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교 연기된 모산중...교육청과 아산시의 떠넘기기 행정에 피해는 학생들 몫...교내 갈등 양상까지
배방초등학교 전경.
충남 아산시에 위치한 배방초등학교에 다니는 A 양. A양은 최근 6학년이라는 이유로 저학년 학부모와 마주치면 죄인이 된 기분입니다. 내년 모산중학교로 배치받으면 배방초 아이들을 괴롭힐지도 모른다는 눈초리를 받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무슨 일일까요?
충남 아산교육지청은 아산시 배방읍 일대 학생 수가 늘어남에 따라 2015년 5월 모산중학교를 신설하기로 확정했습니다. 2018년 3월 개교 예정이던 모산중은 공사지연으로 개학을 같은 해 8월로 늦췄습니다. 일대 중학교가 포화상태이다 보니 모산중은 신입생을 받아 2018년 1학기 동안 배방초 교실을 빌려 쓰기로 결정 내렸습니다.
모산중 임시배치에 반대하는 플래카드. 지금은 떼어진 상태다.
배방초 학부모는 반발했습니다. 중학생과 초등학생을 한 장소에 두면 초등학생이 학교폭력의 대상이 되기 마련이라는 겁니다. 대책위원회까지 만들어 반대 입장을 내세웠습니다. 교육지청을 찾아가 집회를 열기도 하고, 플래카드를 만들어 학교 주변에 걸기도 했습니다. 학생들을 상대로 모산중 학생이 오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설문조사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학교 내 학부모 간에 갈등이 빚어지기도 했습니다. 설문조사 시 6학년 학생들이 배제되는 등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되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6학년 자녀를 둔 강 아무개 씨는 “저학년 학부모 입장도 이해는 되지만 학교 앞에서 시위를 하는 건 아이들한테 좋지 않은 것 같다”며 “우리 아이도 6학년을 잠재적 범죄자처럼 묘사하는 플래카드를 보고 상처를 입는 것 같아 속상하다”고 안타까워했습니다.
저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는 걱정이 큽니다. 1학년 자녀를 둔 이 아무개 씨는 “학교에서 모산중 학생이랑 우리 애들이랑 분리해서 만날 일 없게 한다고는 하지만 아무래도 불안하다”라며 “싸움이 나기라도 하면 초등학생이 어떻게 중학생을 감당하겠느냐”라고 토로했습니다.
정글짐에서 뛰어놀고 있는 초등생들.
실제로 배방초 학생들은 모산중 학생과 함께 지내는 것을 불안해했습니다. 학교 정글짐에서 놀고 있던 1, 2학년 학생 15명 가량에게 “모산중 학생이 들어와서 같이 지내면 어떨까 같냐”고 물었습니다. 학생들은 손으로 X자를 그리면서 “싫다” 혹은 “무섭다”고 말했습니다. 그중 한 명이 “괜찮다”고 말했는데, 이유가 자신의 “오빠가 6학년이기 때문”이었습니다.
3학년인 B 군은 “축구를 할 때 공을 맞히기라도 하면 혼날 것 같다”며 “돈을 뜯길지도 모른다”라고 말했습니다. 5학년 C 양은 “일단 중학생이라는 벽이 높아 보여서 무섭다”라며 “왠지는 모르지만 우리 반에서 딱 1명만 좋다고 한다”고 털어놨습니다.
모산중 주변엔 배방초 외에도 배방중, 모산초도 있습니다. 모산중 학생을 임시로 배방중에 보냈으면 어땠을까요? 아산교육지청은 “남는 교실이 배방초에 있었기 때문에 모산중 임시학교로 정했다”라며 “모산중 학생은 배방초 내의 별도 건물을 통째로 사용하게 하고, 밥을 먹는 장소도 분리하고, 운동장 사용을 제한하기 때문에 중학생과 초등학생이 마주칠 일이 없다”는 입장이었습니다.
배방초 학생과 학부모, 모산중 학생과 학부모 모두 똑같이 한 말이 있었습니다. “애초에 모산중이 제때 개교를 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모산중 공사지연은 왜 일어난 걸까요?
모산중학교로 이어지는 진입로.
아산교육지청은 아산시에서 학교 진입로 확보를 제때 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아산교육지청 관계자는 “2015년 8월 아산시에 학교 진입로 확보를 요청했는데, 진입로가 확정된 게 2017년 5월이다”라며 “진입로 확보가 되지 않으면 설계가 늦어지기 때문에 착공이 늦어졌고, 그만큼 공사가 지연됐다”고 설명합니다.
아산시 입장은 다릅니다. 아산시 관계자는 “교육청이 2017년 5월 19일에 진입로 확보를 요청했다. 교육청이 애초에 요청한 진입로는 도시계획이 잡히지 않은 곳이라 받아들일 수 없어서 다른 곳에 진입로를 내줬다. 그게 2017년 5월 27일이다”라면서 “아산시 입장에선 최대한 빨리 일을 진행했다”고 반박했습니다.
한창 지어지고 있는 모산중학교 건물. 2018년 5월 완공 목표다.
양쪽 입장이 계속 엇갈려, 관련 문서를 요구하자 아산교육지청과 아산시는 모두 내부 문서라 당장 공개하기 어렵다고 전해왔습니다. 학생들이 고스란히 피해를 떠안고 있었지만 이 사태를 책임지는 곳은 없었습니다.
배방초 1학년 자녀를 둔 김 아무개 씨는 “우리가 반대를 했지만 이미 결정된 사안이라면서 아무도 대안을 제시하지 않았다”라며 “어쩔 수 없이 모산중과 더부살이하는 동안 학부모는 계속 걱정만 할 뿐 아니겠나”고 한탄했습니다.
애초 다른 대안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닙니다. 폐교한 신리초 부지를 사용하거나 컨테이너 박스로 임시학교를 만드는 방안도 검토되었습니다. 다만 예산의 문제와 시기를 놓치면서 현재는 이마저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아산교육지청 관계자는 “현재는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며 “모산중 학생이 배방초를 사용함에 있어서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최대한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중이니 조금만 지켜봐 달라”고 양해를 구했습니다.
학교 중인 아이들.
배방초 아이들은 불안해하지 않으며, 모산중 아이들은 홀대받지 않으며 학교 생활할 수 있길 바라봅니다.
박현광 인턴기자 mua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