었으며, 양국 정상이 참석한 만큼 그 어느 때보다 삼엄한 경비가 이뤄지고 있었다.
이들 가운데에는 타레크(40)와 미카엘레(44) 살라히 부부도 있었다. 각각 연미복과 붉은색 인도 전통 의상을 입고 나타난 살라히 부부는 대통령 경호를 담당하는 비밀검찰국 직원들이 지키고 있는 동문 입구를 별다른 저지 없이 유유히 통과했다. 그렇게 백악관에 들어온 부부는 만찬장 입구를 지키고 서있는 해병대원들에게 본인들의 이름을 알려준 후 호명에 따라 차례로 입장했다.
사진기자들 앞에서는 간간이 포즈도 취했으며, 만찬장으로 통하는 복도에서는 다른 손님들과 인사를 나누면서 어울리기도 했다. 그리고 블루룸에서 내빈들을 영접하고 있는 오바마 대통령 앞에 도착한 부부는 마치 친한 사이인 양 반갑게 인사를 했으며, 손을 붙잡고 몇 마디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그리고 본격적인 만찬이 시작되기 직전까지 이들 부부만의 ‘파티’는 계속 이어졌다. 유명인사들을 붙잡고 기념사진을 촬영하는 데 바빴던 부부는 조 바이든 부통령과는 다정한 친구인 듯 가슴에 손을 얹거나 허리를 감싸기도 했으며, 이밖에도 람 이매뉴얼 백악관 비서실장, 애드리언 펜티 워싱턴 DC 시장, 케이티 쿠릭 CBS 앵커, 인드라 누이 펩시콜라 사장 등과 사진을 찍기도 했다.
이렇게 찍은 사진들은 모두 다음 날 미카엘레의 개인홈피인 ‘페이스북’에 올라왔다. 사진들 아래에는 “백악관에 초대 받아서 오바마 대통령 부부와 함께 만찬을 즐겼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하지만 여기에는 이상한 점이 있었다. 이들 부부가 테이블에 앉아 있는 모습의 사진은 단 한 장도 없었던 것이다. 당시 현장에 있던 사람들 가운데서도 살라히 부부가 식사를 하는 모습을 보았다는 사람들은 없었다. 다시 말해서 만찬장을 서성이긴 했지만 앉을 자리는 없었다는 이야기다. 또한 살라히 부부가 행사장을 빠져 나가는 모습을 보거나 언제 사라졌는지를 기억하는 사람도 없었다.
왜 그랬을까. 답은 하나. 살라히 부부에게는 백악관으로부터 받은 초청장이 없었다. 초대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지정석이 없었고, 때문에 행사가 시작되기 전에 서둘러 만찬장을 빠져 나갔던 것이다.
살라히 부부의 수상한 행적이 처음 언론을 통해 보도된 것은 <워싱턴포스트>를 통해서였다. ‘페이스북’의 사진을 본 한 기자가 이상한 점을 눈치 채고 부부의 신원을 조회했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 후 하나둘 밝혀진 부부의 행적에는 미심쩍은 부분이 많았다.
버지니아주에 거주하는 살라히 부부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와인 양조장을 운영하는 사업가인 한편, ‘아메리카 폴로컵’ 대회를 주최하는 아마추어 폴로 선수로 지역사회에서는 나름 유명인사로 통하고 있었다. 하지만 버지니아주에서 가장 오래된 곳이기도 한 이 양조장은 지난 2월 살라히 부모가 파산신청을 한 상태며, 현재 470만 달러(약 54억 원)에 매물로 나와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빚더미에 앉은 양조장을 처분하는 것에 반대한 타레크는 현재 부모를 상대로 양조장 소유권을 주장하면서 법정 소송을 진행 중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타레크가 주최하고 있는 폴로대회에도 수상한 구석이 있긴 마찬가지다. 버지니아 주정부의 후원으로 국제 폴로대회를 주최했다고 홍보했지만 주정부는 이런 사실을 부인했으며, 한 출장요리업체는 임금이 체불됐다며 타레크를 상대로 30만 달러(약 3억 4000만 원)의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이런 재정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들 부부는 눈에 띄게 화려한 생활을 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객 1800명을 초대해 할리우드 스타 버금가는 성대한 결혼식을 올렸는가 하면, 최근에는 70만 달러(약 8억 원) 상당의 2층 주택을 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현재 부부는 주택 할부금을 체납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부인인 미카엘레는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이 한때 ‘워싱턴 레드스킨스’ 팀의 치어리더로 활동했다고 주장하면서 동창회 모임에 참석한 단체 사진까지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것 역시 거짓말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치어리더 관리팀장인 멜라니 코번은 “그녀가 레드스킨스 치어리더로 활동했다는 어떠한 기록도 찾아볼 수 없다”며 이런 사실을 부인했는가 하면, 치어리더였던 코니 맥키 역시 “동창 모임에 그녀가 왔던 걸 기억한다. 하지만 그녀를 알아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말했다.
