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담양엔 소쇄원 식영정 환벽당 등 가사문학의 유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맨위 사진은 환벽당 그 아래는 담양별미 대통밥이고, 왼쪽은 대나무숲. | ||
가사문학 유적지를 찾아 나선 담양에는 여행자를 기쁘게 하는 것이 또 하나 있다. 바로 길이다. 어디든지 길을 나서면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길이 나타나 눈과 귀를 감동시켜 주는 것이다. ‘츠르르 츠르르’ 바람결에 춤추는 모양새가 대숲에 이는 바람소리처럼 운치 있다.
‘가을 다간 변방에 기러기 슬피 우니/ 가고픈 고향이라 망향대에 올랐구나 은근도하다 시월달 함산 국화는/ 중양(重陽) 위해 아니 피고 길손 위해 피어주네’
송강 정철이 가을이 지나가고 있는 쓸쓸한 변방에서 읊은 <함흥객관대국>이라는 시조이다. “담양에는 왜 누각과 정자가 많을까?” 스쳐가듯 발동한 이 호기심으로부터 여행의 동기가 마련된다. 경치가 수려하고 기름진 평야 때문에 양반과 지식층이 두터웠던 담양. 정쟁과 사화가 끊이지 않던 16세기부터 이곳 담양골에 모순된 정치 현실을 참지 못하고 낙향한 선비가 모여들며 정자가 들어섰다.
이들이 조선조의 대표적인 국문시가인 가사문학의 꽃을 피우게 된 것은 우연이었을까? 그때부터 죽향의 고장 담양은 호남시단의 중요한 무대이자 가사문학 창작의 밑바탕이 되어 그 전통을 오늘에 있게 했다.
무등산자락 광주호 상류에 자리잡은 소쇄원, 식영정, 환벽당과 담양읍의 면앙정, 송강정 등 여러 가사문학의 유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곳에서 면앙정 송순, 송강 정철, 서하당 김성원 등 당대 선비들이 가사문학을 꽃피웠고 지금의 누(樓)와 정자(亭子)문화를 이루어낸 것이다.
창평IC에서 벗어나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터널을 지나오면 명옥헌 원림에서부터 광주호 상류의 독수정 원림에 이르는 고서면과 남면 일대를 가사문학권이라 부른다.
가사란, 학창시절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한국 고전문학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문학형태를 말한다. 시조의 형식을 이어오면서도 산문의 자유로움을 취하는 국문 시가쯤으로만 이해하고 있어도 훌륭한 기억력이다. 송강 정철의 가사가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도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잘 살려냈기 때문이라 한다.
▲ 소쇄원은 조선 민가정원의 대표적인 곳이다. | ||
남면의 가사문학권역은 차를 타고 움직이기엔 너무 가깝고 걷기에는 조금 힘이 드는 거리에 이름난 유적지들이 분포되어 있다. 가을 바람 부는 날은 산책하듯이 걸어도 어려움을 느끼지 못할 듯하다.
무등산 자락 성산의 아름다운 계류를 끼고 있는 소쇄원. 몸과 마음을 씻어주는 시원함이란 뜻이다. 배롱나무와 노송이 아름다운 명옥헌 원림과 함께 조선시대 민가정원의 대표적인 곳으로 조광조의 제자였던 양산보가 지었다.
그는 기묘사화로 스승이 화를 당하자 평생을 이곳에 은거하며 음풍농월한 것으로 전해진다. 들머리에는 담양의 자랑인 맹종죽 대나무 숲이 운치 있게 펼쳐지고 길따라 오르면 정자와 누각이 산만하지 않으면서도 편안히 흩어져 있다. 울창한 숲의 기운과 맑은 개울소리가 정자에 둘러앉은 논객들의 은근한 대화를 감싸안는다.
계곡의 물이 다섯 번을 돌아내린다는 오곡문, 무릉도원을 재현하려는 복사동산 등 소쇄원은 일반사람들에게 완전히 개방되어 있다. 제월당에서 자유로운 토론을 즐기는 모습 뒤로 옛 선비의 시조가락이 들리는 듯하다.
광풍각과 제월당은 당대 선비들이 모여들던 곳으로 정원의 풍치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정자문화권의 중심이다. 고경명 김인후 송순 정철 기대승 백광훈 등 대가들이 모여 학문과 선비의 법도를 논했다. 아마도 대숲에 가을바람이 스치는 저녁이면 여기서 빼어난 시 한 수쯤은 읊었을 것이다.
광풍각과 제월당이란 이름은 각각 ‘비 갠 뒤 해가 뜨며 부는 청량한 바람’ ‘비 개인 하늘의 상쾌한 달’이란 뜻이며 사랑방과 주인을 위한 집으로 나뉜다.
