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주서 국민주로…큰손 차익실현 돕고 후계자 인정받기?
지난 31일 삼성전자가 무려 50 대 1의 액면분할을 발표한 것에 대해 다양한 분석이 나오고 있다. 고성준 기자
# 액면분할…큰손 차익실현 돕기(?)
액면분할 발표 하루 전인 지난 1월 30일과 발표 당일인 31일 삼성전자에는 대규모 공매도가 이뤄졌다. 당일 전체 거래량의 15% 안팎에 달할 정도의 폭발적인 규모다. 거래대금으로는 19조 원이 넘는다. 익명의 증권사 관계자는 “지난해 상반기 한때 54%가 넘었던 외국인 지분율이 최근 52%대로 떨어졌다”며 “액면분할 발표 전일부터 외국인 매도세가 쏟아졌고, 이를 개인이 받아냈다”고 분석했다.
삼성전자 주식은 90% 이상 대주주, 외국인, 기관이 보유 중이다. 특히 최근 몇 년간 자사주 매입 소각을 단행하면서 유통주식 수가 급격히 줄었다. 2017년 9월 말 기준 삼성전자 총발행주식은 1억 5561만 주다. 이 가운데 2584만 주가 소각됐다. 무려 16.6%의 주식이 사라진 셈이다.
유통주식 수가 줄면 주가 변동성이 커진다. 매수세가 붙으면 주가가 쉽게 오르지만, 반대로 매도가 나오면 역시 주가가 쉽게 하락한다. ‘개인 소액투자’라는 새로운 매수세력이 등장한다면 기존 주주들이 보유 지분을 매각해도 가격 하락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액면분할은 기업 펀더멘털과 아무 상관이 없다. 기관들도 주당 액면가를 중요시하지 않는다. 개인투자자들은 다르다. 250만 원이 넘던 ‘삼성전자 주주’ 지위의 가치가 5만~6만 원짜리가 된 셈이다. 기관들에는 팔기 좋은, 개인들에는 사기 좋은 환경인 셈이다.
이는 삼성전자가 지난해 10월 말 발표한 2018~2020년 주주환원정책에서 자사주 소각에서 배당 확대로 전환을 표명한 데서도 확인된다. 최근 4년간 삼성전자 주가 지지기반은 자사주 매입이었다. 외국인과 투신·연기금의 차익실현에도 불구하고 주가가 크게 오른 이유다.
고경범 유안타증권 고경범 연구원은 “자사주 매입이 약화되면 차익실현 물량을 받아줄 주체가 사라지게 된다”면서 “액면분할은 이런 고민에서 개인 수급을 도모하기 위한 차원에서 내린 결정일 것”이라고 풀이했다. 김양재 KTB투자증권 연구원은 “외국인과 기관투자자 중심이던 삼성전자 수급도 액면분할을 계기로 일반투자자가 추가되면서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주주경영…후계자 인정받기
2011년 애플 지휘봉을 쥔 팀 쿡은 2012년 무배당 원칙을 깨고 대규모 현금배당을 실시한다. 2014년에는 액면분할과 자사주 매입을 잇달아 발표한다. 애플 주가는 상승세를 이어갔고, 주주들은 환호했다.
2014년 5월 이건희 삼성 회장이 쓰러진 이후 이재용 부회장은 배당을 확대하고, 자사주를 매입해 소각한다. 이 회장 때는 자사주를 매입해 회사가 보유함으로써 향후 인적분할과 지주사 전환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관측을 낳았다. 삼성전자는 지주회사 전환 검토도 중단했다고 선언한 상태다.
#최순실 재판 변수될까
2월 5일 선고가 내려지는 이재용 부회장의 2심 재판의 핵심 쟁점 가운데 하나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후계구도를 위해 주주이익을 훼손했느냐 여부다. 주주중심 경영은 이 같은 혐의에 대한 강한 부정일 수 있다. ‘황제주에서 국민주로 전환’이라는 평가는 상당한 의미가 있다. 액면분할의 최종 의사결정은 이 부회장이 내렸다는 후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주주중심 경영은 지배구조 개선이라는 현 정부의 재벌정책 방향과도 일치한다”며 “이 부회장이 자사주 소각에 이어 액면분할 조치까지 단행한 것을 보면 이건희 회장의 후계자로서 위치를 공고히 하기 위해서는 주주들의 지지가 절대적인 점을 감안한 행보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전례들 보니…반짝 상승에 그칠 수도
2015년 아모레퍼시픽은 5000원인 액면가를 500원으로 쪼갰다. 주가도 약 두 달 만에 45만 원대까지 치솟았지만 그 뒤 점차 하락세를 보였다. 2000년 액면분할을 단행했던 SK텔레콤도 주가는 약 두 달 만에 26%(2000년 6월 당시 37만 원대)가량 상승했지만 18년 가까이 시간이 지난 현재에도 주가는 26만 원대에 불과하다.
이중호 KB증권 연구원은 “2000년 이후 667건의 액면분할 사례를 분석한 결과 평균적인 주가 흐름은 액면분할 공시 이후 상승하지만 다시 하락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분석했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