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이 가서 하나되어 온다
▲ 선유해수욕장과 망주봉 주변 자전거도로를 달리는 하이킹족. 맑은 공기와 풍경은 달리는 맛을 배가시킨다. | ||
역시 섬으로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서해대교를 뒤흔들던 바람이 파도의 키를 높이는가 싶더니, 급기야는 발을 묶고 말았다. 꼼짝없이 군산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다음날 아침 다행스럽게도 배는 바다 위에 의연히 올랐다. 허나 자욱한 안개 바다였고, 파고 또한 높았다. 만일 배와 한몸이 되어 파도를 넘지 못한다면, 멀미를 할 것이 분명했다. 신선의 영역을 넘본 죄일까. 바다 너머 선유도행은 그렇게 잠시 고단했다.
뿌우웅~, 긴 뱃고동소리와 함께 배는 군산항을 빠져 나온 지 1시간30여 분 만에 안개비에 젖은 아미도와 신시도를 지나 옅은 해무에 가라앉은 듯 수려한 선유도에 정박했다. 예가 바로 ‘신선들도 머물며 놀다 간다’는 선유도인가. 해무를 걷어내는 바람에선 감미로운 갯내가 묻어났고, 그새 고단함을 털어 낸 뱃머리 저편으로는 거대한 암봉이 우뚝했다.
일단 자전거부터 빌리기로 했다. 선유도와 아치형 현수교로 연결된 이웃의 무녀도 장자도 대장도는 서해의 소문난 자전거 하이킹 코스. 둘러보는 데 4시간 정도가 걸린다. 먼저 선착장 오른쪽 해안부터 돌기로 했다.
선착장에서 오른쪽으로 돌면 선유해수욕장과 장자도, 대장도고, 왼쪽으로 돌면 무녀도다. 비릿한 갯내음 속을 부유하듯 10여 분을 달렸을까. 넓고 맑은 백사장이 나타났다. 명사십리라 불리는 선유해수욕장이다. ‘세상에서 가장 맑고 넓은 원고지를 생각''했다’던 곽재구 시인의 말처럼 선유도의 백사장은 수려했다. 넉넉하지 않은 햇볕 속에서도 모래는 빛났고, 파도는 푸르렀다. 한 무리의 청춘들이 모여 즐기는 백사장 축구를 구경하는 흥취 또한 남달랐다.
길은 백사장 중간에서 망주봉 아래 샛터마을과 남악마을로 갈라졌다. 힘차게 페달을 밟아 바다 위로 난 듯한 샛터마을 자전거도로를 지난다. 갯벌 위에 덩그러니 누운 배며, 그 위를 나는 갈매기떼, 마이산의 두 암봉처럼 우뚝 솟은 망주봉. 뱃머리에서 보던 것보다 망주봉의 산세는 훨씬 더 험했다.
마을 뒤편에 등산로가 있긴 하나, 주민들은 극구 산행을 말린다. “장성한 남자들도 오르기 힘든 데를 여자 혼자서…, 로프를 잡고 30여 분이나 올라야 하는데 안돼” 하신다. 대신 선유봉에 올라 보기를 권하신다. 장자도와 선유도를 잇는 장자교 인근의 선유봉은 사실 망주봉에 버금가는 선유도의 전망 포인트다. 망주봉과 달리 경사 또한 완만해 누구나 산행이 가능하다.
등산로 입구, 자전거 거치대에 자전거를 세운 후, 진달래며 제비꽃 화사한 산길을 15분 정도 올랐다. 발 밑으로 선유도 무녀도 장자도 대장도 방축도 야미도 횡경도들이 열병하듯 늘어선 ‘고군산군도’의 풍광이 아스라하게 펼쳐진다. ‘옅은 해무만 아니었다면’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선유봉에서 내려와 장자대교를 건넜다. 자갈 해안과 기암이 오밀조밀 엮인 장자도는 고군산군도에서도 가장 작은 섬이다. 면적이 0.11평방미터에 불과해, 흔히 ‘손바닥 만한 섬’이라 부른다. 하지만 풍광만큼은 어느 섬에도 뒤지지 않을 만큼 아름답다. 특히 차가 다니지 않는 장자교 위에 서서 바라보는 바다 풍광이 멋지다.
▲ 무녀도 남쪽 끝자락에 위치한 무녀2구 마을. 민박을 치는 깨끗한 양옥집이 많다(위). 선유도 샛터마을 모습. 멀리 망주봉이 보인다. | ||
장자도 발전소에서 우측으로 난 다리를 건너 대장도로 갔다. 장자 할머니바위가 있는 암봉부터 올랐다. 과거보러 간 남편을 기다리다 등에 업은 아이와 함께 돌이 되어 버렸다는 슬픈 전설의 장자 할매바위. 바다는 푸르게 출렁거리기만 할 뿐, 말이 없다.
