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기자·책방 주인·인디 뮤지션…“우리의 목표는 당선”
‘구의원 출마 프로젝트(이하 구프)’라는 이름으로 뭉친 이들은 6·13 지방선거에 후보로 출마한다. 겸직이 가능한 구의원의 장점을 살려 회사원으로 임기를 완주하겠다는 후보자도 있다. 이들은 참여에만 의의를 두지 않는다. 목표는 ‘당선’이다.
‘구의원 출마 프로젝트’의 청년들은 오는 6·13 지방선거에서 구의원에 출마할 계획이다. 사진=곽승희 씨 제공
# 잘 뽑는 대신 잘 뽑혀보자
2016년 겨울, 평범한 책방 주인은 광화문 광장에서 망가진 민주주의를 자신의 손으로 바로 세우는 경험을 했다. 서울 마포구에서 독립서점 ‘퇴근길 책한잔’을 운영하는 김종현 씨(35)는 ‘구프’를 처음 제안한 기획자다. 김 씨는 “광장에서 만들어 낸 변화를 보며 감동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우리의 정치 참여가 특정 정치인 지지에만 그치는 게 아쉬웠다”고 말했다.
촛불집회 이후의 변화를 지켜보며 김 씨는 가장 낮은 단위의 선출직인 ‘구의원’을 떠올렸다. 구의원의 출마 조건은 25살 이상의 대한민국 국민으로 60일 이상 관할구역 안에 거주한 자이다. 심지어 연봉도 4000만 원 정도. 김 씨는 “지난해 초부터 서점에 찾아오는 사람들과 구의원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고 지난해 12월 영등포구 구의원으로 출마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 첫 설명회 이후 금세 참여자들이 모였다. 구프 구성원들은 올해 1월부터는 매주 일요일 책방에서 모여 구의원 출마 절차, 선거전략, 선거법 등에 관해 토론하고 공부하고 있다. 현재 구프 구성원 중 8명이 출마를 결심했지만 참가 인원은 계속해서 변할 수 있다. 일부는 중도에 그만두기도 했지만 지금도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싶다는 요청이 들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정당에 소속되는 것이 당선에 훨씬 유리하다는 걸 잘 알지만, 이들은 무소속을 고집한다. 가장 척박한 상태에서, 우리가 모두 구의원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다. 대신 선거 전략, 선거 물품 구비 등은 정치활동을 지원하는 외부 스타트업의 도움을 받고 있다.
전직 기자로 마포구 구의원에 출마하는 차윤주 씨. 사진=차윤주 씨 제공
# 아파트 동대표에서 구의원으로, 프로 고소러에서 프로 감시러로
지난 3월 6일 서울 중구의 한 카페에서 차윤주 씨(여·36)를 만났다. 차 씨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마포구 구의원으로 출마한다. 전직 기자인 그는 구의원 출마를 위해 2월 2일 사표를 냈다.
차 씨의 이력 중 단연 눈에 띄는 건 ‘아파트 동대표’. 30대인 그가 평균나이 60~70세의 동대표를 하겠다고 나섰고 정말로 2015년 7월 정말 아파트 동대표에 당선됐다.
차 씨는 “잘못된 걸 바꾸고 관련자들에게 법적 책임을 묻기도 했다. 동대표를 하며 ‘고소·고발전문가’란 별명이 붙었다”며 “하지만 2년 임기를 마치고 나니 그렇게 힘들게 바꾸어놓은 것들이 원점으로 돌아왔다. 오히려 제대로 한 번 더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변화를 줄 수 있는 사람들이 참여를 안 하니 나처럼 못 참는 놈이라도 나와야 하지 않나 싶었다”고 털어놨다.
‘프로 고소러’였던 차 씨는 이제 ‘프로 감시러’를 꿈꾼다. 구의원의 가장 중요한 역할로 그는 감시와 견제를 꼽는다. 좋은 게 좋은 거라며 프로필에 한 줄 추가할 만한 민원 처리에 급급했던 기존 방식에 제동을 걸 생각이다. 차 씨는 “거대 양당에서만 후보가 나오는 구조에서는 감시와 견제가 제대로 이뤄지기 힘들다. 이러니 임기 만료를 앞둔 구청장이 특정 기업에 혜택을 주는 사업에 승인하는 일이 생기는 것”이라며 “처음 서울살이를 시작한 뜨내기들, 1인 가구 등 그동안 제대로 대표되지 못했던 계층을 위해 일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 직장인도 주부도 ‘당신’으로 살 수 있는 마을
금천구 구의원에 출마하는 곽승희 씨(여·31)는 퇴사 전문 무크지 ‘월간퇴사’의 편집장이다. 대학 졸업 후 온라인 언론사를 거쳐 지난해 4월까지 콘텐츠 스타트업에서 일했던 그녀는 퇴사 후 말 그대로 생각대로 살아왔다. 지난해 월간퇴사를 창간한 데 이어, 여성의 몸을 새롭게 보는 명상 행사 ‘2017 겨털살롱’을 기획했고 이번에는 구의원으로 나선다.
