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가 무너지니 사랑이 증오로 변하네요
최근 한 야구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들이다. 올 시즌 스토브리그의 주인공은 단연 롯데 자이언츠이다. 그 중심에는 2015년 13승을 거두며 롯데 에이스로 부상했던 조쉬 린드블럼이 자리한다. 린드블럼이 롯데와 결별하고 두산으로 옮기면서 벌어진 폭로전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면서 막장 수준의 드라마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롯데와 린드블럼 사태와 외국인선수 스카우트 관련해서 내용을 살펴본다.
조쉬 린드블럼(30)은 롯데 팬들로부터 ‘린동원(린드블럼+최동원)’이란 애칭으로 불리며 남다른 사랑을 받았다. 2015년 계약 총액 47만 5000달러에 롯데와 인연을 맺은 린드블럼은 KBO리그 데뷔 첫 해에 32경기에 등판해 210이닝을 던지며 13승11패, 평균자책점 3.56을 기록했다. ‘린동원’의 애칭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2016 시즌에는 30경기 등판, 177.1이닝을 소화하며 10승13패, 평균자책점 5.28을 올렸다. 롯데와 재계약을 앞둔 린드블럼은 딸, 먼로의 건강 문제로 미국으로 떠난 이후 돌아오지 못했다. 태어나기 전부터 선천성 심장병을 앓고 있는 딸이 첫 번째 심장병 수술을 받았는데 2차, 3차 수술도 예정된 터라 미국을 떠날 수 없었던 것이다(먼로는 2, 3차 수술을 안 받고도 건강을 회복했다는 후문이다).
지난 5월 다저스스타디움에서 기자와 만났던 린드블럼.
2017 시즌 린드블럼은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었다. 메이저리그 스프링트레이닝 캠프 시범경기에서 좋은 성적(6경기 10.2이닝을 던져 3승 1패 평균자책 4.22를 기록)을 거뒀음에도 빅리그 로스터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고 트리플 A팀이 있는 인디애나 폴리스로 향했다가 시즌 개막 후 빅리그로 콜업됐었다.
지난 5월, 다저스스타디움에서 기자와 만났던 린드블럼은 개막 전 피츠버그가 아닌 인디애나폴리스로 내려간 상황이 자신에게 더 도움이 됐다는 얘기를 들려준 적이 있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난 오히려 기분이 좋았다. 내 가족이 살고 있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됐으니까. 가족들은 인디애나 주에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트리플 A팀에서의 생활이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야구적으론 좋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제일 편한 침대에서 잠을 자고 딸과 눈을 맞추고 대화할 수 있는 삶은 환상적이었다.”
린드블럼은 이후 빅리그로 콜업돼 피츠버그 소속 선수로 뛰면서도 딸의 건강 문제가 늘 마음에 걸렸다고 한다. 혹시나 하는 생각 때문이다.
린드블럼은 기자에게 롯데와 팬들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자신을 향해 ‘린동원’이라 불러주던 팬들의 응원이 그립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자신의 휴대폰에 한국 포털사이트 어플과 메신저가 그대로 남았다며 여전히 롯데 선수들과 문자를 주고받는다는 얘기도 전했다. 만약 자신에게 한국으로 돌아갈 기회가 주어진다면 막내딸의 건강이 좋아진다는 전제 하에 거부감 없이 그 기회를 받아들여서 한국 선수들과 더 좋은 추억을 쌓고 싶다는 얘기도 들려줬다.
그리고 지난 7월, 린드블럼은 롯데로 전격 복귀했다. 딸의 건강이 상당히 호전되면서 가족들을 미국에 두고 혼자 한국에서 야구를 이어가기로 결심한 것이다.
7월 롯데로 돌아온 린드블럼은 12경기에서 5승3패, 평균자책점 3.72를 기록하며 위력적인 모습을 선보였다. 특히 NC 다이노스와의 준플레이오프에서는 인상적인 공을 뿌리기도 했다.
그런데 린드블럼은 시즌 도중 복귀하면서 롯데 구단 측에 다소 이례적인 조건을 내걸었다. 시즌 종료 후 보류권을 풀어주는 조항이었다. 즉 FA가 돼 타 팀으로 자유롭게 이적할 수 있게 해달라는 내용이었는데 팀 상황이 급한 롯데 입장에선 린드블럼 측이 제시한 조건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린드블럼은 왜 이런 특별 조항을 내걸었던 것일까. KBO리그 A 팀의 B 스카우트(외국인 선수 전담)는 린드블럼이 롯데를 신뢰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린드블럼이 2시즌 동안 롯데에서 뛰며 구단과 주고받았던 약속들이 있었을 것이다. 린드블럼은 이 약속들 중 일부가 이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복귀 조건으로 보류권을 풀어달라고 했던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선 롯데가 선뜻 그 보류권을 풀어주겠다고 약속했을 리가 없다. 어느 외국인선수도 구단과 계약하면서 시즌 종료 후 보류권을 풀어달라고 요구하지 못한다. 그만큼 선수는 구단을 신뢰하지 못했고, 구단은 급한 마음에 FA 조항을 써준 것 같다.”
