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스 DNA 되살린다” 어제의 용사들 이글이글
한화 이글스의 코칭스태프 구성은 이글스 출신들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한용덕 감독도 감독직을 수락하기 전 박종훈 단장에게 그 부분을 요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즉 이글스 출신 감독, 코치들로 구성된 선수단을 통해 예전 ‘이글스 정신’의 영광을 재현하겠다는 게 한화가 그리는 빅픽처이다. 그렇다면 한화의 바람대로 그 그림들이 현실로 이뤄질 수 있을까. 그 속내를 살펴본다.
한용덕 신임 감독은 2012년 8월 한대화 감독이 중도 퇴진하면서 감독대행으로 한화 이글스를 이끈 적이 있었다. 감독대행 시절의 한용덕은 남은 28경기에서 14승 1무 13패라는 준수한 성적으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선수단 내의 평가도 좋아 차기 감독 영순위에 올랐고, 대부분의 야구인들은 한 감독이 대행이란 꼬리표를 떼고 한화의 사령탑에 오를 것이라고 믿었다.
선수단 상견례 중인 한용덕 감독. 사진 제공=한화 이글스
그러나 한화 모기업에서는 2009년 이후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한 팀을 쇄신하기 위해 육성보다는 성적을 내는 데 집중했고, 급기야 삼성 사장직에서 물러난 김응용 감독을 영입하기에 이르렀다. 김 감독의 선임과 함께 한용덕 당시 감독대행은 사의를 표명했는데 흥미로운 건 한화에서 한용덕을 놓아주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한화 구단은 한용덕에게 때마침 LA 다저스에 입단한 류현진을 떠올리며 다저스 코치 연수를 제안했고 선수단에 남을 수 없었던 한용덕은 그 제안을 받아들이고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다음은 한용덕 감독이 기자와의 인터뷰 당시 전했던 내용이다.
“김응용 감독님이 신임 감독으로 오셨는데 감독님이 구상하는 코칭스태프에 내가 없다는 걸 알고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고민이 컸었다. 그때 구단에서 다저스로 코치 연수를 떠나라고 제안해줬는데 오십을 앞둔 나이에 외국 팀으로 연수를 간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선수 생활 은퇴하고 어린 나이에 코치 연수를 떠났다면 마이너리그를 돌면서 배운다는 마음가짐으로 생활했을 텐데 그렇지 않다 보니 미국 생활이 너무 고달팠다. 더욱이 미국에 있는 동안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임종도 못보고 장례를 치르는 상황이 심적 괴로움을 안겨줬다. 그러면서도 코치 연수를 마무리했던 건 한화와의 질긴 인연 때문이었다.”
2014년 한화는 한용덕을 당시 노재덕 단장 특별보좌역에 임명한다. 메이저리그에서나 볼 수 있는 단장 특별보좌역이 한용덕 감독을 위해 만들어진 셈이다. 그만큼 노 전 단장은 한용덕을 놓지 않으려 했다. 이건 행여 김응용 감독이 낙마라도 하게 된다면 차기 감독으로 한용덕을 밀어붙이겠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2014년 시즌 후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김응용 감독이 물러나면서 한용덕은 또 다시 유력한 차기 감독 후보에 오른다. 구단에서도 한용덕을 적극 밀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모기업에서 김성근을 차기 사령탑에 앉혔고 김성근 감독 부임과 함께 한화 출신의 코치들은 대부분 사표를 쓰고 팀을 떠나야만 했다. ‘김성근 사단’으로 불리는 코치들이 대기 중인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이때 한용덕 단장 특별보좌역도 구단에 사의를 표명했다. 노재덕 전 단장은 한 특보의 사의를 강하게 만류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더 이상 한화에 남는 건 선수단에 민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한 감독은 ‘백수’ 생활을 자처했다. 이후 그의 지도력을 유심히 지켜봤던 두산 베어스가 한용덕에게 러브콜을 보냈고 한용덕은 고심 끝에 두산의 투수 코치를 맡게 된다. 한 감독이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백수’로 사나 싶었는데 고맙게도 두산에서 가장 먼저 연락을 해왔다. 김태형 감독이 투수력 보강을 위해 나와 함께 일하고 싶다는 얘기를 전했다.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물론 정들었던 대전을 떠나는 게 쉽진 않았지만 새로운 도시에서 또 다른 야구 인생을 펼쳐가고 싶었다. 다행인 건 한화와 두산의 팀 문화가 비슷했다. 그래서 더 빨리 적응했는지도 모른다.”
