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입장 손바닥 뒤집듯…시기 놓고도 티격태격
지난 2017년 9월 1일 국회 분수대 옆에 마련된 ‘응답하라 1987 개헌 나도 한마디 국민자유발언대’ 개막식 행사에서 정세균 국회의장(앞줄 가운데)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우선 개헌 시기를 놓고 여야의 입장이 엇갈린다. 정부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민주당)은 올해 지방선거와 개헌 국민투표를 동시에 실시하겠다며 일정을 서두르고 있다. 야당이 반대하면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개헌안을 발의하는 방안까지 검토 중이다. 반면 자유한국당(한국당) 측은 지방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올해 연말로 개헌 국민투표 일정을 미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민주당 측은 올해 연말에 개헌투표를 진행하면 투표를 위한 불필요한 추가비용이 들고 개헌만을 위한 원포인트 투표를 할 경우 투표율이 낮아져 개헌안의 정통성이 흔들리는 등 여러 가지 문제점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우원식 민주당 원내대표는 “한국당이 정치적 셈법 때문에 대선 공약까지 파기하려고 한다”고 비판했다. 홍준표 한국당 대표는 지난 대선에서 지방선거 개헌투표 실시를 공약했었다.
문 대통령이 직접 개헌안을 발의해도 한국당이 반대하면 현실적으로 처리는 불가능하다. 정부가 발의한 개헌안을 국민투표에 부치려면 국회 3분의 2(300명 기준 200명) 이상의 동의가 필요하다.
여야는 지난 2016년 12월 29일 개헌특위를 발족시켰지만 1년 넘게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 측은 개헌안 처리가 지연되고 있는 가장 큰 원인은 한국당이라고 주장한다. 한국당이 논의에 소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얘기다.
한국당 측은 민주당에 책임을 돌린다. 개헌특위 위원인 정용기 한국당 의원은 “개헌의 핵심은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을 분산시키자는 것인데 민주당에서는 4년 중임제(대통령 임기를 4년으로 줄이는 대신 재선이 가능하도록 하는 제도. 재선에 성공하면 최대 8년간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있다)를 고집하고 있다. 4년 중임제로 개헌하면 오히려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을 강화하게 된다. 전에는 민주당 의원들도 권력 분산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는데 갑자기 개헌하려면 4년 중임제로 해야 한다고 하니까 협의가 안 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 개헌특위 위원인 김종민 의원은 “많은 국민들이 이원집정부제(대통령이 외교안보 분야를 맡고 다수당의 총리가 행정권을 담당하는 제도)보다 4년 중임제를 원한다는 결과가 나왔다”면서 “4년 중임제로 해도 분권을 위한 장치들을 보완하면 얼마든지 권력을 분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여야는 여러 쟁점들에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지만 사실 간극은 그리 크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개헌특위에 참여하고 있는 성일종 한국당 의원은 “대통령 4년 중임제냐 이원집정부제냐 하는 권력구조 문제가 가장 핵심이다. 이 문제만 합의가 된다면 나머지 문제들은 부수적인 것이다. 언론에는 우리 당이 중대선거구제(1개의 선거구에서 2~3인의 대표를 선출하는 제도는 중선거구제, 4인 이상의 다수인을 대표자로 선출하는 제도는 대선거구제라 한다)나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정당의 득표율과 의석 점유율의 비율을 일치하도록 하는 제도) 등을 완전히 반대하는 것처럼 나오는데 사실이 아니다. 물론 보완할 문제점은 있지만 얼마든지 합의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여야가 본격적인 협상에 나선다면 의외로 일이 쉽게 풀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현재 민주당이 4년 중임제 개헌을 선호하고 한국당이 이원집정부제 개헌을 선호하는 것에 대해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입장이 매번 변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민주당 일부 의원들은 과거 당 지지율이 낮을 때는 “권력 분산 없이 4년 중임제로 개헌하면 개악”이라고 주장했었다.
반대로 박근혜 전 대통령은 개헌의 필요성에 대해 “대통령선거를 치른 다음 날부터 다시 차기 대선이 시작된다. 대통령 단임제로 정책의 연속성이 떨어지면서 지속가능한 국정과제 추진이 어렵고 일관된 외교정책을 펼치기에도 어려움이 크다. 또한 경제주체들은 5년마다 바뀌는 정책들로 인해 장기적인 투자와 경영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면서 4년 중임제에 힘을 싣는 발언을 했었다. 박 전 대통령의 주장은 현재 민주당의 주장과 일치한다.
권력구조와 함께 가장 쟁점이 되는 것은 선거제도다. 한국당을 제외한 정치권은 선거제도를 중대선거구제로 바꾸고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데 동의하고 있다. 중대선거구제와 연동형비례대표제가 도입될 경우 소수정당에 유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특히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정의당 등은 적극 찬성하고 있다.
한국당 측은 무조건 도입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라면서도 두 제도가 도입될 경우 어부지리로 당선되는 정치인들이 다수 나올 수 있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정용기 한국당 의원은 “연동형 비례대표를 도입할 경우 선거 때마다 의석수가 달라지고 의원 정수가 늘어난다. 작년 대선 득표율을 가지고 시뮬레이션을 해보니 최소 30석에서 최대 130석까지 의원 정수가 늘어난다는 결과가 나왔다. 의원 수가 그렇게 늘어나도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같은 당 성일종 의원도 “중대선거구제와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되면 통합진보당 같은 세력이 걸러지지 않고 국회에 대거 진입할 수도 있다”면서 “이런 문제점에 대한 보완책이 마련되면 찬성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지방분권 확대도 주요 쟁점이다. 여야 모두 지방분권 확대에 대해서는 공감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수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일각에선 영토가 좁은 우리나라가 지나치게 지방분권을 강화할 경우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김종민 민주당 의원은 지방분권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인구가 500만 명인 유럽 선진국들도 지방자치를 한다”면서 “현재는 거의 모든 의사결정을 청와대와 국회가 한다. 중앙권력과 가까운 사람들만 유리한 법안이나 조례가 만들어진다. 지방분권이 되면 삶의 현장에서 국민들이 필요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완화하기 위해서도 지방분권이 필요하다. 분권 중에서도 가장 근본적인 분권이 지방분권”이라고 설명했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이외에 ‘국민소환제 도입’을 개헌 주요 쟁점으로 꼽았다. 국민소환제는 선거에 의해 선출된 대표 중에서 유권자들이 부적격하다고 생각하는 자를 임기가 끝나기 전에 국민투표를 통해 파면시키는 제도다. 현재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원에 대한 주민소환제는 있지만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에 대한 국민소환제는 없다. 국민소환제에 대해서는 여야 모두 당내에서조차 의견이 엇갈린다. 반대하는 의원들은 무죄추정 원칙과 충돌하고 제도를 남용할 수 있는 점 등을 우려하고 있다.
올해 6월 지방선거와 개헌 국민투표 동시 실시에 대해서는 여야의 의견이 엇갈렸지만 올해 안에 개헌을 실시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여야 모두 ‘충분히 가능하다’고 답변했다. 성일종 의원은 “큰 것(정부형태)부터 해결해놓고 나머진 절충하면 된다. 일부 쟁점 사안들은 굳이 개헌을 통해 해결해야 하는 문제도 아니다. 충분히 올해 안에 개헌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