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타 등 유학 경험·강반석유자녀대학 거쳐 김일성대 특설반 졸업...학업성적·외국어·교우관계까지 완벽
그래픽=백소연 디자이너
아직 김설송은 단 한 번도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어느 누구도 북한에서 그의 존재와 역할에 대해 부정하진 않는다. 북한 정보를 다루는 각 기관의 전문가들은 물론 국가정보원 등 우리 정부 역시 실세로서 그를 주목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필자 역시 김설송을 오래 전부터 주목했고, 그에 대한 정보 수집을 꾀했다. 현재 그는 당중앙위원회, 당조직지도부, 국무위원회 등 북한 핵심조직에서 책임 직책을 맡고 있고 북한의 군과 당, 내각 등의 실질적인 의사결정자로서 상당한 힘을 휘두르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김설송은 1972년 12월 30일 김정일의 정처 김영숙 사이에서 태어난 김 씨 일가의 ‘적통’이다. 이 때문에 이미 오래 전부터 북한 권부 내에선 그를 다른 곁가지 자녀들과 다르게 인정하고 존중해 왔다. 무엇보다 이러한 핏줄에 더해 그의 영특하고도 영악한 능력으로 조부 김일성과 부친 김정일에게 늘 인정 받아왔다.
일각에서 한때 김정일이 김설송을 후계자로서 고민했다는 주장도 제기된 바 있는데, 이는 전혀 근거 없는 소문이 아니다. 여자로서 한계 탓에 결국 그는 동생의 후견인으로서 머물게 됐지만 김정일이 유언 집행자로서 그를 지목한 것은 절대 허투루 지나칠 일이 아닌 셈이다.
필자는 이러한 김설송의 과거에 대한 정보를 끈질기게 추적했고, 크로스 체킹을 통해 몇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선 김설송은 어린 시절부터 김일성의 초손으로서 모든 대우를 받고 성장했다. 고급 간부 자녀들을 위한 특수 유아시설을 다닌 김설송의 초등교육 과정은 별도의 가정교사를 두고 학업을 이수한 것으로 확인된다.
김설송은 초등교육 과정을 국내서 이수한 뒤 곧바로 해외로 나갔다. 그 첫 번째 정착지는 남유럽 지중해의 섬나라 몰타였다. 몰타는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북미국장 등 북한 고위급 자녀들이 영어를 배우기 위해 택하는 유학 장소 중 한 곳이다. 이 외에도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김정철은 물론 김정은과 김여정도 이곳에서 영어를 배웠다고 한다.
김설송은 몰타 등 유럽에서 6~7년 가량 중등교육 과정을 이수한 것으로 확인된다. 이 때문에 김설송은 현재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하고 프랑스어와 스페인어 등 유럽어군에 능통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일이 과거 러시아를 방문했던 시기, 현지 관계자가 동행한 여성(김설송 추정)을 두고 ‘외국어에 능통한 장신(북한 여성 기준으로)의 미녀’란 증언이 나온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또 한 가지 필자가 확인한 사실은 그의 귀국 후 교육 과정이다. 그가 김일성대를 졸업한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의 세밀한 고등교육 이수 과정은 알려지지 않았다.
김설송은 귀국 후 곧바로 김일성대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는 1992년 9월 우선 강반석유자녀대학 3학년에 편입했다. 강반석유자녀대학은 사망한 혁명가의 유자녀 중 기본적으로 당과 국가의 여성간부 후보생으로 양성하기 위한 전문 간부후보대학이다.
김설송은 대학 재학시절 철저하게 본인 신분을 숨기고 일반 유자녀로 학업을 이수했다. 당시 그녀의 가명은 김철희였다. 그는 이곳에서 이듬해 4월까지 약 8개월 간 당 건설 및 재정경제학 부문을 집중 이수한 것으로 확인된다.
김설송은 이 과정을 거친 후 1993년 9월 김일성종합대학 사회학부 정치경제학과에 입학한다. 그는 이곳에서 이듬해 2월까지 약 6개월간 특별 과정을 이수했다. 특기할 만한 것은 그가 복수전공으로 생물학을 택했다는 것이다.
아버지 김정일이 그를 대견해하는 것은 그의 학업 성적과 생활 태도 역시 적잖게 영향을 끼쳤다. 김설송은 실제 대학 이수 과정을 상당히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했다. 이 뿐만 아니라 그는 다른 대학생들과 똑같이 학생 기숙사 생활을 했다. 만경대학원과 강반석유자녀대학이 조선인민군 총정치국 산하라는 좋은 조건이라 해도 북한의 기숙사는 열악하다. 추운 겨울에도 온수가 공급이 잘 안 돼 찬물 손빨래를 해야 할 정도다. 그는 이러한 고충을 동기들과 함께 공유했을 뿐만 아니라 동기 부모들이 보내온 간식을 나누기도 하는 등 함께 잘 어울렸다.
당시 동기 학생들은 김설송의 실제 신분을 몰랐지만, 연이 닿은 동기들은 이후에도 관계를 이어가 당과 국가의 주요 직책에 발탁된 것으로 확인된다. 현재도 대학시절 그의 동기들은 가까운 인맥으로 남아 있다.
이윤걸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 대표(겸 세종연구소 객원연구위원)
정리=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