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비뮤지컬 “건강하고 확실한 메시지 선보이고파”
뮤지컬극단 ‘나비’ 대표 김지영(36·여).
[대구=일요신문] 남경원 기자 =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평창동계올림픽 눈꽃축제장에 선 김지영(36·여). 뮤지컬 갈라콘서트의 화려한 막이 오르면서 그녀만의 맑고 청명한 음색과 배우들의 멋진 하모니가 감동을 자아낸다. ‘맘마디아 댄싱퀸’, ‘미녀의 괴로워 OST’ 등 꾸준히 사랑받는 베스트 넘버들이 울려 퍼지자 관객들의 박수갈채와 환호성이 쏟아진다. 평창 동계올림픽의 기대감을 한껏 고조시킨 그녀는 대구 지역에서 뮤지컬극단을 짊어지고 있는 대표이기도 하다. ‘일요신문’이 뮤지컬극단 ‘나비’의 대표 김지영을 만나 나비의 꿈을 향한 좌충우돌 도전기를 들어봤다.
지난달 대구 남구에 위치한 뮤지컬극단 ‘나비’ 연습실. 40평 남짓한 이곳에는 연기 연습에 몰두하는 젊은이들로 열기가 넘쳐난다. 큰 거울 앞에서 표정과 안무를 연습하는 이들에게 김지영 대표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지적한다. 연기를 하는 이들은 대부분 20대. 나비뮤지컬이 여타 극단보다 경쟁력이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학교 다니는 단원들부터 졸업해서 아르바이트 병행하면서 연기에 몰두하는 단원까지 20대가 대부분이예요. 아르바이트도 작품에 지장이 없을 정도로 적당한 것만 해요. 축가 아르바이트 같이 실력을 키우고 무대에서 도움이 될 만한 알바를 골라서 하곤 하죠.”
2000년 12월 창단한 뮤지컬극단 ‘나비’. 당시 김지영 씨는 학생들을 상대로 레슨을 하면서 ‘나비’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했다. 사실 단원을 모았다기보다는 그녀를 중심으로 단원이 모였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대표가 극단을 세운 뒤 단원을 모아 만들어지는 여타 극단들에 비해 나비뮤지컬은 연기를 꿈꾸는 단원이 모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극단이 만들어지게 됐다. 매우 젊은 나이대로 구성된 것도 눈에 띄지만 더 놀라운 것은 연기에 대한 단원들의 자발적인 열망이다. 단원들은 일념통천(一念通天)으로 연기에만 몰두하는 김지영 대표에게 휩쓸려 연기에 입문했다고 입을 모았다.
“어릴적부터 꿈이 오페라가수였어요. 그동안 생각해보면 음악에 대한 수많은 권유와 기회가 많았던 것 같아요. 물론 안정적인 직업이 아니다보니 부모님의 반대가 만만치 않아 꿈만 가지고 있었지만 주변에 수많은 분들이 저를 노래하게끔 만들어주셨어요.”
‘도약, 하늘을 달리다’ 뮤지컬극단 ‘나비’가 갈라콘서트를 선보이고 있다.
그녀의 학창 시설은 노래로 도배됐었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 수업이 끝나고 친구들이 집 또는 학원을 갈 때 그녀는 음악실로 향했다. 음악 선생님의 피아노 연주에 따라 동요를 몇 시간씩 부르는 것이 그녀에겐 놀이였다.
일요일에는 교회에서 성악가 출신의 지휘자를 만나 크리스찬 음악회를 준비한답시고 레슨을 받았다고 한다. 고교 시절에도 우연히 성악 출신의 선생님의 눈에 띄어 학교 행사 때마다 솔리스트(soliste)로 무대에 서기도 했다. 신기하게도 항상 그녀의 주변에는 노래를 가르쳐 줬던 은사들이 있었다.
“대학교 시절에는 춤을 운동 삼아 배우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2년이 지나자 공연 제의가 들어올 정도로 실력이 쌓이더라고요. 덕분에 춤으로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어요. 그 알바 마치고선 연습실 와서 혼자 스트레칭하고 기본기 연습하고 춤추면서 시간을 보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선생님 눈에 띄어서 몇 개월 동안 꾸준히 개인레슨을 받고요.”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그렇게 21살이 된 그녀는 대구시립극단 이상원 감독이 연출한 ‘동화세탁소’ 창작뮤지컬에 공개 오디션을 통과하면서 데뷔무대를 치르게 된다. 무용과 힙합, 재즈, 살사 등 다양한 춤을 섭렵한 그녀는 이후 오페라와 연극, 뮤지컬 등 거의 모든 장르의 무대에 서면서 자연스럽게 연출 쪽으로 흘러가게 됐다.
