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은서점 안에 도난과 책탑보호를 위한 ‘안전문구’가 재미있다(오른쪽 위). 헌책방에서 책 고르기 삼매경에 빠진 헌책방 마니아들(왼쪽). 발행된 지 족히 50년 이상 된 책들이 먼지 속에서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 ||
한 해에도 수백만 권씩 세상에 태어났다가 독자의 손에 안겨보지도 못하고 서점 진열대에서 밀려나는 책들은 대체 어디로 가는 걸까. 다행히도 ‘헌책방’이라는 보루가 있다. 켜켜이 먼지 쌓인 헌책방 구석에서 누군가 자신을 알아봐 줄 날을 기다리며 세월이 얼마가 흐르든 기다리는 책들.
이번 주말에는 그동안 읽고 싶었지만 제돈 주고 사기 아까웠던 책, 사고 싶었지만 절판돼버린 책, 그런 책들의 목록을 작성해서 헌책방을 찾아가 보는 것은 어떨까. 아이들은 부모를 보고 배운다고, 방학을 맞은 아이들과 함께 헌책방 순례를 떠나는 것은 값진 선물이 될 것이다.
예전에는 청계천이 헌책방 골목의 대명사였지만 지금 청계천에선 예전의 낭만을 반추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실망할 건 없다. 관심을 두지 않거나 몰라서 그렇지 헌책방이 없는 동네는 거의 없다. 뿐만 아니라 청계천만큼은 아니지만 성신여대 신촌 한국외대 등 서너 개씩의 헌책방이 모여 있는 동네도 꽤 많다.
신촌에는 ‘정은서점, 공씨책방, 숨어있는 책’이라는 헌책방이 가까이 몰려 있다. 조금만 발걸음을 돌려 홍대입구쪽으로 향하면 모아북, 온고당, 들머리 헌책방을 만날 수 있다.
헌책방에서는 숨어 있는 책을 찾는 재미가 쏠쏠하다. 목적했던 책들을 한 권도 못 찾을 때도 많지만, 뜻하지 않게 거창한 수확을 얻을 때도 있다. 책값이 비싸봐야 본래 가격의 50%를 넘지 않으므로(대개 30%선) 군침만 삼키던 희귀본이라도 발견한다면 감자를 캐려다가 금덩어리를 건지는 기분일 것이다.
기자도 몇 권의 책 목록을 접어들고 헌책방 순례 체험에 나섰다. 모두 절판된 책들이라 이 중 하나만 건져도 성공이라는 심산이었다.
먼저 연세대 앞 정은서점. 20평쯤 되는 공간에 꽉 들어찬 책더미들. 책장 진열이 모자라 곳곳에 책탑을 쌓아 놓았다. 행여 건드리면 무너질세라 책장 곳곳에 ‘책가방을 앞에 내려두고 구경하세요’라는 글귀를 적어 놓았다. 도난문제보다는 책가방끈에 걸려 책더미가 무너지는 바람에 낭패를 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는 주인의 설명이다.
정은서점에 쌓인 책은 3만여 권. 그러나 정리는 잘 안된 편이어서 책 찾기가 수월치 않다. 구석구석 뒤지는 도중 눈에 걸리는 책이 있다. 최인훈의 <화두>. 진즉 읽어야겠다고 하면서도 아직 사보지 못 했던 책이다. 1994년 초판본인데, 책 겉장을 넘기니 웬걸 작가의 육필 싸인이 적혀 있다.
‘한○○ 선생님께, 평소의 격려에 깊이 감사드리며 최인훈’.
막 초판을 찍어 가까운 지인들에게 하나하나 정성스런 인삿말을 적어 사인과 함께 증정했을 작가의 체취가 그대로 남아있는 듯하다. 귀한 책을 손에 넣었다는 흥분과 함께 씁쓸함이 교차한다. 정은서점에서 원했던 책을 찾지는 못했지만 대신 <화두 1·2> 전집을 8천원 주고 구입했다.
그 다음 들른 곳은 공씨책방이다. 신촌 지하철역에서 동교동 방향으로 2백m쯤 올라간 곳에 있다. 이곳은 주로 디자인 일러스트 패션 관련 서적과 오래된 LP판을 구할 수 있는 곳이다. 정은서점에 비해 권수는 적지만, 정리상태가 조금 더 낫다.
왜 찾으려고 하는 책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걸까. 포기하고 나갈까 하다가 책 한 권이 숨바꼭질에 지쳤다는 듯 번쩍 모습을 드러낸다. <연관된 철학의 문제들>(1992 고려원). 그토록 눈이 빠지게 찾았던 바로 책 중의 한 권이다. 얼마나 반갑고 기쁜지, 먼지가 수북히 내려앉은 그 책에 입이라도 맞추고 싶다. 툭툭 먼지를 털어내고 보니 책도 깨끗하다. 지불한 책값 2천5백원. 13년 전 원가 4천8백원을 감안하면 다소 비싸다는 기분이 없지 않으나, 그게 어딘가. 쾌히 지불하고 소중히 가방에 챙겨넣었다.
다음 서점 ‘숨어있는 책’은 공씨책방 길 건너 골목 안에 있는데, 지상1층 지하1층을 차지한, 헌 책방으로서는 규모가 제법 큰 책방이다. 지상에는 문학 예술 교양, 지하에는 인문 사회과학 종교 외국서적들을 비치했다. 정리 상태도 무척 깔끔하고 책의 양도 가장 많다.
뒤적뒤적 책을 찾아보지만 원하는 책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읽고 싶은 책들은 왜 그리 많은지. 이곳에서도 뜻하지 않게 <풍속의 역사(전4권)>를 1천원 에누리하여 2만3천원에 구입하고 말았다. 충동구매라 출혈이 크다. 개정판이 발행된 지 3년. 새책이나 다름없고, 꼭 읽고 싶던 책이라 그만한 가치는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오전 11시에 출발해 헌책방 순례를 시작한 지 어느덧 6시간이 흘렀다. 겨울해가 짧아 어느덧 어둠이 내려앉았다.
내친 김에 홍대 입구까지 뒤졌지만 애당초 계획했던 나머지 책들은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헛걸음을 했다기보다 즐거운 놀이를 마친 기분이다. 먼지 속을 뒤져가며 보물찾기하듯 숨은 책을 찾는 즐거움이 헌책방에는 높이 쌓인 책더미 만큼이나 가득 차 있다.
서울시내 주요 헌책방 거리
▲신촌·홍대 주변
공씨책방: (02)336-3058
숨어있는 책: 333-1041
정은서점: 323-3085
모아북: 324-8789
온고당: 335-4414
들머리헌책방: 324-6353
▲한성대·성신여대 주변
삼선서림: 747-3444
신광헌책: 923-9960
그린북스: 921-0592
▲외국어대·경희대 주변
신고서점: 960-6423
송가책방: 985-5965
동연책방
▲인터넷 헌책방
고구마 www.goguma.co.kr
책창고 www.bookagain.co.kr
노마드북 http://nomadbook.co.kr
북헌터 www.bookhunte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