또한 미카엘레는 심심치 않게 자신이 전 미스 USA 출신이라고 말하고 다녔으며, ‘빅토리아 시크릿’의 모델로 활동한 적이 있다고 떠벌리고 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 그녀의 이런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는 아무 곳에서도 발견되지 않고 있다.
▲ 살라히 부부는 평소 수많은 유명인사들과 사진을 찍었다. 왼쪽부터 맷 데이맨, 찰스 왕세자, 조바이든 부통령, | ||
특히 이들은 자신들이 오바마 부부와도 여러 차례 만남을 가졌다고 주장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사실을 증명하듯 ‘페이스북’에는 종종 유명인들과 찍은 사진들이 올라오곤 했다. 가령 지난 1월에는 오바마의 취임식 축하파티가 열렸던 링컨기념관에서 오바마와 함께 사진을 찍었으며, 사진 아래에는 오바마를 가리켜 ‘친애하는 벗(Dear Friend)’이라고 적어놓기도 했다.
또한 폴로 사이트인 ‘폴로컨택트닷컴(PoloContacts.com)’에는 지난해 11월 오바마 당선인과 힙합 그룹 ‘블랙 아이드 피스’ 멤버들과 나란히 찍은 사진이 올라와 있다. 하지만 일부의 주장처럼 만일 이 사진이 지난해가 아닌 2005년 촬영된 것이라면 오바마는 당시 일리노이주 상원의원이었으며, 살라히 부부는 이미 5년 전부터 오바마와 인연을 맺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밖에도 살라히 부부는 폴로 시합에서 만난 찰스 왕세자와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으며, 존 매케인 상원의원, 영화배우 맷 데이먼, 제니퍼 가너 등 각계 유명인사들과 찍은 사진을 ‘페이스북’에 자랑스럽게 올려놓았다. 사진들만 봐서는 분명히 유명인사와 친분이 많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부부가 얼마나 이들과 가까운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현재 살라히 부부는 자신들을 백악관의 ‘불청객’으로 묘사하는 언론 보도에 대해서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자신들은 분명히 백악관으로부터 초대를 받았으며, 합법적으로 백악관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의 특별보좌관인 미셸 존스로부터 이메일을 통해 만찬 참석을 허락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1일 NBC 방송의 <투데이> 쇼에 출연한 부부는 한사코 결백을 주장했으며, 미카엘레는 “우리는 분명히 백악관으로부터 초대를 받았다. 백악관에 불법으로 침입하다니 도대체 누가 그렇게 무모하고 대담한 행동을 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으며, 타레크는 “마치 우리 부부가 파티를 망친 것처럼 묘사되고 있는 이 상황들이 몹시 견디기 힘들다. 언젠가 결백이 밝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백악관 측의 주장은 달랐다. 우선 존스는 자신이 살라히 부부에게 만찬에 참석해도 좋다는 말을 한 적이 없으며, 자신은 참석을 승인할 권한도 없다는 점을 부부에게 분명히 전했다고 말했다. 또한 로버트 깁스 백악관 대변인 역시 “그날 살라히 부부의 이름은 방문객 명단에 없었다”는 점을 확실히 했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들 부부는 도대체 어떻게 삼엄한 경비를 뚫고 태연하게 백악관에 들어갈 수 있었던 걸까. 이는 결국 대통령 경호와 백악관 보안에 심각한 허점이 있었다는 것을 뜻하는 것 아닐까.
이에 대통령의 경호를 담당하는 비밀검찰국은 즉각 자신들의 실수를 인정하고 조사에 착수하는 이례적인 모습을 보였다. 마크 설리번 국장은 “입구에서 만찬에 참석한 사람들이 실제 명단에 포함되어 있는지 확인하는 기본적인 절차를 준수하지 못했다”고 스스로 인정했다. 한 익명의 비밀검찰국 직원도 “살라히 부부의 이름이 컴퓨터 시스템에 등록되어 있지 않았다. 백악관에 출입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이름이 올라와 있어야 하는데 이는 분명히 비밀검찰국의 중대한 실수였다”라고 말했다.
20년 동안 백악관에서 의전을 담당했던 게리 월터스는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고 개탄하면서 “지금까지 백악관에서 이런 일은 딱 한 번 있었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취임식 때 해병대와 비슷한 트렌치코트를 입고 있던 관광객 한 명이 실수로 행렬에 휩쓸려 백악관에 들어온 적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 사건은 우연히 벌어진 것이었으며, 관광객은 경호원에 의해 즉시 바깥으로 안내되었다”고 말했다.
백악관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은 살라히 부부의 심정은 지금 어떨까. 명예훼손 운운하며 겉으로는 비통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어쩌면 속으로는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바라던 대로 결국은 전국구 유명인사로 급부상했으니 말이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