그러나 문제는 롯데가 약속과 달리 린드블럼을 보류권 명단에 포함시켰다는 사실이다. 11월 30일 KBO가 2017년 KBO리그 소속 선수 중 내년도 재계약 대상인 보류 선수 538명의 명단을 공시했는데 롯데 린드블럼이 명단에 포함된 것이다. 이를 알게 된 선수와 에이전트 측은 롯데에 강력히 항의했고, 결국 롯데는 린드블럼을 보류선수 명단에서 제외시켰고 린드블럼은 12월 1일 FA 선수로 풀렸다.
문제는 이후의 상황이다. 롯데는 계속해서 린드블럼과 재협상할 의지를 갖고 있다고 피력했다. 그러나 기자가 취재한 바에 의하면 롯데는 이미 11월 말 이전부터 린드블럼과는 협상을 하지 않았다. 이전 협상 과정에서 감정이 상한 린드블럼이 롯데와 재협상할 의지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는 “린드블럼은 시간이 조금 더 걸릴 것으로 보이지만 이야기는 잘돼 가고 있다(11월 30일 C 매체)”는 입장을 지속적으로 나타냈다.
결국 문제가 터졌다. 보다 못한 린드블럼이 11일, 자신의 SNS를 통해 “그동안 언론을 통해 나온 사실 중 진실된 내용은 거의 없다. 롯데 구단에 ‘FA 조항’을 요구한 것은 딸의 건강 문제나 돈 문제하고는 무관하다. 오랜 기간 동안 정직하지 못하고 전문적이지 못한 구단에 대응하기 위해서였다. 우리 가족은 구단의 처사를 견뎌야 했지만 더 이상 간과할 수 없게 됐다”며 “롯데 구단은 진정으로 협상의 의지를 보이지 않았고 계속해서 언론에 딸 먼로의 건강에 의구심을 제기하며 이 때문에 제가 롯데로 돌아오지 않을 수 있다는 핑계를 여러 번 암시했다”고 불만을 터트린 것이다.
더욱이 이 SNS가 공개된 지 얼마 안 돼 두산 베어스가 린드블럼과 총액 145만 달러에 계약을 맺었다고 발표하면서 린드블럼과 롯데 관계를 보는 팬들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린드블럼이 두산과 145만 달러에 계약한 사실이 알려진 후 팬들은 린드블럼에게 비난을 퍼부었다. 돈 때문에 딸 건강을 내세웠다며 관련 기사마다 악플을 쏟아냈고 오히려 롯데가 린드블럼과 계약하지 않은 걸 두고 칭찬 여론이 조성됐다.
다시 반전이 벌어졌다. 13일, SBS 뉴스에서 린드블럼과의 약속 위반 때문에 롯데 구단이 린드블럼에게 사과문을 보낸 사실이 보도된 것이다. 즉 롯데는 11월 24일 보류선수에서 제외되면 롯데와 재계약이 불가능하니 보류선수 명단 제출 마감 시한인 25일까지 재계약 여부를 결정하라고 린드블럼에게 재촉했는데 외국인 선수는 보류선수 명단에서 제외돼도 원소속팀과 재계약할 수 있다는 KBO의 일관된 규약 해석과는 상반된 주장을 펼친 것이다. 린드블럼의 에이전트 측에서 KBO에 이와 관련된 규약을 문의했고 롯데가 거짓 주장을 한 것으로 판명나자 롯데 측에 강력하게 항의하면서 롯데가 단장 명의로 사과문까지 보낸 것이다. 그리고 계약 내용과 달리 린드블럼을 보류권에서 제외시키지 않고 포함시킨 것이다.
사면초가에 빠진 롯데는 선수와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다고 얘기했지만 그동안 린드블럼에게 등을 돌렸던 팬들은 구단의 이중적인 태도에 강도 높은 비난을 퍼부었다. 다시 A 팀의 B 스카우트의 얘기다.
“린드블럼은 KBO리그에서도 훌륭한 인성을 갖고 있는 선수로 알려졌다. 그런 선수가 SNS를 통개 구단의 처사를 비난했다는 건 정말 의외의 일이었다. 롯데가 여론 의식해서 무리한 행보를 보이다 선수가 폭로하는 바람에 민망한 입장이 되고 말았다. 외국 선수들은 가족의 건강 문제를 야구보다 더 중요시한다. 더욱이 어린 딸이 선천성 심장병을 앓고 있는 린드블럼의 경우라면 딸의 건강 문제를 재계약 여부에 포함시켜 여러 차례 언급했던 롯데 측에 섭섭한 마음을 뛰어 넘어 분노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나도 구단에 속한 스카우트이지만 외국인 선수의 경우엔 특히 신뢰가 중요하다. 그게 무너지면 선수들은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난다.”
한편 롯데는 최근 새 외국인 투수로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한 시즌 11승을 달성한 펠릭스 듀브론트와 총액 100만 달러에 계약을 맺었다고 발표했다. 흥미로운 건 듀브론트와 린드블럼의 에이전트사가 같은 회사라는 사실. 돈이 오가는 비즈니스 세계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