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택식물원 내의 수생식물원. 3백여 종이 식재돼 있다. | ||
추석도 지나간 가을을 느끼기에는 들판이 제격이다. 가까운 야산에서도 가을의 향기는 짙게 피어나고 있지만, 일부러 나서는 가족 나들이라면 가까이에 있는 야생 식물원을 이용하는 것도 좋은 생각이다. 꽃에 애정을 지닌 집념의 원예가들이 가꿔낸 사설식물원, 경기도 용인의 ‘한택식물원’과 가평군 ‘꽃무지 풀무지’를 돌아봤다. 궂은 날씨 속에서도 부지런히 그들의 세계를 피워내고 있는 크고 작은 꽃의 소박한 향내가 스트레스에 찌든 도시 사람들의 시름을 크게 덜어주는 곳이다.
▲ 한택식물원 오솔길에 맥문동이 피어있다. | ||
경기도 용인시 백암면 옥산리에 자리한 한택식물원은 24년이라는, 사설 식물원으로서는 비교적 긴 역사를 갖고 있다. 지난 5월 일반인에게 공개되기 이전까지는 회비를 갹출해 식물원 조성을 후원하는 후원자들만이 제한적으로 이곳을 찾았었다.
지금은 누구나 탐내는 꽃의 파라다이스가 되었지만, 식물원이 조성된 계기는 색다르다. 식물원장 이택주씨는 본래 이곳 선산을 초지로 만들어 한우목장을 운영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혹독한 한우파동을 겪으면서 많은 빚을 지게 됐고, 이를 갚기 위해 관상수와 자생식물 등을 심기 시작했다. 우연한 동기로 시작한 ‘부업’이었지만 그는 이내 식물의 매력에 빠져버렸고, 결국은 20만 평의 광활한 목장이 모두 식물원으로 변신을 하게 됐다.
본격적인 조경을 시작하고 정식으로 식물원을 연 것은 1984년의 일이다. 이후 몇 차례 시행착오와 위기를 거치기도 했지만 그럴수록 식물원은 내실을 다져 이제는 국내 최대의 규모를 자랑하게 됐다. 2001년에는 재단법인으로, 2002년에는 국가 지정 식물원으로 성장했다.
식물원은 크게 동원과 서원으로 나뉘어 있으며 일반에게는 동원만 공개돼 있다. 공개가 안된 서원은 인공번식이 어려운 자생식물과 희귀식물들을 보존하고, 품종 개발을 연구하는 구역이다. 이 같은 연구를 거쳐 식물원은 국내에서 가장 철저하게 식물의 계통을 밝혀 연구한 자료들을 축적하고 있다.
대지에 1천2백여 종에 달하는 수목류와 1천2백여 종의 자생화, 2천4백여 종의 토종식물, 그리고 외국 수종을 포함해 총 6천여 종의 식물이 자라고 있다.
한택식물원에는 20여 개나 되는 주제정원이 마련돼 있다. 특히 자연생태원은 작은 계곡을 따라 식물 군락이 형성돼 있고, 여기에는 각 종마다 이름과 원산지 등을 표시해 두어, 입체적인 식물도감을 보는 것 같다.
자연생태원을 지나 산책로를 따라 올라가면 전망대로 오르는 계단이 있다. 전망대에서는 식물원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새롭게 조성중인 2백70평 규모의 유리온실 4동에서는 아열대성 식물과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의 특이 수종들을 선보일 계획이다.
전망대 아래쪽 커다란 바위와 돌 사이에도 화초가 자라고 있다. 길이 1백20여m 되는 잔디 화단에서는 신발을 벗고 맨발로 산책하며 자연과 좀더 가깝고 친숙해질 수 있다.
유리온실 맞은편 침상원(Sunken Garden)에는 중부 지방에서 월동이 어려운 상록고사리, 만병초류 그리고 일부 남부 상록수종이 심어져 있다.
잔디화단을 지나면 모란작약원. 1995년 중국 북경식물원과 상호교류를 시작하면서 우정의 표시로 기증받은 3백50품종의 모란과 80종의 작약이 있는 곳. 가을에는 모란을 볼 수 없는 것이 아쉽지만 억새원에 들어서면 그 아쉬움은 사라진다. 우리나라의 은빛 들판을 연상케 하는 억새원은 억새 사이로 보라색, 노란색의 개미취, 마타리 등이 늘어서 있어 가을 들판의 정취가 물씬하다.
