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 전시실에서 인형을 통해 전통술 만드는 과정을 재현한 모습(위). 아궁이 위 허리가 잘록한 도기는 소주 내리는 전통 기기 ‘소주고리’다. 왼쪽은 다섯 종류의 전통 생주 시음잔. | ||
해마다 씨 뿌리고 곡식이 영글면 햇곡식으로 술을 빚어 올리던 우리네 조상들의 소박하고 따뜻한 생활을 가양주 문화에서 느낄 수 있다.
가을 향기가 무르익은 요즘, 대표적인 전통 계절주로 국화주를 꼽을 수 있다. 불로장수의 약용주로 두통을 낫게 하고 눈과 귀를 맑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일상의 시름과 고된 삶은 잠시 접어두고 주향이 그윽하게 배어있는 정겨운 곳에서 국화주 한 잔 음미해 보자.
맑은 물과 좋은 곡식, 만드는 이의 정성 그리고 시간이 빚어내는 예술품. 바로 좋은 술을 위한 4대 요소다. 산 좋고 물 맑은 경기도 포천에는 우리 전통술 문화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한눈에 엿볼 수 있는 전통술 문화 갤러리 ‘산사원’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이 더욱 흥미로운 이유는 지금은 그 명맥을 거의 찾아 보기 힘든 가양주 빚는 법을 일반인을 대상으로 실습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치 떡과 같이 예전에는 모두 평범한 여염집 아낙의 손길을 통해 빚던 음식. 뒤늦게나마 사라져버린 전통술의 향을 느끼고자 적잖은 사람들이 산사원 가양주 교실을 찾고 있다.
추운 겨울날 우리네 할머니, 어머니들이 따뜻한 아랫목에 술 도가니를 모셔두고 익히던 기억이 있다. 왜 그랬을까? 온도계나 측량 기구가 없어도 그분들은 오랜 경험과 감각을 통해 누룩이 가장 좋아하는 온도와 시간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술을 빚을 때면 사람은 웃목으로 밀려나는 한이 있더라도 메주나 누룩 단지를 신주 모시듯 아랫목에 모시곤 했던 것이다.
가양주 교실을 찾는 층은 30~40대 주부들이 가장 많다. 아낙들의 정성을 되새겨 보는 주말 가양주 교실. 이날은 향후 전통술 관련 사업을 하고 싶다는 사람들이 함께 참여했다. 어렵고 까다로울 것 같던 전통술 빚기의 재료와 과정은 의외로 간단하다. 찜통에서 고두밥(몹시 된 밥)으로 술밥을 찌고 물과 술밥, 누룩, 효모 등을 섞어 잘 저어주기만 하면 된다. 여기에 지금 한창 들판에 흐드러진 들국화 말린 것을 한 주먹 넣으면 완성. 술 익히는 과정은 누룩이 맡게 되는데, 온도와 시간을 맞춰주는 정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잘못하면 술 아닌 식초가 되는 수도 있으니까.
▲ 가양주 교실에 참석한 사람들의 실습 모습(위). 술을 빚는 모습이 사뭇 진지하다. 아래 사진은 술 지게미로 만든 술과자, 술지게미 박이, 술약과, 주편. | ||
교실의 강태석 팀장은 “누룩과의 배합비율, 온도를 잘 알면 집에서도 누구나 각종 전통주를 담글 수 있다”고 말한다. 10~15일의 발효 기간을 거치는 동안 보관 방법, 발효주 관리법, 마시기 전의 첨가물 등 맛 좋은 술을 위해서는 담그는 사람의 정성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배우게 된다.
고가에 들어선 듯 차분하고 전통적인 분위기의 ‘산사원’에 들어서면 어디선가 술 익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아니나다를까. ‘겹오가리’라 불리는 특이한 술독에서 탄산가스(CO₂) 끓는 소리가 조용히 울려퍼지고 있다. 술이 발효되는 과정에서 뿜어져 나오는, 그야말로 술 익어가는 소리다.
가양주 교실과 함께 여기서는 우리 술에 대한 다채로운 경험이 가능하다. 전통술 문화와 관련된 다양한 전시와 기획물들을 관람할 수 있고 일반 시중에서 맛볼 수 없는 생주(가열 살균 처리되지 않은 원액의 술)와 술지게미로 만든 음식도 시식할 수 있다. 매실미주, 흑미주, 백하주 등 다섯 가지 전통 생주를 시음하는 곳은 특히 애주가들에게 인기. 판매도 겸하고 있다.
가양주 교실에서의 국화주 빚기는 11월까지 계속된다. 12월 이후에는 한약재로 빚은 도소주가 진행된다. 이밖에 계절에 맞는 재료를 이용한 계절주 빚기는 항상 운영되며 빚은 술은 직접 가져갈 수 있다. 재료를 한꺼번에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수강을 원하는 사람들은 개인 10명 이상이 모이거나 단체로 신청을 해서 시간을 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