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매니저’ ‘5분 대기조’…정치인 사생활까지 엿볼 수 있는 위험한 자리이기도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와 김지은 씨. 출처=일요신문DB 및
“수행비서는 정치인의 ‘그림자’와 같다.”
현직 수행비서 A 씨의 일성이다. 수행비서의 업무를 묻자 전·현직 수행비서들은 “정답은 없다”고 입을 모았다.
전직 국회의원 수행비서 B 씨는 “수행비서 업무가 명시돼 있는 게 아니다. 쉽게 생각해 ‘매니저’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B 씨는 “수행비서는 정치인을 따라다니면서 동선 체크를 하고 누굴 만나서 무슨 얘기를 하는지 등을 확인해 의원실에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아무개 씨를 만나서 민원을 받았는데 관련해서 알아봐야 한다고 전해준다”고 말했다.
또 다른 수행비서 출신 C 씨는 “수행비서는 보통 의전을 담당한다. 국회에선 의례적으로 운전기사 분도 수행비서라고 부른다”고 설명했다. 이어 “수행비서의 중요한 업무 중 하나는 의전이다. 스케줄 조정과 자리 배치 등에서 행사 의전팀과 원활하게 소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문제 생기면 큰일 난다”고 덧붙였다.
수행비서는 대개 하루의 시작과 끝을 정치인과 함께한다. A 씨는 “회의 시간 등 의원 스케줄에 맞춰 출근 시간이 정해진다. 대중이 없는데 대개 새벽에 나와서 밤 늦게 들어간다고 보면 된다”면서 “몇 시간씩 기다리는 건 부지기수다. 하루는 새벽같이 나와 집 앞에서 한참을 대기했는데 갑자기 ‘오늘은 일이 없다’고 해 여섯시에 퇴근한 적도 있다. 그럴 땐 매우 허탈하다”고 말했다.
C 씨 또한 “수행비서는 한마디로 ‘5분 대기조’다. 사생활이 없다고 보면 된다. 회의든 술자리든 다 따라다니며 그 앞에서 계속 기다려야 하니 스트레스”라고 토로했다.
하지만 그만큼 정치인과 수행비서의 관계는 특별하다. 전·현직 수행비서들은 “수행비서의 장점이자 단점은 다른 보좌진들이 함부로 못 대한다는 것이다. 수행비서는 정치인의 최측근이다. 실제 나한테도 의원이 ‘요새 의원실 분위기는 어떤가’ ‘보좌관이랑 보좌진들 사이에 문제는 없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둘만의 관계가 돈독하고 둘만의 이야기가 굉장히 많다”고 입을 모았다.
한 전직 도지사 수행비서는 “보통 6~7급의 젊은 사람들이 수행비서를 맡는다. 거의 1명이다. 긴급한 연락이 오거나 보고해야 할 일이 있으면 수행비서를 통한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수행비서에게 정치인은 어떤 존재일까. C 씨는 “수행비서는 절대 복종해야 한다. 수행비서는 정치인의 사생활이나 약점을 다 알기 때문에 정치인에게 절대 충성하는 사람만이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 또 그게 관행이다. 사적인 전화 통화 내용까지 들을 수 있으니 굉장히 위험한 역할이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다른 의견도 있다. B 씨는 “수행비서가 수동적인 자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보좌진은 정치인이 이루고자 하는 정치적 목적을 이룰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하는 자리다. 정치인이 길을 잃으면 설득해 다시 길을 찾도록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A 씨 또한 “수행비서는 ‘노예’가 아니다”라고 의견을 보탰다.
최근 안희정 전 지사의 성폭행 의혹을 둘러싼 후폭풍이 거세다. 안 전 지사의 수행비서였던 김지은 씨가 지난 5일 한 방송에서 “지난 8개월간 4차례에 걸쳐 안 전 지사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취재 과정에서 접한 수행비서들은 “남성 정치인이 여성 수행비서를 두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C 씨는 “국회에서도 의원들이 부담스러워서 여성 수행비서를 쓰지 않는다. 제3자의 시선도 그렇지만 의원들이나 수행비서 본인들도 불편해 한다. 수행비서는 보통 차 안에서 보고를 하는데 서로 불편하다. 많은 수행비서를 접했는데 여성 수행비서는 딱 한 명 봤다”고 귀띔했다. 다른 수행비서들 또한 비슷한 얘기를 했다.
A 씨는 “문재인 대통령이 당 대표 시절부터 여성 수행비서와 일했다. 그 분이 일을 매우 잘한다고 전해듣고 안 전 지사 또한 (파격적으로) 여성을 수행비서로 채용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김경민 기자 mercur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