“20대 시절에는 서울에 가야 한다는 권유를 많이 받았지만 일적으로 기회는 많아도 삶의 영역에서는 쾌적하지 못하다고 생각했어요. 저렇게 빡빡하고 바쁜 가운데 예술이 될까란 의문을 품은 거죠. 현재 대구는 관객확보가 잘되는 편이에요. 덕분에 서울에 유명 연출가들이 대구에서 활동하는 경우도 많고요. 대구에서 공연계는 전망이 나쁘지 않다고 봐요.”
현재 나비뮤지컬의 단원은 총 30여 명. 조명과 무대미술, 작곡, 의상 소품을 관리하는 스텝 4명과 연기자들로 구성돼 있다. 애초에 상업성이나 경영을 체계적으로 할 생각 없이 연기에만 집중했던 그녀에게 극단운영은 만만치 않았다. 예술에도 현실적인 돈이 들어간다. 연기가 전부였던 그녀는 개인 레슨과 공연으로 번 사비를 탈탈 털어 극단을 운영하게 됐다.
“매년 초가 되면 대구시와 문화재단에서 지원사업이 나와요. 거기에 지원서 써서 선정되면 그 지원금 가지고 작품 만들고 재현, 창작, 콘서트 등 다양한 공연을 하는 거죠.”
지원금이라고 해도 사실상 턱없이 부족하다. 덕분에 새 작품을 창작해 무대에 올리더라도 수입은 거의 없다. 그러나 그녀는 포기하지 않는다. 돈은 안 남아도 작품이 남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수개월을 걸쳐 꼼꼼히 만든 의상과 소품은 돈보다 더 큰 재산이다.
“세트가 최소 1000만 원부터 시작이니 일단 쿨하게 포기하고 의상부터 만들어요. 시장 가서 원단 하나하나 만져보고 저렴한 곳 찾아다니면서 골랐어요. 재봉가게도 수소문하고 디자인까지 해서 맡기고 의상 하나하나를 손수 만들었어요. 덕분에 돈은 없어도 의상과 소품은 없는 게 없을 정도예요. 다른 극단에 빌려줄 수 있을 정도로 많아요. 500벌이 넘는 데 아예 의상 대여 사업을 할까 봐요(웃음).”
그녀는 컴퍼니(company)를 차려 단원들에게 월급을 주고 싶다고 한다. “저는 외부 공연만으로도 배우로서 먹고사는 데 지장 없어요. 그러나 지금 막 공연 시작하는 학생들은 정말 쉽지 않은 환경이에요. 후배 연기자를 양성하는 차원에서라도 발판이 되어주고 싶어요.”
극단대표로서 그녀는 연기학원을 운영하고 작품도 함께 만들면서 연기 꿈나무들을 키우고 싶다고 한다. 밤새도록 같이 춤추고 노래 부르며 한 땀 한 땀 만든 소품을 들고 자신들만의 세계를 보여주는 재미를 선물해 주고 싶다는 것이다.
“최근 연극계에 미투(Me too) 운동이 일어나면서 성추행 문제가 불거지고 있잖아요. 사실 터질 게 터진 거죠. 나비뮤지컬은 공연 이후 뒷풀이 문화 자체가 없어요. 공연 마치고 소품 정리를 한 후 단원들을 돌려보내요. 그리고 다음 날 일찍 모여서 건강하게 뒷풀이를 해요.”
그녀의 꿈은 나비뮤지컬의 건강하고 확실한 메시지를 재밌고 세련되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전 세계를 무대로 단원들과 함께 만든 레퍼토리를 선보이는 것이라고 한다.
“전세계 버스킹. 소소한(?) 꿈이에요. 사실 이런 꿈을 이루기엔 전문적으로 갖춰야 할 것들이 많다고 봐요. 아직은 ‘번데기’죠. 하지만 ‘나비’라는 이름처럼 언젠가 전세계를 무대로 날개를 펼칠 날이 올 거예요. 제 인생 안에 세계를 날 수 있는 큰 바람이 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거든요. 젊고 건강한 극단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시민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려요.”
나비는 처음부터 나비가 아니다. 알이 애벌레가 되고 애벌레가 번데기가 된 후 나비로 탄생하게 된다. 벗겨지는 고통과 인내, 탈피와 변화는 당연한 성장통라 말하지만 너무나 가혹하다. 때로는 숨만 쉬고 호흡하는 번데기처럼 정체되고 머물러만 있는 것 같다. 그 누구도 번데기를 나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비로 변화되기 전까지 말이다. 나비뮤지컬의 날갯짓은 이미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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