광주호 상류 높은 언덕에 자리잡은 환벽당은 김윤제의 살림집 뒷산에 세워진 작은 정자였다. 푸른 대숲에 둘러싸여 환벽당이라 했지만 지금은 목백일홍나무가 인상적이다.
환벽당 아래 창계천에는 김윤제가 낚시를 즐겼다는 조대(釣臺)가 늙은 소나무의 그림자에 가려져 있고 그 위에 기념비가 서 있다. 이 조대 앞 깊은 물웅덩이는 송강 정철에 얽힌 전설이 남아있는 곳이기도 하다. 김윤제가 환벽당에서 꿈을 꾸었는데 용소에서 청룡이 하늘로 승천하는 것이었다. 꿈에서 깨어나 살펴보니 그곳에서 마침 어린 동자 하나가 목욕을 하고 있었는데 이 동자가 바로 송강 정철이라는 것이다.
식영정으로 가기 전, 아이들과 함께 왔다면 가사문학관에 들러 가사문학의 전반적인 이해를 돕는 영상관과 전시관을 둘러보기를 권한다. 자발적인 문화지킴이(문화해설사라 불리는)로부터 듣는 설명은 문화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불러일으킬 만큼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마다 다르다는 전제를 달아야하겠지만 말이다.
▲ 호남시단의 원류인 담양엔 가사문학관이 있다.(위) 대나무골 야영장에서 삼림욕이 아닌 죽림욕을 즐겨보자.(아래) | ||
환벽당이 담양군과 광주광역시 접경지역에 있다면(정확히는 광주광역시에 속한다) 3백m쯤 떨어진 식영정은 담양군 지곡리 성산에 있다. ‘그림자(影)도 쉬어간다(息)’는 뜻이니 세속을 떠나 자연에 묻혀 사는 삶을 뜻하는 것이리라.
멀리는 무등산이, 가까이는 광주호와 창계천이 어우러져 그 이름처럼 못내 쉬어가게 만드는 곳이다. 송강 정철이 여기 머물며 <성산별곡>을 지었다 해서 성산별곡 시비가 세워져 있다.
이밖에도 송강 정철이 <사미인곡>을 지었다는 송강정과, 송순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면앙정은 담양읍 방면에 위치한다. 정자나 누각을 돌아볼 때는 오랜 세월에 닳고닳아 윤기마저 감도는 툇마루에 앉아 그들처럼 한숨을 돌려보자. 담소를 나눌 벗이 있다면 좋겠지만 혼자 보내는 시간도 은근하다. 멀리 산으로 들로 눈길을 돌려보면 뭐 그리 급할 것도 없는 것이 인생이 아닌가 싶은 인생무상의 경지에 도달할지도 모를 일이다.
대나무로 널리 알려진 담양이지만 대숲은 오히려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만큼 흔하게 만날 수는 없다.담양읍의 중심에 위치한 죽세공예진흥단지는 거창한 그 이름에 비해서는 크게 볼 것이 없다. 죽물전시관에서 보는 일상적인 전시형태보다는 차라리 체험관에서 가족들이 둘러앉아 부채나 팔랑개비 등 간단히 제작할 수 있는 대나무공예를 체험해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공예품 판매점은 내국인보다는 외국인에게 한층 흥미로운 공간이라서 외국관광객이 더 많다. 어쩌면 아버지가 사용하던 죽부인을 자식이나 다른 사람이 껴안아서는 안된다는 등의 얘기들이 그들에겐 흥미로운 이야기였는지도 모른다.
사실 죽세공보다 더 우리의 가슴을 짠하게 하는 것은 대숲에 이는 바람소리다. 소리를 담아내는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려서라기보다는 ‘쏴아쏴아’ 파도소리처럼 긴 여운을 남기는 소리 때문이다.
담양읍에서 순창방면으로 길을 잡으면 곳곳의 많은 가로수 터널을 제치고 담양의 명물이 된 아름다운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을 지나게 된다. 그 길을 따라 10여 분 따라가면 죽림욕이 가능한 대나무골 야영장 이정표가 나타난다. 대나무골 야영장은 하늘을 향해 뻗은 거대한 대숲과 그 사잇길로 즐거워진다.
“사랑이 아니라도, 그 곁에 키를 낮춰 눕고 싶다”던 어느 시의 한 구절처럼 사랑이 아니라도 누군가의 손을 잡고 걸어가고 싶은 그 길이 이곳에 있다. 삼림욕 아닌 죽림욕을 즐기며 걷게 되는 긴 진입로는 야영장의 언덕 끝까지 부드럽게 이어져 있고 고개를 뒤로 제치면 대나무잎 사이사이로 가을하늘이 숨어있다. 바람이라도 살랑살랑 불어오면 오래도록 잊지 못할 뭉클한 감동마저 느껴진다.야영장으로 이어지는 언덕에는 초록평원이 늦가을까지 이어져 ‘쉬어가라’며 소리없는 인사를 건네 온다.
박수운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