다시 갔던 길을 되돌아 나와 선착장에 섰다. 무녀도로 향하는 길. 처음부터 길은 경사 급한 오르막. 숨이 턱 밑까지 차 올랐다. 고군산군도에서 네 번째로 큰 섬인 무녀도는 춤을 추는 무녀처럼 생겼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1950년대에 이미 간척지를 16만여 평이나 일궈 지금은 고군산군도의 여러 섬들 가운데 농산물을 가장 많이 생산한다. 무녀도 기행의 관문이 되는 선유대교에서 잠시 멈췄다. 선착장이 보였고, 그 뒤로 아버지처럼 단단한 얼굴의 망주봉이 서 있다. 고단했던 뱃길이었건만, 처음 섬과의 인연을 맺게 한 선착장이서일까. 망주봉과 어울린 선착장 풍광이 그림처럼 곱다.
선유대교를 넘자 바람을 가르며 달릴 수 있는 내리막길이다. 곤두박질치듯 자전거는 바다 가까이로 질주했다. 하지만 이내 길은 자갈 투성이. 시멘트길과 자갈길이 뒤섞인 무녀도를 달릴 땐 아무래도 자전거의 속도를 늦추는 것이 현명하다. 무녀1구에 있는 민구미해수욕장은 마을 중심에 길게 형성돼 있는 몽돌 해변이다.
‘촤르르 촤르르’ 알록달록한 조약돌들이 파도에 휩쓸리며 구르는 소리를 낸다. 고군산중앙교회를 지나 자전거는 염전으로 향했다. 게딱지 같은 집과 오래된 염전은 흑백사진인양 정겹다. 알 수 없는 그리움까지 폴폴 일었다.
무녀도는 멸치 종류인 까나리 액젓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무녀도의 남쪽 끝자락, 무녀2구로 가면 구수한 까나리 액젓 냄새를 맡으며 어촌의 정취에 취할 수 있다. 민박을 치는 양옥집들이 많아 무녀1구에 비해 예스러움은 덜하나 마을 앞뒤에 있는 똥섬을 중심으로 한 포구 풍광이 아름다워 눈에 남는다.
하지만 무녀도가 선유도 자전거 하이킹의 끝은 아니다. 선유1구에 속하는 통개에 들려야 한다. 통개는 선유도의 숨겨진 보물이라 할 만큼 어촌의 정취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 지붕까지 쌓은 돌담이며, 갓 잡은 고기를 손질하는 모습 등은 통개에서만 볼 수 있다. 선유8경 중 하나인 삼도귀범(관리도, 주장도, 앞섬 등 선유도 앞 세 섬이 귀항하는 고깃배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또한 통개의 자랑거리다.
▲ 장자교 아래 갯바위서 줄을 드리운 낚시꾼(왼쪽),바지락을 캐고 집으로 돌아가는 아낙들. | ||
입맛 당기는 매운탕거리 지천
▲숙박정보: 자전거 하이킹 명소로 입소문이 나면서 숙박이 용이해졌다. 선유도 무녀도 장자도 어느 마을에나 민박집이 있다. 눈에 띄는 숙박촌은 선착장에서 선유해수욕장 길목에 있는 진말. 화장실과 샤워실을 겸비한 모텔형 민박이 많다. 안정모텔(063-466-4886), 우리파크(465-0657), 한세월파크(466-7477) 등. 비수기 숙박료는 주중 3만원, 주말 4만원 정도다. 예약하면 선창으로 손수레나 차를 끌고 나와 짐을 옮겨 준다.
▲음식정보: 특별히 별미라 할 만한 음식은 없지만 동네 사람들이 직접 잡은 자연산 우럭이나 노래미 등으로 끓이는 매운탕이 일품이다. 각종 활어회가 푸짐하고, 가정식 백반이 가능한 식당들도 있다. 옥순식당(465-3239, 매운탕), 중앙횟집(465-3450, 가정식 백반) 등.
들쭉날쭉 뱃시간 꼭 확인을
서해안고속도로 군산IC(27번 국도 연결)나 동군산IC(26번 국도 연결)를 빠져 나오면 군산 시내를 거쳐 연안여객선터미널로 들어갈 수 있다. 최근 여객선터미널을 이전, 시내에서는 군산항·여객선터미널 이정표가 아니라 외항 이정표를 따라 움직여야 한다. 여객선 터미널 주차장에 무료 주차할 수 있다.
선유도행 배는 5월부터 하루 3차례 운행된다. 물때에 따라 출항시간과 횟수가 달라지므로 미리 문의해야 편리하다. 배삯은 어른 1만1천7백원(터미널 사용료 1천원 포함)이며, 선유도까지는 1시간30분 소요. 계림해운 063-446-7171.
섬 안에는 대중교편이 없다. 자전거나 4륜구동 오토바이(뚝뚝이)를 빌려 타거나 걸어다녀야 하는데, 자전거 대여료는 1시간 3천원, 하루 종일의 경우는 1만원 정도다. 선유도를 비롯한 고군산군도 일대는 유람선으로 돌아볼 수도 있다. 선착장을 출발해 횡경도 방축도 관리도 장자도 무녀도 선유도선착장 신시도 야미도 등을 돌아보고 다시 출발지로 돌아오는 데 3시간30분 정도 소요된다. 요금은 2만원. 063-442-88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