국내 자생벼과, 사초과 식물들이 식재돼 있고, 유럽에서 원예품종으로 개량된 억새도 10여 종 볼 수 있다. 이 외에도 약용식물원(5백여 종), 수생식물원(국내종 1백여 종, 외래종 2백여 종)도 아름답다.
식물원 곳곳에 간단한 쉼터와 벤치 등이 마련돼 있어, 쉬엄쉬엄 20만 평을 모두 돌아볼 수 있다. 화초나 관목 등에 관심있는 사람은 원하는 품종을 분양받거나 식재사업에 대한 컨설팅도 받을 수 있다. 한택식물원 031-333-6483. www. hantaek.com
▲ 가는 길: 영동고속도로 양지IC- 일죽 방면(17번 국도)- 근곡사거리(백암진입로)- 백암교회- 삼죽 방면 329번 지방도- 장평초등학교- 한택식물원
▲ 대중교통: ①수원, 영통, 신갈버스터미널(10-4번, 하루 8회)- 한택식물원 ②남부터미널- 백암터미널(10-4번, 하루 4회)- 한택식물원
▲ 가평 ‘꽃무지풀무지’는 야생초만 모아놓은 식물원이다. 위사진은 내부의 습지원.분재원(가운데)과 오솔길. | ||
한택식물원의 20만 평에 비하면 가평 야생수목원 1만5천 평은 아기자기한 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고유의 야생화만을 모아놓았다는 특징을 생각하면 이 규모는 오히려 방대하다.
자연스러운 동선과 소박한 분재원의 모습 등은 오히려 더 친숙하게 느껴진다.
6년 전, 건설자재 관련 사업가였던 김광수씨는 어느날 우연히 여의도의 한 전시장에서 야생화가 전시된 것을 보고 감전된 듯, 그 자리에 몇 시간이나 서 있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야생화의 아름다움에 놀라 주말마다 야생화 전문가와 식물원, 수목원을 찾아 전국을 돌아다니며 야생화 공부를 시작했고, 마침내 가평에서 야생수목원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직접 손으로 가지치기한 나무로 울타리를 엮고, 야생화 묘목과 종자를 구해 야산에 심으면서 보낸 세월이 5년이 넘었다.
수목원을 들어서면 종묘장과 분재원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종묘장은 야생화 묘목을 기르고 있는 곳으로, 묘목 상태의 야생화를 야산에 식재하기 전까지 이곳에서 돌본다.
분재원은 국내에 자생하는 각종 난과 자연상태의 야생화를 분재해서 전시한 공간이다. 분재 하나하나가 김광수 원장의 손을 거쳤다. 자생화단과 암석원, 분재원, 전통원, 그리고 삼림욕장을 갖추고 있다. 자생화단은 다시 국화원, 모란원, 버섯원, 덩굴식물원, 붓꽃원, 약초원, 나리원, 제비원 등으로 나뉘어 있다.
특히 가을철에 눈길을 끄는 국화원에는 흔히 우리가 들국화라고 부르고 있는 이화구절초, 쑥부쟁이, 구정구절초, 포천구절초 등이 가을 들판에 빼곡히 피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약초원에는 익모초와 마편초과의 층꽃, 더덕, 삼백초, 배초향 등이 자란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외국의 제약회사들이 우리나라 야생화와 약초 등을 가져다 연구하면서 새롭게 교배시킨 종자를 개발하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를 듣고 내가 가야할 길은 이 길이다 생각했다”는 김 원장은 특히 약초에 대한 관심이 많다.
습지원에는 산과 들, 냇가나 연못, 습지에서 자생하는 식물이 자라고 있다. 뿌리를 물 속에 두고 꽃이나 잎을 수면 위에 내놓는 부엽식물과 수심 10cm 내외의 물가에서 자라는 수변식물, 수면을 자유롭게 떠다니는 부유식물들을 볼 수 있다. 우산나물이나 비비추 칼잎용담 수련 창포 등이다. 이름만 들어도 예쁜 느낌이 온다.
수목원 주변에는 명지산과 운악산 등 가을 단풍을 만끽할 수 있는 산행지가 많이 있어, 가을 단풍놀이와 소풍을 겸한 나들이에 적격이다.
수목원 안에서는 아스팔트나 콘크리트를 볼 수 없으며 여유 공간마다 쉬어갈 만한 벤치가 놓여 있다. 가평야생수목원 031-585-4875
▲가는 길: 서울- 경춘국도(46번 국도)- 청평검문소에서 현리 방면으로 좌회전- 9km 진행- 항사리상회 앞에서 우회전후 3km- 가평 야생수목원
편경애 프리랜서 tou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