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은 돈으로 쥐고 직원은 감시로 죈다
▲ 일본 아이치현에 있는 렉서스 전용 조립 라인. 연합뉴스 | ||
그런데 일본에서 이미 2006년부터 도요타의 악재를 예견한 사람이 있다. 주인공은 광고 없는 인터넷 뉴스 사이트 ‘마이뉴스재팬’의 대표이자 2007년 출간된 <도요타의 어둠>의 저자인 와타나베 마사히로(38)다. 그는 이번 사건에 대해 “언젠가 일어날 일이 터졌을 뿐”이라며 담담하게 말했다. 또 도요타가 광고비 투자를 통해 언론 길들이기를 해왔으며 ‘사람을 중시’한다고 알려진 기업문화도 실은 그와 정반대라고 주장하고 있다.
얼마 전 NBC방송에서 미국 시민들에게 “도요타 자동차를 사겠냐” 혹은 “도요타의 주식을 사겠냐”는 질문을 했다. 물론 “절대 사지 않겠다”는 대답이 가장 많았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이 인터뷰에 대해 ‘도요타 때리기’를 위한 의도적인 방송이었다고 불만 섞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물론 자국 회사인 도요타의 잘못도 인정하는 분위기지만, 한편으론 미국 자동차업계에서 해외 경쟁사를 물리치기 위해 역습을 가했다는 음모설도 함께 돌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도요타 자동차나 주식을 사겠냐는 똑같은 질문에 일본인들은 “그래도 아직 도요타가 좋다”며 도요타를 편든다. 그들이 세계적으로 1000만 대 리콜을 실시 중인 기업을 아직 신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와타나베 대표는 도요타가 몇 십년간 일본 언론과 국민을 ‘길들여’ 놓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도요타는 광고비로 연간 1000억 엔 이상(계열, 협력업체까지 합하면 연간 4500억 엔)을 쓰고 있다.
그런데 이미 인지도가 높은 대기업에서 이처럼 광고비로 막대한 돈을 투자하는 까닭은 언론 입막음용이라는 것이다. 그는 “일본 방송사들은 매출의 80%를, 신문은 50%를 광고 수익에 의존한다. 도요타는 광고비를 가장 많이 내는 기업이다. 도요타는 자동차와 상관없는 매체나 영세한 잡지사에도 광고를 한다.
이에 대해 그는 “2004년 5월 도요타가 일본 국내에서 대규모 리콜을 실시했다. 국토교통성이 발표한 것과 자체적으로 자료를 집계해 본 결과, 팔린 대수보다 리콜 대수가 더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자동차 결함으로 사망사고가 있었던 미쓰비시의 경우 TV에 대대적으로 보도된 반면, 비슷한 규모의 리콜이 있었던 도요타는 아무도 지적을 하지 않았다”라며 “도요타는 주로 덴쓰(일본 최대의 광고대리점)를 통해 도요타를 비판한 미디어에 압력을 가해온다. 이걸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에 어느 매체에서도 도요타 관련 기획 보도를 내보내지 않는다. 모두가 광고비를 받기 위해 도요타는 포기하자는 식”이라고 말했다.
도요타의 숨겨진 내부를 파헤친 <도요타의 어둠>에는 도요타를 ‘쁘띠(프랑스어로 ‘작은’이라는 뜻) 북한’ 혹은 ‘망해가는 구 일본군’에 비유하며 ‘사람을 중시하는 기업’이라고 평가받는 도요타가 실제로는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가를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있다.
▲ 필리핀 노동자가 도요타를 상대로 항의 시위를 하는 모습. | ||
그 이유는 ATU에 가입하면 회사의 심각한 이지메(왕따)가 시작되기 때문이었다. 자동차의 부품 등을 제조하는 도요타 계열사의 사원인 구로자키(가명·37)는 같은 직장 내에서 근무하는 장애인 두 명이 최저임금도 못 받고 일하는 상황이나 위험한 작업현장의 개선을 회사와 노동청에 호소해 왔다. 하지만 아무런 보장을 받지 못하자 결국 신조합인 ATU에 가담하게 되었다. 그 후 자신의 작업현장에 고양이 똥이 널려 있었고 작업 상자에 새의 시체나 살아있는 쥐가 들어가 있는 등 이상한 사건들이 연속해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구로자키는 “하루는 통근차에 앉아 낮잠을 자다가 이상한 기분이 들어 밖으로 나가보니 타이어에 압정 등이 박혀 있는 것을 보고, 모든 것이 회사 내에서 일으킨 고의적인 사건들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 외에도 그는 잔업수당을 받지 못한 채 일을 강요당하기 일쑤였다. 동료들에게는 아예 대놓고 “구로자키와 어울리지 말라”는 회사의 지시가 내려질 정도였다.
도요타의 직원들이 동료가 노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괴롭히게 된 것은 유명한 도요타식 사원교육에서 비롯된다. 조금이라도 회사 규정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자는 철저하게 따돌리는 것이다. 여기에는 회사의 직접적인 감시가 없어도 직원들이 서로가 서로를 감시·고발하도록 훈련받는다. 와타나베가 도요타를 ‘쁘띠 북한’이라고 표현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자동차를 생산해내는 기술직의 경우는 도요타 자동차학원에서 4년간 교육을 받고 취업을 보장받는다. 그들은 4년간 기숙사 생활을 하며 도요타인으로 거듭나기 위한 훈련을 한다. 그 과정에서 공장에서 단순한 작업을 하며 무보상 인력으로 쓰이기도 한다.
도요타에서 일하는 것에 대해 젊은 사원들에게 물어보면 반드시 화제에 오르는 것이 60년 전부터 이어진 부서 대항 체육대회다. 전 부서에서 팀이 편성되어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 있는 NUMMI(GM과의 합병회사)부터 전 세계에 있는 회사에서 선수로 뽑힌 직원들이 아치현의 도요타시로 모인다. 그들은 체육대회를 위해 점심시간과 퇴근 후에 함께 모여 연습을 한다. 실제로 시합에서 두각을 나타낸 생산직 사원이 사무직으로 파견되는 등의 일화도 있어 모두가 최선을 다해 대회에 임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이 피곤한 노동을 끝내고, 다시 운동연습에 땀을 흘려야 했던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대회에 열심히 임하지 않는 자는 규율을 지키지 않는 인간으로 치부되기 때문이다.
와타나베 대표는 앞으로 도요타의 움직임이 당장의 잘못을 덮으려는 임기응변으로 끝나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2004년부터 품질 문제가 수치로 나와 있었다. 하지만 도요타는 광고의 힘으로 문제를 덮으려 했다. 해외에 진출하기에 앞서 품질개선에 조금 더 노력했다면 지금과 같은 상황은 얼마든지 피할 수 있었다”고 말하며 “도요타의 영업이익 감소가 일본 경제에 큰 타격을 입힐 수 있지만 이번 기회로 기업의 체질이 개선되어 좋은 품질의 제품을 생산하는 회사로 거듭나길 바란다”고 전했다.
김지혜 해외정보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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