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성산성 외남문. 타오를 듯한 단풍길을 오르다 보면 어느새 푸른 하늘이 발치에 활짝 펼쳐진다. | ||
가고 싶은 만큼 가고, 쉬고 싶은 만큼 쉬는 ‘내 멋대로 가을 여행’이다. 생각만으로도 마음에 행복이 차 오르지 않는가. 목적지는 정하되, 정해진 코스는 없는 채로 출발하는 것이 좋다.
추천 목적지는 전남 담양의 금성산성. 가을 내린 산성은 하늘 그림자가 내려앉을 만큼 탁 트인 전망을 자랑하는 천혜의 전망대다. 새벽이면 성곽 위로 뽀얀 물안개 스미고 해질녘이면 빨간 노을 내린다. 햇살 맑은 오후엔 성곽을 둘러싼 단풍빛 또한 곱다.
담양 여정의 첫머리는 88고속도로 담양IC. 하지만 길의 미학과 여유를 원한다면 호남고속도로 태인IC를 첫머리로, 구절재를 넘고 운암호를 스친 뒤 남쪽으로 흘러가는 30번 국도를 따르기를 권한다. 자연을 닮은 예쁜 길, 능교리 삼거리에서 30번 국도와 29번 국도를 잇는 715번 지방도로 또한 매력 넘친다.
길 따라 흐르는 추령천은 소박하고, 함박웃음을 띤 듯 개울가로는 들꽃이 무성하다. 29번 국도에서 천치재를 넘으면 고개와 호수가 어우러진 멋진 드라이브 코스, 담양호다. 담양호를 따라 101번 군도로 접어들면 금성산성 트레킹의 기점이 되는 담양리조트. 금성산성 주차장은 리조트에서 2km 정도 오르면 산길 끝에 있다. 길이 협소해 단풍 절정기 땐 차가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이 되기 쉬우므로 아예 리조트 옆, 길섶에 두고 가는 것이 현명하다.
▲ 운해에 둘러싸인 금성산성의 모습이 마치 한 폭의 수묵화를 연상케 한다. 왼쪽은 연동사. | ||
법당에서 아래로 조금 더 내려가면 스님 두 분이 머무는 선방이다. 새끼 백구 몇 마리가 마중 나오는 선방은 여느 절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 공방을 별채로 두었을 만큼 손재주가 많은 원행 스님이 야문 손끝으로 하나 하나 일구어 그 정성만큼이나 공간이 아기자기하다.
연동사를 벗어나 산길을 오르면 길은 어느새 짙은 가을 속이다. 때로는 가파르고 때로는 밋밋한 산길은 구경하며 걷기 좋은 단풍길. 쉬엄쉬엄 걷다 보면 40여 분이 채 못돼 산성에 닿는다. 담양호를 축으로 추월산과 마주보고 있는 산성산의 봉우리와 능선을 연결해 놓은 금성산성은 삼한시대에 시작해 고려 중기에 완성된 성벽. 성루에 서면 거침없이 흐르는 산줄기와 담양호가 발치께로 내려다 보인다.
똬리 튼 뱀처럼 윤기 나는 파란 비늘의 담양호와 호수를 가둔 붉은 산자락. 성루에서 내려다본 풍광은 ‘섬들의 고향, 다도해’에 비견될 만큼 아름답다. 장쾌한 성곽 또한 풍광의 주인이다. 산성 최적의 조망지로 손꼽히는 내남문(충용문) 망루에 서면 외남문(보국문) 성곽을 둘러싼 일련의 풍광들이 가슴으로 밀려든다. 새벽이면 물안개로 채워지고, 해질녘이면 노을빛으로 물드는 외남문 성곽은 시원하고 맵시있는 곡선미가 자랑이다.
▲ 금성산성 외남문(위)과 노적봉. | ||
일 부분을 고르자면, 그 중에서도 내남문에서 출발, 노적봉~철마봉~서문~휴당산방을 돌아 내남문으로 되돌아오는 2시간30분 코스가 가뿐하게 걷기에 좋고, 풍광 또한 일품이다. 특히 내남문과 철마봉 사이의 성벽 길이 환상적이다. 고운 선을 이루는 길의 아름다움은 말할 것도 없고 왼편으로 내내 담양호의 시원한 정경을 끼고 걸어 비탈진 산길도 그리 힘겹지 않다.
서문을 돌아 보국사터를 지나 휴당산방으로 가는 길은 평평한 숲길이다. 넉넉잡아 20여 분이면 산성 내에 하나뿐인 민가, 휴당산방에 닿는다. 목을 축일 수 있는 약수터가 있는 휴당산방의 명물은 민가 전체를 빼곡이 채운 야생화. 일부러 심어놓은 듯 물봉선, 고마리 군락이 넓어 식물원 꽃밭이라도 지나는 듯 가슴이 설렌다. 휴당산방에서 내남문으로 돌아 나오는 산길 또한 심산유곡의 느낌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야생화 길이다.
시간이 남거나 1박을 할 요량이라면 담양온천에서 여독을 풀거나 가을빛 흥건한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순창-담양 간 24번 국도)을 따라 읍내로 간 다음, 정읍 방향 29번 국도 변에 있는 관방제림을 찾아보자. 느티나무, 푸조나무, 팽나무 등 고목들이 발산하는 노란색과 오래된 것들이 풍기는 나무냄새가 좋다. 관방제림 바로 옆에 있는 죽녹원도 꼭 들러본다. 화려한 단풍으로 지친 눈에 푸른 대숲의 기운이 번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