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최고 공업 전문가…‘김일성 충신’ 아버지 정준택 후광 업고 대를 이어 ‘수령 옹위’
김원홍에 이어 국가보위상 자리에 오른 것으로 알려진 정경택 보위상.
지난 10월, 국가정보원 산하기관인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은 ‘북한 노동당 7기 2차 전원회의’를 통해 중앙군사위원회 위원, 정치국 후보위원에 오른 정경택이 새로운 국가보위상으로 임명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지난 11월엔 일본 유력지 <아사히신문>이 그가 새로운 보위상으로 임명됐다고 보도했다.
복수의 북한 내부 관계자를 통해 크로스 체킹한 결과 정경택은 이미 지난 1월, 김원홍의 후임으로 보위상에 임명됐음을 확인했다.
정경택은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그렇기에 외부에선 그의 임명을 두고 뜻밖이란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북한 내부 관계자들은 정경택의 보위상 임명을 두고 ‘능히 가능한 인사’라 입을 모은다. 무엇보다 그의 부친인 정준택 전 내각 부총리의 후광이 크다는 분석이다.
정경택 보위상의 집안은 북한 김일성 가문과 아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일단 그의 후광이라 할 수 있는 아버지 정준택 전 부총리는 예사 인물이 아니다. 1911년 함경도 경성군 주을읍 출신인 정준택은 북한에선 매우 불리한 지주 가문 자제로 태어났다. 그가 그 시절 일종의 전문학교 격인 경성고등공업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던 것도 집안의 경제력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일제시대 당시 정준택은 전공을 살려 화학공장의 전문기사로, 광산의 경영일군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공업 분야 전문가로서 그는 북한 정부 수립 이후 내각 10국(산업국) 국장으로 발탁됐고, 6·25전쟁 시에는 군사위원회와 원자력 연구 분야에도 참여했다. 다만 그는 지주 출신에 일제시대 전문기사 및 경영일군 경력에 발목이 잡혀 한직으로 떠도는 등 한동안 부침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정준택은 지주 출신이라는 큰 오점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자신의 실력으로 위기를 극복하며 중앙무대에 등용된다. 무엇보다 그의 실력을 믿은 김일성 주석이 그를 손수 챙겼다. 한직으로 내려간 그를 다시 중앙무대로 복귀시킨 것도 김일성의 직접적인 지시에서 비롯됐다.
정준택은 공업과 계획경제 전문가로서 승승장구 끝에 내각 부총리 겸 국가계획위원장에까지 오르게 된다. 1973년 그가 사망하자 김일성은 그간 그의 노고를 치하하며 기존 원산경제대학을 현 정준택경제대학으로 명명하기에 이른다.
정경택 보위상의 부친인 고 정준택 전 내각 부총리
정준택이 사망하고 1980년대 말 식량난의 전조였던 경제악화일로를 걷던 시절, 김일성은 “지난 날 정준택 같은 충신이 한 명이라도 살아있다면 지금 편한 잠을 잘 것”이라며 아들 김정일의 국정운영을 은근슬쩍 비하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김일성이 정준택을 얼마나 높게 평가했는지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때문에 북한 내부에선 ‘김일성의 충신’으로 통했던 정준택의 아들 정경택이 대를 이어 ’김정은의 ‘충신’으로 거듭났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른바 대를 이은 ‘수령 옹위’에 나선 셈이다.
물론 아버지 정준택이 성분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최고의 자리에 오른 것도 대단한 일이지만, 그 좋은 기회를 잘 살린 정경택 역시 북한에서 높게 평가받는 분위기다.
정경택은 현재 50대 후반의 비교적 젊은 나이로 자강도 출생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경택은 김책공군대학을 졸업한 엘리트 공군 출신이다. 북한에서 공군은 군부 내에서도 비교적 높은 대우를 받는다. 주류가 육군이라지만, 공군 역시 그 숫자가 적을 뿐 상당한 요직을 점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케이스가 바로 과거 조명록 전 총정치국장(계급 차수)이다.
정경택은 바로 그 조명록 차수에 의해 전격 발탁된 케이스다. 정준택은 과거 일명 ‘황주비행장’이라 불리는 공군사령부 3사 정치위원을 역임했다. 공군 핵심부대 정치위원은 어느 중앙무대 간부들과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은 자리다. 게다가 황주비행장은 북한 최신식 핵심 기종 미그 29기가 운영되는 최고의 비행부대다.
이러한 배경 탓에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해당 부대를 자주 오갔고, 이때마다 동행한 조명록 차수가 정경택을 직접 추천했다고 한다. 이후 정경택은 줄곧 중앙 무대의 북한 지도부 인사와 매우 밀접한 인연을 맺으며 아버지에 이어 자신만의 이력을 써내려가고 있었다.
이후 그는 총정치국 기관당위원회 책임비서를 거쳐 2016년 7월 국가안전보위성 정치국 조직담당부국장을 역임했다. 이는 과거 박영식 인민무력상이 총정치국 조직부국장을 거쳐 승진한 것과 비슷한 케이스다. 즉 당 정치간부가 행정 책임간부로 등용되는 사례다. 이는 이전에는 없었던 김정은 시대의 인사 트렌드로 보인다.
또한 그를 아는 북한 내부 관계자들은 그의 일처리 실력 역시 아버지를 쏙 빼닮았다고 입을 모은다. 꼼꼼하면서도 원리원칙을 중시하는 업무 스타일 덕에 김정은 역시 그를 중용했을 것이란 반응이다.
이윤걸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 대표
정리=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