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의원-공무원 구조적 갑을관계…견제 장치 없어 성추행 등 피해에도 냉가슴
공무원노조 김해시지부는 12월 8일 시청사 외벽에 “시의원님! 반말 그만하세요”라고 쓴 대형 현수막을 게시했다. 연합뉴스
최근 김해시의회 횡포가 도마 위에 올랐다. 전국공무원노조(이하 전공노) 김해시지부에 따르면, 시의원들은 “뭐라고 했어” “아니잖아” 등 처음부터 끝까지 초지일관 반말을 하거나 반말을 이어가다가 말미에만 “~요”라고 높이는 식으로 ‘갑질’을 일삼았다. 이러한 행태는 시의회 공식 회의석상이나 유선 상으로도 행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시의원들의 일상적인 하대에 공무원노조 김해시지부는 12월 8일 시청사 외벽에 “시의원님! 반말 그만 하세요”라고 쓴 대형 현수막을 게시하며 반발했다.
누리꾼들도 김해시의원들의 갑질을 성토했다. 누리꾼들은 “김해시의원들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알겠다” “공무원은 국민이 주인이다. 너희가 상전이냐. 요즘 정치인들은 썩었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논란이 커지자 배병돌 김해시의회 의장은 12월 15일 공무원노조 김해시지부장에게 반말 갑질 논란에 대해 사과했다. 또 최근 김해시지부장에게 현수막 철거를 요구하며 “세월호 배지를 여태 달고 있느냐”며 말해 논란을 빚은 A 시의원도 “실수로 한 말이다. 미안하다”고 사과의 뜻을 전했다.
배 의장은 이날 노조와 면담 후 의원 총회를 열어 빠른 시간 내 시의회 차원에서 공식 사과하고 자정결의문을 내기로 했다. 노조는 의원 총회 결과를 전해 듣고 이날 오후 5시께 현수막을 철거했다.
김해시지부장은 “세월호 배지 발언에 대한 시의원 사과는 부족하지만 수용하기로 했다”며 “시의원들의 반말 등은 시의장의 후속 조치를 지켜보겠다”고 전했다.
기초의원들의 갑질은 이뿐만이 아니다. 충북 음성군의회에서도 한 의원이 군청 고위 공무원에게 욕설과 막말을 한 것이 알려져 논란이 됐다. 12월 13일 음성군 공무원노조에 따르면 B 의원은 지난 5일 오전 군의회사무과 사무실 앞에서 군청 국장에게 “이따위로 군정을 끌고 가느냐” “조막만 한 게 두고 보자 이 XX” 등의 폭언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자리에 있었던 관계자들은 B 의원이 군의회 개회를 앞두고 의례적으로 악수를 하다가 국장과 마주하자 이와 같은 폭언을 한 뒤 의원사무실로 들어가 버렸다고 전했다.
이 같은 일이 공무원노조에 제보되자 B 의원은 12월 12일 뒤늦게 공무원노조 제천시지부장과 함께 국장실을 찾아가 이번 일을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B 의원은 “국장이 용산산업단지 조성 사업이 지지부진하게 추진되는 게 나 때문이라는 말을 했다는 소문을 확인하는 과정 등에서 반말을 하게 됐다. 욕이나 삿대질은 하지 않았다. 찾아가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고 밝혔다.
또한 제천지부 관계자는 “기초의원들 갑질은 항상 있다. 우리 지부는 지속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고 있지만, 노조가 역할을 제대로 안하는 지부에선 갑질 행태가 상당히 많을 것이다. 노출 안되는 건도 여럿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알려지지 않은 횡포 사례도 부지기수다. 한 전직 공익근무요원은 “2007년 한 도의원이 학교 행정실장 인사를 좌지우지하려고 했다. 그 도의원이 매일 교감 선생님한테 전화하고 교장한테 막말하고 갑질을 일삼아 선생님들 사이에서 유명했다”고 전했다.
또 다른 공무원노조 관계자는 “시의원하고 공무원하고 폭력 사태도 있었고 한 구의원은 1인 시위 하는데 찾아가 피켓을 식칼로 찢은 사건도 있었다”고 했다.
일요신문DB
심지어 여성 공무원을 상대로 한 기초의원들의 성희롱 사례도 빈번하다. 한 현직 공무원은 “한 기초의원이 술자리에서 젊은 여자 공무원들 앉혀놓고 만 원짜리로 잔을 감싸서 주며 ‘이 따 차비해’라고 말하는 경우도 봤다. 또 허벅지를 툭툭 치면서 ‘운동하냐’고 말하는 경우도 있었다. 30~40대 공무원들 커뮤니티가 작기 때문에 문제를 제기해봤자 묵살된다. 또 지역 커뮤니티에서 계속 봐야 하기 때문에 문제 제기를 망설이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한 취재 기자는 “시의원과 독대하는 자리에서 여자 공무원에게 ‘커피를 타오라’고 시켰다. 그 여자 공무원이 짧은 치마를 입고 있었는데 ‘다리가 예쁘다’는 등 몸매 평가를 해 굉장히 놀랐다. 여자 공무원이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나가는 모습에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구나’ 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기초의원들의 갑질의 이유에 대해 앞서의 제천지부 관계자는 “기초의원들이 시민의 대표다 보니까 우월적 지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기초의원들은 예산권, 감사권, 조례제정권 등을 갖고 있다. 지역에서는 막강한 권한이다”라고 진단했다. 이어 “기초의원과 공무원들은 구조적으로 ‘갑을 관계’에 놓이게 된다”면서 “이를 견제하거나 통제할 장치가 없다보니 이런 문제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앞서의 공무원은 “기초의원들 대부분은 토호들이다. 사실 정치적인 소양을 떠나서 기본적으로 품성이 안 돼 있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 따라서 ‘완장 찼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또 기초의회는 국회만큼 감시의 눈이 많지 않기 때문에 대장놀이하려는 사람이 대부분이다”라고 비판했다.
공무원노조 대변인실 관계자는 “공무원-구청장-의회의 삼각 구도에서 서로 견제할 땐 하고 화합할 땐 화합해야 하는데 의회가 예산권을 갖고 있으니 겉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감사의 경우, 의회에서 핵심적인 것만 추려서 자료 요구를 해야 하는데 ‘골탕 먹이기 식’으로 말도 안 되는 과도한 양의 감사 자료를 요구하면 공무원은 실무자 입장에서 거부할 수가 없다“라며 ”그래서 을의 관계가 되는 것이다. 여야가 당리당락에 따라 움직이는 것도 한몫 거든다”라고 꼬집었다.
마지막으로 이 관계자는 “지방자치가 된 지 20년이 다 되어간다. 지역 유지들이 기초의원의 대다수였다. 지금은 선거 제도가 바뀌긴 했지만, 한참 모자란다고 본다. 실력 있는 사람이 기초의원에 당선돼 지방자치가 새롭게 만들어져야 한다. 그리고 기초의원 개인들도 스스로 반성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김경민 기자 mercur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