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장 선거 챙기느라 의정공백 ‘나몰라라’
부산시의회 의원들이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기초자치단체장에 도전하며 대거 의원직을 사퇴해 의정공백에 대한 강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10여 명의 의원이 이미 사퇴했거나 사퇴할 것으로 예고되면서 시민들의 시선이 곱지 않다.
부산시의회 회기 진행 모습.
부산시의회는 지난 7일부터 제268회 임시회를 개시했다. 임시회가 개시된 이날은 평소와는 분위기가 판이했다. 구청장에 나선다는 명목으로 신변 발언을 요청한 의원들의 고별사가 줄을 이었기 때문이다.
먼저 47명의 재적 의원 가운데 유일한 더불어민주당 소속인 정명희 의원은 이날 “부산이 보다 정의롭고 따뜻해지길 바라는 모든 시민을 대변하고, 혼자서 46명의 몫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나를 돌아보고 채찍질해야 했다. 짊어진 짐이 무거워 빨리 걷지 못하고 때로는 멈춘 적도 있었지만, 시민들의 마음이 담긴 짐이기에 내려놓지 않고 뚜벅뚜벅 걸어왔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다시 누구도 가지 못했던 길,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자 한다. 의회에서의 소중한 경험이 길잡이가 되어줄 것으로 본다”며 구청장 출마자로서 각오를 전했다. 정 의원은 이미 북구청장에 도전하기 위해 예비후보 등록을 마쳤으며, 유권자들을 만나며 지지세를 다지고 있다.
강성태 부의장도 고별사를 전하기 위해 단상에 올랐다. 수영구청장 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강성태 부의장은 이미 2월 28일 의원직 사퇴서를 제출했다. 강 부의장은 “지난 12년 동안 몸담았던 시의회를 뒤로 하고 새로운 정치여정을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정명희·강성태 의원에 이어 박재본 의원도 이날 고별사를 전했다.
이들 외에도 남구청장에 도전하는 이희철 의원, 영도구청장 후보로 낙점이 유력한 황보승희 의원, 북구청장에 출사표를 던진 손상용 의원 등이 곧 의원직을 사퇴할 예정이다. 공한수·김영욱·최영규·최준식 의원 등도 뒤를 따를 전망이다.
이미 사퇴한 의원들을 제외한 구청장에 도전하는 나머지 의원들은 제268회 임시회가 끝나는 16일경에 대부분 의원직을 사퇴할 것으로 보인다. 정치일정으로 미뤄볼 때 이때쯤에는 의원직을 던져야 하기 때문이다.
정가에서는 의원들의 조기 사퇴를 과거와는 판이하게 달라진 정치 환경의 변화에 있다고 보고 있다. 탄핵정국 이후 부산이 자유한국당의 텃밭이라는 기존 관념이 깨지면서 현역 프리미엄을 누리기보다는 좀 더 일찍 예비후보로 등록해 발로 뛰는 게 더욱 승산이 있다고 판단한 데 따른 행보라는 것이다. 이런 입장은 유일한 여당 소속인 정명희 의원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지나치게 서둘러 의원 배지를 떼고 예비후보 띠를 두른 것에는 비판의 목소리가 작지 않다. 특히 굳이 임시회 개시에 즈음해 고별사를 전하고 물러날 필요가 있었냐는 비판이 나온다.
사퇴 시점을 두고서는 의원들 간에도 의견과 소신이 엇갈린다. 이희철 의원은 “임시회기를 모두 마친 뒤인 16일경에 의원직을 사퇴할 것”이라며 “보다 빨리 사퇴해야 한다는 주위의 권유도 있었지만, 적어도 286회 임시회기는 마치는 게 시민과 유권자에 대한 도리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지나친 과열 분위기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2014년 지방선거 당시 시의원을 지내다가 구청장에 도전해 당선된 경우는 백선기 해운대구청장 단 한 명에 불과하다. 이를 두고 성공적인 사례라고 보는 시각도 그리 많지 않다. 특히 지금은 그때와는 상황이 많이 다르지만, 사퇴한 의원 모두가 구청장에 오를 확률은 전무하다.
문제는 4월 24일 열릴 예정인 제269회 임시회 이후부터의 의사일정이다. 10여 명의 의석이 빈자리가 됨에 따라 제대로 운영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하다. 이외에도 6월까지 남은 중요한 의사일정들은 파행이 불가피해 보인다.
익명을 요구한 지역 여권의 관계자는 “해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4년을 주기로 이 같은 의회 파행이 반복되고 있다. 정치적인 의사 결정의 자유는 막을 수가 없겠지만, 의정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제도 정비와 대책 마련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하용성 기자 ilyo3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