곽 씨는 “퇴사 후 내가 느끼는 괴로움들을 나름의 방식으로 해결해왔다. 하지만 구프를 통해 이런 활동을 모두를 위해서, 직업적으로 할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됐다”며 “단 한 번도 내가 정치를 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최근 출마를 결심하며 나도 태어날 때부터 피선거권이란 걸 가지고 있었음을 새삼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바쁜 직장인들도 동네 행사와 동네 정치에 참여할 수 있도록 ‘판’을 깔고자 한다. 곽 씨는 “동네의 작은 행사도 온라인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하고 누구나 볼 수 있게 SNS에 기록하고 싶다”며 ”바쁜 직장인이지만 내 동네에서만큼은 다른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었으면 한다. 이를 위해 젊은 사람들도 즐길 수 있는 인문학 교육 프로그램, 3D 프린팅, 문화·예술 공연 등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하고 싶다”고 밝혔다.
구의원 출마 프로젝트 참여자들은 매주 일요일 선거전략 등에 관해 토론하고 공부한다. 사진=차윤주 씨 제공
# 88만 원과 4000만 원 그 사이
같은 프로젝트에 참여했지만 구프 구성원들의 선거 전략은 제각각이다. 전략이 다르니 예상하는 선거 비용 역시 천차만별이다.
기탁금을 제외한 김종현 씨의 예상 선거비용은 88만 원. 김 씨는 “우리 책방은 후미진 골목에 있는 데다 운영시간도 일정치 않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온다. 드러나진 않지만 나와 취향이 같은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라며 “선거 역시 이렇게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원치도 않는 사람들에게 억지로 명함을 억지로 쥐어주고 싶지 않다. 나도 싫었으니까. 나와 같은 관심사, 가치관을 따르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가면 된다”고 말했다.
김 씨는 선거에 대한 고정관념이 적은 비용, 무소속으로 출마하려는 이들을 의기소침하게 한다고 지적한다. 그는 “평소 정치에 대해 말이 잘 통하는 사람들도 출마 얘기가 나오면 ‘지역 유명단체에 찾아가야 하지 않느냐’며 기존의 정치 틀로 선거를 바라본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곽승희 씨가 예상하는 선거비용은 퇴사 후 한 번도 건드리지 않은 퇴직금 500만 원. SNS를 활용한 독특한 선거방식을 중심적으로 운영하되 필요하다면 명함 정도는 배부할 생각이다. 그는 선거 기간 동안 자신만의 미디어를 만들어 동네 주민과의 만남을 기록하고 주민 추천 맛집 지도를 만들어 공유할 생각이다.
곽 씨는 “기탁금 200만 원을 내면 300만 원이 남는데 이 안에서 최대한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부족하면 펀딩을 받을 생각이다”며 “선거 사무소 따로 내지 않는 건 젊은 사람들은 사무실이 있어도 어차피 들어가 볼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보다 SNS를 통해 내가 카페에서 작업하고 있으니 언제 모여서 얘기하자는 식으로 사람들과 접촉하고 싶다”고 말했다.
차윤주 씨는 기존 선거 방식과 새로운 선거 방식 모두를 이용할 생각이다. 차 씨는 “평소 자전거 타기를 좋아해 자전거에 캠코더를 설치해 동네 풍경을 찍고 하루 짧은 일기를 적어 SNS를 통해 주민들과 공유할 생각”이라며 “명함 돌리기, 현수막 등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기존 선거 방식도 이용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 맥도날드 모자를 쓴 구의원 후보를 꿈꾼다
김종현 씨는 동네 정치를 곧 민원 해결로 보는 건 대표적인 오해라고 말한다. 그보다 동네 정치만큼은 사회에 존재하는 각양각색의 욕망과 가치관을 대변해야 한다고 믿는다. 김 씨는 “주거문제에 허덕이는 나는 비슷한 처지의 청년 세대의 문제를 대변할 생각”이라며 “성 소수자, 워킹맘, 아르바이트생 등 각자의 상황을 대변할 수 있는 다양한 후보자가 나오길 기대하고 있다. 가만히만 있는다면 기존 정치인들은 결코 그 방향을 바라보지 않는다. 맥도날드 모자를 쓰고, 남성끼리 껴안고 있는 선거 포스터를 볼 수 있길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혜리 기자 ssssch33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