이후 두산 수석코치로 김태형 감독과 함께 한국시리즈 우승을 일궜던 한 감독은 2017 시즌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한화의 차기 감독에 올랐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두산 베어스의 한국시리즈 일정 때문에 한화에서 발표를 미룬다는 소문도 보태졌는데 어느 정도는 맞는 내용이었다. 한국시리즈가 끝난 다음 날,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던 한화에선 11대 감독으로 한용덕 감독을 선임했다고 발표했고, 한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이글스 맨’들의 귀환을 구단에 요청했다는 얘기를 들려줬다. 한 감독은 “한때 한솥밥을 먹으며 동고동락했던 후배들이 이글스가 아닌 다른 유니폼을 입고 있거나 마이크를 잡고 있는 모습을 보며 묘한 기분에 사로잡힐 때가 많았다”면서 “서로 처한 상황은 달라도 ‘야구’라는 공통분모로 살고 있기 때문에 언젠가는 다시 만나서 같은 목표를 보고 야구를 하고 싶었다”는 얘기를 들려줬다.
10연속 시즌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 한화 이글스. 화려한 선수 구성에 비해 팀플레이가 이뤄지지 않아 ‘모래알 조직’이란 비난이 많았다. 한용덕 감독은 “외부에서 본 한화는 가능성 많은 선수들로 선 굵은 야구를 하지 못했다”면서 “그런 선수들을 보며 짠한 마음이 들었다”고 얘기했다. 덧붙여 장종훈 수석코치, 송진우 투수코치의 선임 배경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멘탈 트레이닝을 진행 중인 송진우 투수코치. 사진 제공=한화 이글스
“장종훈 코치와는 오래전부터 내가 감독이 되면 장종훈이 수석코치, 장종훈이 감독 되면 내가 수석코치를 맡기로 약속했었다. 내가 먼저 감독이 됐으니 그 약속을 지킨 것뿐이다. 우린 연습생(육성선수) 출신이란 공통점도 있다(연습생 출신으로 장종훈은 최고의 홈런왕이, 한용덕은 통산 120승을 올렸다). 송진우 코치와는 서로 스타일이 달랐지만 그야말로 레전드 중의 레전드 아닌가. 통산 210승 103세이브를 달성한 레전드의 경기 운용법을 한화 투수들이 배우길 바라는 마음에 구단에 적극 추천했다.”
롯데 2군 선수들을 지도했던 장종훈 코치와 KBSN스포츠 해설위원을 맡았던 송진우 코치는 한용덕 감독의 부름에 주저 없이 친정으로 돌아왔다. 사령탑이 한용덕이었고, 다른 팀도 아닌 친정팀이었기 때문에 별다른 고민의 흔적도 없었다.
헤쳐 모인 레전드들의 귀환은 마음 다친 한화 팬들에게 분명 귀가 번쩍 뜨이는 반가운 뉴스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기억을 되살리면 이들도 한화의 암흑기를 함께 보낸 코치들이었다는 사실이다. 즉 2008년부터 10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 시기에 모두 한화에서 코치로 활약하다 팀을 떠난 지도자들이었다는 것. 지금은 한용덕 감독을 중심으로 레전드들의 귀환이 이뤄진 것으로 보이지만 지도자로선 한화에서 실패를 경험했다는 사실이 이들에게 다소 부담을 안겨줄 수도 있을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야구 해설위원은 한용덕 감독에게 이런 시선을 제시했다.
