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 남서울대학교 교정에 걸린 교수협의회 창립과 교수협의회의 요구사항을 적은 현수막.
# 예고없이 창립 선포한 교수협
지난 10월 17일 천안 남서울대학교의 교수예배. 남서울대 이재식 이사장의 훈시, 교무처장의 업무 협조문 낭독을 끝으로 교수들이 하나둘 예배당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 때, 느닷없이 10명의 교수들이 강단 위로 뛰쳐나와 플래카드를 펼쳐들었다. ‘남서울대 교수협의회 창립선포’. 플래카드에 적힌 문구대로 10명의 교수들은 남서울대 교수협 회원들이었다. 교수협의회장은 창립선포 성명서를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갑작스러운 이들의 등장에 이재식 이사장은 강단으로 뛰어올라가 플래카드를 끌어내리며 이들을 저지하려 애를 썼다. 이 이사장은 은희관 교수협의회장의 멱살을 잡고 “이러려고 교수됐냐”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학교 관계자들이 이사장을 말리며 사건은 일단락 됐고, 교수협회장은 끝까지 성명서를 읽었다.
이 사건은 한 달 뒤 언론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남서울대는 즉각 입장문을 발표하고 “갑작기 여러 명의 교수가 단상에 올라와 교수협의회 발족을 선포하자 이사장이 놀라 이를 제지하는 과정이었다. 이후 교수협의회 대표에게 직접 사과를 했다”며 여론 진화에 나섰다.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교수협은 조직부터 선포까지 모든 과정을 극비로 다룬 것으로 알려졌다.
# 99년부터 시작된 교수협 조직
지난 1993년 설립된 남서울대는 25년의 역사 동안 교수협의회가 없었다. 엄밀히 말하면 학교가 교수협의회를 허락하지 않았다.
남서울대 내부 사정에 정통한 인사에 따르면 대학에서는 1999년 처음 교수협 조직이 추진됐다. 승진 인사의 불공정함과 학교 족벌경영의 불합리함을 바로잡겠다며 전임교수, 조교수 등 젊은 교수들이 주축이 돼 교수협 발족을 준비했다. 교수협은 성명서를 학내 게시판 등에 붙이며 그들의 존재를 알렸다. 창립에 참여한 교수는 27명이었다.
그러나 이내 교수협은 와해됐다. 학교가 나서서 조직을 제지한 것이다. 교수협에 가담했던 교수들은 학교 측에 시달렸다고 한다. 교수와 그 가족은 밤낮없이 전화로 교수협 탈퇴를 종용받았고 신변상 위협까지 느끼게 된 교수들은 교수협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후 교수협은 점조직 형태로 활동을 이어나갔다. 친목단체로 모였지만 이내 학교에 대한 불만을 성토하는 모임이 됐다.
# 교수협을 싫어하는 이유 “족벌 경영”
이토록 이재식 이사장이 교수협을 조직을 싫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남서울대 관계자는 “사실 학교노조가 17년 전에 생겼는데 아직까지 교수협의회가 생기지 않았었다는 것이 이상한 것”이라며 “이유는 간단하다. 운영자들은 원래 노조가 생기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이 이사장도 마찬가지”라고 원론적으로 말했다.
교수협 측의 관점은 조금 더 구체적이다. 교수협이 생기면 족벌체제가 구축된 학교를 장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남서울대 설립자인 이재식 씨는 학교법인 성암학원의 이사장을 맡고 있다. 그의 아내 공정자 씨는 남서울대 총장으로 재직 중이며 그의 아들 이윤석 씨가 부총장 자리에 앉아있다. 현재 남서울대의 실권자는 이윤석 부총장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이재식 씨의 딸은 성암학원의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교수협은 이들 외에도 학교의 요직은 이사장의 친인척들과 지인들이 차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승진을 위해선 이사장의 ‘제도권’ 안에 있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이 교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 총장실에서 나온 교수 블랙리스트
교수협이 그들의 계획을 동료 교수에게도 알리지 않은 이유도 이에 기인한다. 어느 교수가 이사장의 라인인지 모른다는 의심에서다. 남서울대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교수들도 서로를 잘 믿지 못한다. 어느 교수가 이사장의 라인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교수들은 서로 동료이기도 하지만 승진을 다투는 경쟁자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지난 2000년 남서울대 총학생회가 학교 재단의 불투명한 재단 운영을 규탄하며 총장실을 점거했을 때 총장실에서 교수 블랙리스트가 발견됐다. 이 블랙리스트에는 재직 중인 교수들을 A, B, C등급으로 나눠 관리되고 있었다. 블랙리스트의 작성자는 밝혀지지 않았다. 교수협은 여전히 누구에 의해 감시당할지 모른다는 의심을 품고 있다고 한다.
# 이사장의 돌출행동은 교수협의 연출?
한편, 이번 사건은 한 달이나 지난 뒤에나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 이를 두고 교수협의 의도된 연출 아니냐는 뒷말이 나온다. 갑작스런 발표가 이사장의 돌출행동을 이끌어 낼 것이라고 예상한 교수협이 협상카드로 쓸 요량으로 카메라를 미리 준비해 촬영을 했다는 것이다. 교수협은 이 동영상을 빌미로 학교와 협상을 벌였고, 교수협의 뜻대로 흐르지 않자 동영상을 공개했다는 추측이다.
교수협은 항간의 소문은 사실이 아니라고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교수협 관계자는 “언론 제보는 교수협이 아니며 이 사건을 인지한 언론에서 인터뷰 요청이 와서 응한 것 뿐”이라며 “우리도 동영상을 촬영한 것은 맞다. 하지만 언론에서 나온 동영상은 우리가 찍은 동영상과 앵글이 다르다”고 밝혔다.
# 좁혀지지 않는 학교와 교수협의 간극
남서울대는 교수협을 인정했다. 하지만 이는 표면적인 것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학교 측 관계자는 “이번 사건이 불거지고 난 후 학교 측과 교수협이 교수 처우 개선 등을 협의하기 시작했다. 협의가 교수협의 뜻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수차례에 걸친 협의에서 서로의 간극을 좁히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이윤석 부총장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사직서를 제출했지만 이사회가 수리를 미루고 있다.
교수협 관계자는 “학교 측과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아직 밝히긴 어렵다. 추후 상황을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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