“일단 한화의 감독 선임과 코칭스태프 구성은 가장 이상적인 모양새다. 문제는 52세의 나이에 처음으로 감독에 오른 한용덕 감독이 얼마나 유연한 리더십을 발휘하느냐 하는 것이다. 투수코치, 수석코치로 선수들을 이끄는 것과 감독이 돼 선수단을 운영하는 건 천양지차이다. 더욱이 한용덕 감독을 비롯해 장종훈, 송진우 코치는 한화에서 코치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진 못했다. 타격과 투수에선 최고의 선수였지만 지도자로 선수 시절 못지않은 능력을 발휘할지는 미지수이다. 박종훈 단장은 이미 외부 FA 영입 없이 팀을 재건하겠다고 밝힌 상태이다. 선수단은 변화가 없는 가운데 코칭스태프만 거의 새로운 얼굴들인 셈인데 이럴 경우 모든 부담은 감독과 코치들이 안고 가야 한다. 가장 중요한 건 한용덕 감독이 내년 시즌 어떤 색깔의 야구를 보여주고자 하느냐는 것이다. 외유내강형 지도자로 알려진 한 감독으로선 당장 내년 시즌부터 성적을 내기 어려운 환경이지만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는 한화 이글스를 팬들이 인내심을 갖고 지켜봐줄지도 의문이다.”
한용덕 감독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구단은 육성에 중점을 두겠다고 하지만 팬들을 위해선 성적에도 신경 써야 한다. 육성과 성적,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도록 모든 방안을 강구해볼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재 한화 이글스는 한용덕 감독의 지도 아래 일본 미야자키에서 마무리 훈련을 진행 중이다. 훈련의 양보다는 훈련의 질을 내세웠고, 10분 정도 주어진 점심시간도 50분으로 늘어났다. 야간 훈련을 없애고 선수들에게 자율과 휴식을 부여하는 것은 물론 기술 훈련 외에도 비디오 영상 분석과 선수들 면담, 멘탈 트레이닝 등 정신력 강화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후문이다. ‘리셋’을 외치는 한화의 변화가 어떤 방향으로 나타날지 궁금할 따름이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장외에서 시야 넓힌 해설위원들 “나 현장으로 돌아갈래~” 감독이 바뀌면 자동으로 코칭스태프도 변화를 이룬다. 한용덕 감독이 두산을 떠나 한화 사령탑을 맡으면서 강인권, 전형도 코치를 데려갔고, 두산은 이후 코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새로운 코치를 영입해야만 했다. 최근 두산은 KBSN스포츠에서 해설위원으로 활약했던 조성환을 신임 코치로 영입했다고 발표했다. 앞서 역시 해설위원으로 현장을 떠났던 이병규도 친정팀 LG로 돌아갔고, 넥센에서 나온 후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을 맡았던 손혁은 SK 투수코치가 돼 다시 현장으로 복귀했다. 송진우도 해설위원에서 현장으로 돌아간 케이스. 위의 사례를 살펴보면 더 이상 해설위원이란 경력은 외도가 아닌 현장으로 돌아가기 위한 과정이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해준다. 외도, 부업이 아닌 본업을 이어가면서 야구의 시야를 넓히는 경험을 쌓게 하는 것이다. 이전까지만 해도 해설을 하게 되면 오히려 현장으로 돌아가기 어렵다는 인식이 팽배했었다. 그러나 최근 구단들은 현장에서 해설위원 신분으로 자주 만나는 야구 선수 출신들이 전하는 해설 내용에 귀를 기울이게 됐고, 그들이 해설을 통해 전하는 야구관을 통해 해설위원의 자질을 미리 체크할 수 있는 기회로 삼고 있다. 해설위원은 대부분 뛰어난 실력을 자랑한 선수 출신들이 맡는다. 야구 경험과 이해도가 뛰어난 그들은 중계석이나 방송 스튜디오를 통해 야구를 접하며 선수 때는 볼 수 없었던 야구 시야를 확보하게 된다. 은퇴 후 곧장 코치 생활을 시작한 이들보다 오히려 야구 깊이가 깊어지는 장점도 있다. 각 팀과 선수들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데 다양성이 생기다 보니 구단 입장에선 이들이 갖고 있는 야구 지식에 끌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선수들과 소통하는 데 있어서도 해설위원 출신의 코치들이 적임자란 평가이다. 그동안 해설을 하기 위해 현장을 방문할 때마다 선수들과 끊임없이 접촉하며 스킨십을 나눴던 부분이 한 팀의 코치로 돌아갔을 때 선수와 코치의 거리감을 좁혀준다는 것. 해설위원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던 두산 조성환 코치는 기자의 축하 인사에 “어휴 부담 백배이다”면서 “잘 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좋은 기회를 잘 살려내 두산에 도움이 되는 역할을 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